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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May 18. 2024

아, 옛날이여!



 저번 주는 투잡을 뛰는 초등학교 배식도우미 동료들과 회식을 했다. 1차로는 보쌈집에서 시작했다. 멤버들이 다 모이기 까지 어색한 공기의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다 모이고 술이 술술 들어가자 말꼬가 트이고 눈과 귀가 트였다.


 몇년 전부터 이 일을 해오던 분들의 과거 경험과 다른 곳에서 일하다 오신 분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쌍방으로 오갔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나와 막내인 고 씨는 먹을 때만 입을 벌렸다. 같이 일하는 분들이 다 좋으신 분들이라 술도 즐겁게 마실 수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취기가 올라 흥이 났다. 나만 그런 분위기를 탄 게 아니었다. 모두가 그 흐름에 분위기에 실려 2차로 노래방을 갔다.


 노래방에 가니 자연스럽게 두 분류로 나뉘었다. 술을 좀 마신 사람들은 자연스레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불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열심히 호응했다.


 노래방에서 항상 분위기 메이커였던 과거를 몸이 아직도 기억을 해서 놀랐다. 잔잔하지만 마냥 심심하지 않은 곡들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마이크를 들면 항상 리액션을 취해준다. 가령 탬버린을 흔든다던지 코러스나 추임새를 넣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댄다. 그러면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들도 슬슬 움직이거나 분위기가 처지지 않는다.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러서일까 노래를 부르면서 술을 마셔서 그런걸까? 내 감성이 알코올에 촉촉히 젖기 시작했다. 나는 감성에 젖으면 대부분을 옛 추억에 빠진다.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노래방을 갔던 중학교 시절을.


 나는 학교 반 친구들보다 동네 형 동생들과 먼저 사귀고 친해진 케이스였다. 그중에서 형들이랑 노는 게 조금 더 재미있었다. 가끔 심부름 하는게 짜증이 났지만. 나보다 사춘기가 먼저 온 형이 하루는 나를 데리고 오락실 노래방으로 갔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노래를 못 부른다, 아는 노래가 없다는 핑계로 부르지 않으려 했지만 그 형은 온갖 협박과 눈치를 주며 꾸역꾸역 기어이 나에게 마이크를 쥐어 주고 부르게 했다. 덜덜 떨며 부른 노래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정신이 혼미해 질때쯤 끝이 나고 노래방 점수가 났다. 기억은 정확히 잘 안나지만 형편없는 점수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나를 데리고 온 형은 노래를 부루는 동안 잘 부른다며 기죽지 않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내 손에 있는 마이크를 낚아채서미리 예약해 둔 노래들을 연속으로 불러대기 시작했다. 그렇다. 말 그대로 나는 노래 한 곡만 불렀고 나머지를 동네 형의 노래로 채웠다. 노래는 한 곡 밖에 부르지 않았지만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기분 좋은 설레임의 두근거림이었다.


 동네 형이 노래방을 데리고 갈 때마다 나는 군말없이 따라갔다.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더 부르고 싶어서 얼른 예약하려는 내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나중에는 동네 동생들도 데리고 가서 다 함께 불렀는데 동생들이 그 형보다 내가 더 잘부른 다고 했다. 나는 눈치가 보였지만 내 입꼬리는 눈치가 없었다. 귀에 걸려서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그 이후로 동네 형은 노래방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같이 갈 사람이 없을 때만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갔다. 좀 더 지나서는 나 없이 혼자서 재밌게 즐기고 왔다.


 중학생이 되어 나도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풍부해지니 틈만 나면 노래방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 가기는 그래서 아직은 어색하지만 친해지고 싶은 친구들을 모아서 1차로 피시방을 자연스레 꼬시고 2차로 노래방으로 끌고 갔다. 친구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긴장 되지만 설레여 하는 친구, 노래에 자신이 없어 걱정하는 친구, 게임이나 더 하지 왜 왔냐고 불만인 친구. 동네 형과 처음 노래방에 갔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자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났다.


 ‘야 이놈들아 너희도 곧 나처럼 노래 부르고 싶어 안달이나 부리지 마라. 크크크’


 자연스레 마이크를 들고 센스있는 노래 선곡으로 분위기를 휘어 잡았다. 그러고 나서 하고 싶어 하는 친구를 눈치 껏 밀어준다. 떠밀려 부르는 친구는 내심 설레어 하며 부르기 시작한다. 나는 친구들이 부르고 싶게끔 하기 위해 동네 형이 나한테 했던 스킬과 나만의 스킬로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재밌게 부르고 나니 사장님이 추가 시간을 주셨다. 돈이 넉넉치 않았던 우리는 공짜 서비스라면 환장을 했던 시절이라 서비스 시간을 다 쓸 때까지 꾸역꾸역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방 첫 경험이 좋은 경험이었기에 친구들은 자연스레 노래방 가는 횟수가 늘어갔다. 그렇다. 내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서로 달랐지만 수업을 마치면 또 모여 노래방을 갔다. 노래방에 가면 우리끼리 하는 노래 코스가 있는데 처음은 잔잔한 곡으로 시작해서 중간부터 마지막은 항상 신나는 곡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었다.  신나는 노래를 부를 때는 다 같이 일어나 몸을 흔들어 대며 춤을 추고 괴성을 질러댔다. 마이크만 없으면 우리는 아마 광적인 종교집단 단체로 봤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서 서로 노래 실력을 가지고 지적을 하고 놀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참 많이도 웃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이 참 행복했다. 그러니 지금도 인상깊게 추억을 하는 거겠지.


 추억에서 빠져나와 회식장소로 복귀하니 직장 동료들 중에 벌써 몸 가누기 힘든 분도 계셨다. 그렇다. 집으로 가야한다는 신호탄인 것이다. 지금은 술의 힘을 빌려 대화도 하고 노래도 부끄럼없이 한다지만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친해지고 얘기하고 노래 부를 수 있었을까? 사회생활에 찌들지 않고 순수했던 우리였기에 그런 것일까.


 차갑고 건조한 일상이 쌓이다 보면 순수하고 제약이 없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


 그 녀석들 지금은 어떻게 지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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