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병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자살과 탈출 사건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나만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이런 거니까. 그래야 직장이 돌아가니까.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난 참 사회생활을 못 하는 인간이다.
‘끼리끼리 콤비’가 오랜만에 내려왔다. 한 동안 왜 안 내려왔냐고 하자 탈출(?) 사건이 난 후로 간호사 선생님들의 허락을 맡아야 갈 수 있다고 했다. 허락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받기 어려웠다.
“그럼 오늘은 뭐라고 얘기했길래 보내줬습니까?”
“반장님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다고 보내 달락 사정사정 했다 아입니까.”
“맞아요 아저씨. 나도 사정사정해서 왔다니까 크크큭.”
박상길 환자는 웃는 이유라던가 포인트 따위는 없었다. 그냥 웃음이 터지는 것이다. 저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쩔 땐 부럽기도 했다. 별 거 아닌거에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인생을 유쾌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 아닐까.
“진한길 님이 거짓말이 많이 느셨네요 제 핑계를 대고 내려오시고. 거짓말이 아니라 연기가 많이 느신건가.” “반장님. 거짓말 아니고 연기도 아입니더. 진짜 있는 그대로 얘기했습니더.”
진한길 씨의 눈가가 촉촉해 보였다. 정말 진심인가? 만약 진짜라면 왜? 내가 뭐 해준 것도 없는데, 그렇다고 사글사글하게 잘해준 것도 아니고 말이다. 완전히 믿지 않았다. 아니 믿어지지 않았다.
“왜죠? 제가 뭐 한 것도 없는데 저 때문에라뇨.”
“없기는 뭐가 없습니까. 내 시덥잖은 얘기도 잘 들어준다 아입니까. 제가 여기 10년 조금 넘게 있었는데 그 전에 반장놈들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쫓아내기 바빴습니더. 그렇게 지내다가 마지막에 반장님이 오셔가지고 내가 마음이 풀렸지예.”
“풉. 풀렸지예 란다. 풀렸지예 크크큭. 너무 웃기다.”
“거기에다 우리 누님 부탁도 잘 들어주고예. 그 전 반장놈들은 우리를 귀찮아하고 하찮게 쳐다봤습니더. 징그러운 벌레를 본 것처럼. 근데 우리의 반장님은 그렇지 않았단 말이지. 우리를 똑같은 사람으로 대우해줬단 말이지예.”
“말이지예 크크큭. 아 웃겨.”
“그만 좀 웃어라 누나야. 웃기려고 농담도 아직 안 했는데.”
진한길 씨가 이렇게 말을 잘했단 말인가. 아니면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걸까. 지금이 그나마 괜찮은 상태인 거 같은데. 나는 ‘끼리끼리 콤비’가 알아서 올라갈 때까지 병동에 전화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