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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May 05. 2024

이룰 수 없는 꿈


어릴 적 나는 작은 꿈이 있었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저녁 식사를 하는 것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일상적으로 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어렵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있다. 그중 하나가 아마 내 작은 꿈일 것이다.


 이 꿈이 생기게 된 이유는 아마도 초등학교 때 일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고 사귀게 된 친구 중 한 명이 나에게 자기 생일이니까 집에 오라고 초대를 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초대에 응했다. 그 친구의 집에 들어가고 나서는 여러 번 놀랐다. 최신형 컴퓨터에,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의 음식들(인생 8년을 살면서 처음 본 음식도 있었다!)로 놀라고, 나 말고도 여러 명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온 거에 놀랐다. 나는 여러 모로 주눅이 들어 쭈구리처럼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 친구가 부러웠다. 그 생일 파티가!


 그 이후 엄마에게 매일 졸라대고, 애걸하며 부탁했다. 나도 그 친구처럼 생일 파티를 열어 달라고. 그 모습에 진저리가 나셨는지, 안타까워서였는지 몰라도 두 번 정도 파티를 열어 주셨다. 그 뒤로는 하지 않았다. 막상 해보니 돈이 꽤 든다는 걸 알았고, 우리 집은 돈이 많지 않다는 걸 또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중학생이 되었을 땐 맛있는 걸 먹거나 선물을 받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자기 합리화를 했다. ‘생일 파티는 초딩이나 하는 거지 유치하게!’ 종종 다른 친구들은 본인 생일날 친한 친구들을 모아 pc방 비용을 대주고 같이 게임을 했다. 그러한 자기 과시와 자랑이 조금은 부러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부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자기 생일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난 이렇게 평범한 것도 쉽게 못 하지? 그렇게 큰 욕심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이 식사하는 게 왜 이리 어렵냐고!!’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은 이혼하시고, 고등학교 때는 엄마가 몸이 많이 아프셨다. 그 꿈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내가 군대에 가는 것까지만 보고 떠났으면 좋겠다 하시던 엄마는 고3 가을에 돌아가셨다. 꿈도 모자라 일상이 아예 무너졌다. 외할머니 집에서 독립한 이후로 밥은 항상 혼자 먹었다. 생일 선물이며 케이크는 커녕 잊지 않고 전화나 문자를 보내준 것만으로도 넙죽 절을 드리고 싶었다.


 얼마 전 내 생일이었다. 투잡을 뛰고 있던 곳에 동료 중 한 분이 혼자 사니까 챙겨 줄 사람이 없을 거라며 작은 케이크를 나에게 주셨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케이크를 받는 게 까마득한 일이 되어서 2초 정도 몸이 굳어 있었다. 정적을 깨고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연신 해대고서 케이크를 들고 집에 왔다.


 꿈을 아예 못 이루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면 말이다. (사실 이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 여담으로 아는 지인이 나에게 “야, 좀 밝은 글도 써라!”라고 하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 내 일상이 빽빽하게 말라 건조하고 어두웠구나 싶다. 나도 밝은 글을 쓰고 싶지만 그게 어디 내 마음처럼 되는가? 낮과 밤이 있듯이 조만간 밝은 일상이 올 때를 기다려주십시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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