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친구와 부산대 상가를 배회하다 하이볼 술집에 들어섰다. 우리 또래의 남녀들이 여러 감정이 섞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가 별로 없어서 두리번 거리다 결국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아 하이볼 두 잔과 안주를 시켰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고?”
“또 시작됐다. 또 시작됐어.”
“뭐가 또 시작인데?”
친구는 이미 골초 할아버지 얘기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거두절미 하고 어제 있었던 일을 곧바로 이야기 했다.(내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서!)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대신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니 얘기 들으니까 참. 사람 사는 거 비슷비슷 하네.”
“왜? 니도 무슨 일 있었나?”
한 숨을 푸욱 쉬고나서 친구는 입을 뗐다. 외할머니가 예전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던 무릎과 눈이 악화되었다는 얘기였다. 할머니 연세가 좀 있으셔서 수술 자체가 많이 부담스럽고 수술비 또한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 개인사업을 했다가 잘 안되서 빚을 지고 다시 회사에 들어갔기에 더 힘들다고 친구는 말했다.
“······미안하다. 니가 더 힘든 상황인데 그 앞에서 내가...”
“괜찮다 임마. 니가 이런 얘기 안 했으면 나도 얘기 안 했을거다 아마.”
“그래도...”
“뭐 덕분에 얘기해서 속은 시원하다. 울적한 것도 좀 낫고.”
이 친구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냈던 ‘불알친구’다. 우리는 축구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금방 친해졌고 커가면서 다른 친구들과 자연스레 멀어질 때도 이 친구는 내 곁에 남아 있었다.(다른 친구도 한 명 있기는 한데 고기 장사가 한창 바빠서 오지 못했다.) 어렸을 적엔 서로에게 항상 장난만 치고 웃고만 했었는데······. 언제 우리가 이렇게 나이를 먹고 이러고 앉아 있는지 참.
“내가 니한테 알바 구했다는 얘기 했었나?”
“아니. 니 알바 구했나?”
“어. 초등학교 점심 배식도우미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뛰어놀고 웃으며 장난치던 모습 보니까 우리 어릴 때 생각 많이 나더라.”
“크크큭. 그때 우리 참 놀기도 많이 놀고 장난도 많이 쳤지.”
어릴 적 얘기가 반가웠는지 친구의 얼굴이 살짝은 밝아졌다. 나도 모르게 신이나서 시작한 에피소드가 불을 붙였고 친구도 생각나는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마치 토크 배틀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의 이야기가 끝이나면 쉬지 않고 또 이어나갔다.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웠던 이야기를 하는데 어째서 하면 할수록 마음이 씁쓸해지는 걸까? 친구의 표정도 그런 것 같았다.
“그 시절이 돌아오지 않는 건 아는데...아는데......”
“······.”
우리는 적적한 마음을 알코올로 달래주었다. 한 번은 하이볼 한 번은 소주로 적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어찌 어렸을 때 보다 더 못한 삶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 그때보다 가난하지 않은데, 지금이 그때보다 여유로운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고 외롭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보고 싶은 우리 엄마. 그때는 엄마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사랑하는 친구야! 내 어떡하노 엄마가 보고 싶어서 큰일이다.”
“······괜찮다. 보고 싶을 수도 있지. 보고 싶은 게 당연하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네. 어떻게 해야 볼 수 있을까? 친구야 니가 좀 알려줄래?”
여기까지만 기억이 나고 그 다음은 기억나지 않았다. 나중에 친구한테 듣기로는 술집에서 엄마가 보고 싶다며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떠돌이 까치’ 등등 만화 주제가를 불렀고, 그 덕분에 술이 깬 친구는 나를 부축해서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