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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분투기

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_1인 출판사 대표가 되다

by 생활모험가

1인 출판사 소로소로를 차리고 첫 책을 만들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과정은 꽤나 치열했고, 동시에 즐거웠으며, 우당탕탕 분주했다. 그래서인지 그 시간을 떠올리면 '분투기'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기획부터 집필, 편집, 디자인, 제작, 홍보와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에 발을 담그고 직접 챙기며 책을 만드는 일은 말 그대로 '내가 낳은 책'을 품에 안는 일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은 책이라는 거대한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든 듯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서툰 풋내기 출판사 대표를, 책은 너른 품으로 안아주었다. 그 기분은 묘하고 참 좋았다. 책과의 적극적인 조우 그 이후, 나를 둘러싼 세계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감정이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출판사에서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과 협업해왔다. 특히 인턴으로 처음 입사했던 작은 출판사에서는 규모가 작았던 만큼 여러 직무를 두루 경험할 수 있었다. 대표님 역시 다양한 업무를 직접 해보며 나에게 맞는 일을 찾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었기에, 홍보, 마케팅, 교정, 교열, 디자인, 저작권 업무 등 출판의 여러 일들을 전방위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어깨 너머로 동료들의 업무를 지켜보며 출판의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게다가 작가로 데뷔했던 첫 책은 또 다른 출판사와 작업하며 '작가'라는 역할까지 경험해보게 됐다.



그래서였을까. 1인 출판사를 차리는 일은 마치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내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출판사를 운영하고 첫 책을 만드는 그 여정에 다다르기까지는 넘어야 할 크고 작은 산들이 꽤 많았다.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사업자 통장을 만들고, 명함과 로고를 준비하는 것까지. 책을 만들기도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버겁기보다는 신기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동시에, 첫 경험만이 줄 수 있는 낯섦과 두려움, 설렘이 뒤섞인 조금은 생경한 감정에 가까웠다.



특히 사업자등록을 하러 가던 날의 설렘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침 저녁으로는 살짝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한낮에는 여름의 잔상이 남아있던 초가을의 오후. 필요한 서류들을 배낭에 챙겨 넣고 구청으로 향하던 길, 평일 오후의 느슨한 공기가 나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문득,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바로, 좋은 때야.'스스로 되뇌며 마음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뗐다.



그 이후로 빠르진 않지만,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걸 잘 알기에, 방향만 잃지 않으면 괜찮다. 책이 나오는 속도가 조금 더디더라도 스스로를 너무다그치지 않으려 한다.


뜻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더라도, 짜증을 내기보다는 길 위에 있음에 감사하고 싶다. 지치지 않고 길 위에 있는 것. 빠르게 달려다가 쓰러지는 것보다, 혹은 이탈해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지고 소중한 일이라는 걸,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 것'을 한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있었기에 야근도, 주말 근무도 괜찮았다. 정해진 날짜에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없어도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채워갈 수 있다는, 어쩌면 인생에서 처음 맛보는 달디 단 자유의 맛 덕분이었으리라.

- 책 『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 중에서



*본 브런치 스토리는 책 『콘텐츠로도 먹고삽니다』(생활모험가 저/ 소로소로)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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