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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Oct 27. 2024

8화



 08     

 

 술을 먹은 다음 날은 쉬는 날이었기에 계속 잠을 잤다. 잠을 너무 많이 잤는지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 골목에서 동그랗게 둘러모여 아름다운 멜로디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그속에서 나는 행복해 보였다. 나도 저렇게 웃을 수 있구나. 나도 저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하며 나는 나를 보며 감탄했다.     

 

 꿈에서 깬 나는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거울을 보니 눈가에 눈물이 있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찬물로 샤워를 했다.(군대 이후로는 절대 찬물 샤워를 하지 않으려했건만.) 책상에 앉아 글을 쓰려고 했지만 역시나 잘 안 써진다. 누군가가 많은 작품을 봐야 더 새롭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정말로. 그래서 모처럼 쉬는 날 영화를 틀었다.     

 

 또 <중경삼림>이다. 한 두 번 본것도 아닌데 왜 또 이걸 골랐을까. 이 영화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분위기가 끝장난다. 두 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난 특히 첫 번째 이야기를 좋아한다. 임청하와 금성무가 나와서 청춘의 공허함과 허무 그리고 냉혹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금성무가 눈물이 나오려 하면 달리기를 하는 장면과 호텔에서 샐러드를 미친 듯이 먹는 장면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감정을 겨우 버텨내거나 버티지 못해서 나오는 모습들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     


  허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폭식을 했던 경험이 있다. 부산대 정문 토스트 집에 가서 토스트를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하루 종일 누워있다가 배달로 또 토스트를 먹었었다.(맛은 있지만 그때 그 맛은 아니라며 핑계를 대며 계속 먹었다.)     

 

 <중경삼림>을 질릴 때까지 보다가 유튜브를 켰다. 재즈 음악 ‘Fly to The Moon’의 여러 버전 모음곡을 틀고는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꺼내 마셨다.(어제 그리 마셔 놓고는 또 술을!) 이 노래의 가사처럼 누가 날 달이든 어디든 데려가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여기에 있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사실 저건 바램일 뿐이지 어디를 가든 똑같을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힘들어하고 아등바등 하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 이런 고난들을 이겨내고 성취한 것이라도 해도 잠깐의 기쁨으로 끝이다. 냉장고 문을 열어 또 맥주 캔을 들었다.(분위기에 취했나? 맥주 맛있네.)      

 

 맥주를 빨리 마셔서일까. 빨리 취해버린 나는 얼른 침대에 누웠다. 하루 종일 잠만 잤더니 취했어도 잠은 오지 않았다. 취한 상태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왜 살아야 하지? 아무리 찾아도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못 찾으면? 몇 년전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 산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으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사후 세계 같은 것은 잘 모르지만 만약 있다면 엄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엄마를 본다면 나는 이 말을 제일 먼저 할 것 같다. ‘미안해 엄마.’ 엄마가 그간 고생해서 나를 키웠는데 그 자식은 이 꼴이라서. 어째 죽어서도 편치 못 할거 같네. 어떻게 해야 할까나 이 거지 같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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