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내가 열 살쯤이었나 엄마와 작은 외삼촌은 반여농산물 시장 앞에서 트럭을 대고 음식 장사를 했다. 지금의 푸드트럭의 시조라고 해야할까. 메뉴는 라면, 국수, 토스트, 팥빙수, 커피 이렇게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엄마가 해주는 토스트와 비빔국수를 제일 좋아했다. 평일에는 학교에 가야 했기에 올 수 없었고 주말이 되면 엄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하루종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런 내가 조금은 안쓰러웠는지 손님이 없을 때는 토스트나 비빔국수를 말아주었다. 집에서는 좀처럼 먹지 못하는 음식에다가 야외에서 먹으니 더 말할게 있을까.
한 번은 쉬는시간에 친구들끼리 모여 서로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자랑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당연히 집밥 위주의 음식을 얘기했고 나는 이때다 싶어 매일 토스트를 먹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친구들은 토스트는 길거리에서 사 먹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고 자연스레 엄마가 장사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들이 자기도 가서 먹고 싶다고 때를 썼다. 나는 아차 싶었다. 엄마가 집에 친구들 데려오지 말랬는데.
모두에게는 집에 친구 데려오면 혼난다고 얘기를 하고 내 ‘불알친구’만 따로 불러 말했다.
“진짜 안되는데 니만 특별히 우리 집에 오게 해줄게. 니가 제일 친한 친구니까 특별히. 알겠제?”
“오! 진짜? 고맙다. 우리 이제 완전 베스트 프렌드다.”
엄마가 장사를 쉬는 날에 맞춰 친구를 데려왔다. 미리 말했다면 못 데려올게 뻔했기에 미리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친구가 있어 말은 못했지만 나를 보는 눈빛이 ‘데려오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순간 멈칫했다가 무슨 용기가 났는지 친구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가 토스트를 해준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친구는 알겠다고 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엄마가 집에 친구 데리고 오지 말라했지? 왜 데리고 왔어!”
“엄마 제발...제가 내 제일 친한 친구란 말이야. 엄마가 한 토스트가 얼마나 맛있는지 맛보여 주고 싶어서...제발!”
“······.”
친구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엄마는 우리에게 금방 토스트를 해줄테니 방에 들어가서 놀고 있으라고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내 친구가, 친구의 부모님이 우리의 가정환경을 아는게 싫었을 것이다. 그것이 곧 나의 학업생활에 혹시라도 지장이 있을까봐 걱정하셨던게 아닐까.
우리가 티비에서 만화를 한창 재미있게 보고 있을 때 엄마가 우리를 불렀다. 친구와 나는 한껏 기대를 하고 나왔다. 접시에 키친타월을 깔아놓고 그 위에 토스트를 올려주었다. 겉면에는 설탕 약간에 케챱이 뿌려져 있었다. 작은 눈을 가진 친구가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는 접시를 들어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먹었다.
“우와! 야 너네 엄마가 해준 토스트 짱 맛있다.”
“내가 뭐랬노. 맛있다 했제? 니라서 주는거다. 알겠나? 애들한테 말하면 안된디.”
친구는 한창을 감탄하며 토스트를 먹었다. 그러고는 한 숨을 푹 쉬었다. 갑자기 왜 한 숨을 쉬냐고 물었더니 친구의 엄마는 토스트를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해줄 때가 있는데 이렇게까지 맛있지는 않다며 이제는 엄마가 해준 토스트를 못 먹을 거 같다고 아쉬워했다. 나는 뿌듯했다. 그러고 엄마를 쳐다봤는데 살짝이지만 미소를 띠고 있었다. 친구가 토스트를 잘 먹었다고 인사 하자마자 엄마는 얼른 친구에게 집으로 가라고 했다. 친구는 혹시나 더 해줄 수는 없냐고 하자 엄마는 니네 엄마한테 해달라하라며 쫓아내듯이 친구를 보냈다.
찰싹-
“아야! 아 엄마.”
엄마는 집에 둘만 있게되자 바로 내 등짝을 때렸다. 그러고는 그 동안의 쌓인 감정을 내 귀에 박힐 때까지 쏟아부었다. 그날이 우리 집에 친구를 데려온 마지막 날이었다. 물론 엄마가 살아계실때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