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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Oct 27. 2024

18화



 18     

 

 입을 열기는 했으나 친구는 욕 밖에 하지 않았다. 그래 욕 밖에 나오지 않겠지. 불알친구와 나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오겠지.     

 

 “하아······아버지가, 아버지 때문에 다 말아먹었다. 망한 거는 둘째 치고 나도 모자라 동생도 이제 빚쟁이 신세다.”     

 

 고깃집 친구의 아버지는 원래 잘 나가는 발골사였다. 하지만 늘 마음 속에는 음식 장사를 하기 원하셨다고 한다. 발골사를 하면서 모은 돈과 은행에서 빌린 돈을 합쳐 가게를 차리셨고 쫄딱 망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가게를 오픈했지만 소위 오픈빨에만 손님이 조금 있었고 그 뒤로는 파리만 날렸다. 친구는 우리 중에 공부도 제일 잘했고 학교도 잘 갔다. 아버지의 연이은 가게 폐업 때문에 그동안 공부 하던 걸 접고 가게에 뛰어 들었다. 친구의 동생은 늘 컴퓨터 게임만 하는 인생이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월급을 받아가며 직장생활(?)을 했다.      

 

 두 형제가 가게에 뛰어든 후로 폐업은 막았지만 성공까지 달려가진 못했다. 불알친구와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는데 그건 너무나 간단한 이유였다 바로 ‘맛’이었다. 식당이라 하면 제일 기본 적으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친구네 식당은 맛이 없었다. 그나마 양념되지 않은 소고기만 반응이 괜찮았는데 그게 다였다.      

 

 몇 년을 식당만 고집하다가 친구가 공장을 차려서 납품해주는 방향으로 다시 계획을 세웠다. 그 고집 센 아버지도 수십 년을 그렇게 말아먹더니 이제야 아들의 말을 듣고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투자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일이 척척 진행이 되자 아버지는 욕심이 났다. 더 크고 좋게 공장을 짓고 싶어서 둘째 아들 명의로 돈을 이곳저곳 끌어 모아 왔는데 투자자들의 변심으로 진행이 멈추고 말았다.      

 

 “하아 씨발. 나가 뒤질까? 도대체 뭐가 문제야. 뭐 때문에 내 인생도 동생도 일이 이 지경까지 됐냐고 씨발.”    “······.”     

 

 우리는 쉽게 말을 못했다. 지금 이 녀석에겐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뿐더러 괜히 말했다가 심기를 건드려 어떤 난장판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놈이 지뿔에 지가 질려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너네보다 공부 잘 한거 알지? 대학도 좋은데 가고 말이야.”     

 “그래. 니가 여기서 공부도 제일 잘하고 많이 했지.”     

 “우리보다 배우기도 많이 배웠지.”     

 

 고깃집 친구는 맥주 잔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테이블에 소리가 나도록 잔을 내려놓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근데 나는 너네들이 졸라 부럽다 이거야. 어? 니들은 지금 하고 싶은거, 꿈 찾아서 나가고 있잖아! 근데 난 여기서 뭐하고 있냐 이 말인거지. 내가 공부도 그냥 잘한게 아니고 좆빠지게 했다. 진짜 빠지면 어떡하나 걱정될 정도로. 크크큭.”     

 

 그렇게 웃더니 얼굴을 테이블에 묻고는 술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짜증을 냈다가 울고 웃기도 하다가 지금은 노래를 불러댔다. 나도 그렇고 이 녀석들도 그렇고 술만 먹으면 왜 그렇게 노래를 처불러대는지 참.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내 꿈을 위한 여행······.”     

 “야 이제 그만 일나라. 이게 무슨 민폐고. 부끄러우니까 얼른 나가자.”     

 “뭐어어! 내가 부끄러워? 너네 내가 부끄럽나. 왜 고기집 망하고 빚만 오지게 지었는데 내가 지금 제정신이겠나. 나 이러면 안되는거가? 어? 이 씨발 친구 새끼들도 다 필요없다. 꺼져 꺼져 이 씨발!”     

 

 아니다 이 새끼야. 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부끄러운 거다. 나만 힘든게 아닌데···다들 똑같이 힘들게 사는데. 난 내가 또 특별한 인간인줄 착각하고 대단한 삶을 산 것처럼 허세만 부릴 줄 알았지 사실은 자기연민으로 가득한 못난 인간이다.      

 

 취해서였을까. 나는 친구를 꼭 끌어 안고는 흐느끼면서 중얼거렸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우리 진짜 존나 불쌍하다. 안 그렇나. 씨발 씨발 씨발!”     

 “야! 우리가 아니라 내가 제일 불쌍하거든. 꺼져 이 나쁜 새끼들아.”     

 “이 새끼들이 진짜······ 돌았나.”     

 

 우리들은 그렇게 한참을 울고 싸우고를 반복했다. 취기가 가라앉자 친구에게서 고기 비린내가 났다. 나는 토할 거 같아서 떨어지려 했는데 이번에는 이 녀석이 나를 끌어 안았다.     

 

 “수빈아...수빈아! 오늘따라 니가 보고 싶었어. 이제 널 절대 놓지 않을거야.”     

 “수빈이?! 수빈이 같은 소리하네. 이 새끼가 취하려면 곱게 취할 것이지. 얼른 놔라 이 미친놈아.”     

 “오잉?! 너네 둘이 좋아하냐. 설마 그렇고 그런 사이? 헤헤헤. 나만 몰랐네 헤헤헤.”     

 

 술집 사장님의 도움으로 이 녀석들을 정리(?)하고 나서야 겨우 집에 올 수 있었다. 당분간 이 녀석들이랑 술은 먹지 말아야겠다. 몸은 당장 쓰러질 것 같이 힘든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전보다 편했다. 나에게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돼지국밥을 한 그릇 먹은 것처럼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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