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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Oct 27. 2024

19화



 19     

 

 병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자살과 탈출 사건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나만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이런 거니까. 그래야 직장이 돌아가니까.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난 참 사회생활을 못 하는 인간이다.      

 

 ‘끼리끼리 콤비’가 오랜만에 내려왔다. 한 동안 왜 안 내려왔냐고 하자 탈출(?) 사건이 난 후로 간호사 선생님들의 허락을 맡아야 갈 수 있다고 했다. 허락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받기 어려웠다.     

 

 “그럼 오늘은 뭐라고 얘기했길래 보내줬습니까?”     

 “반장님 못 보니까 미칠 것 같다고 보내 달락 사정사정 했다 아입니까.”     

 “맞아요 아저씨. 나도 사정사정해서 왔다니까 크크큭.”     

 

 박상길 환자는 웃는 이유라던가 포인트 따위는 없었다. 그냥 웃음이 터지는 것이다. 저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쩔 땐 부럽기도 했다. 별 거 아닌거에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인생을 유쾌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 아닐까.     

 

 “진한길 님이 거짓말이 많이 느셨네요 제 핑계를 대고 내려오시고. 거짓말이 아니라 연기가 많이 느신건가.”   “반장님. 거짓말 아니고 연기도 아입니더. 진짜 있는 그대로 얘기했습니더.”     

 

 진한길 씨의 눈가가 촉촉해 보였다. 정말 진심인가? 만약 진짜라면 왜? 내가 뭐 해준 것도 없는데, 그렇다고 사글사글하게 잘해준 것도 아니고 말이다. 완전히 믿지 않았다. 아니 믿어지지 않았다.     

 

 “왜죠? 제가 뭐 한 것도 없는데 저 때문에라뇨.”     

 “없기는 뭐가 없습니까. 내 시덥잖은 얘기도 잘 들어준다 아입니까. 제가 여기 10년 조금 넘게 있었는데 그 전에 반장놈들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쫓아내기 바빴습니더. 그렇게 지내다가 마지막에 반장님이 오셔가지고 내가 마음이 풀렸지예.”     

 “풉. 풀렸지예 란다. 풀렸지예 크크큭. 너무 웃기다.”     

 “거기에다 우리 누님 부탁도 잘 들어주고예. 그 전 반장놈들은 우리를 귀찮아하고 하찮게 쳐다봤습니더. 징그러운 벌레를 본 것처럼. 근데 우리의 반장님은 그렇지 않았단 말이지. 우리를 똑같은 사람으로 대우해줬단 말이지예.”     

 “말이지예 크크큭. 아 웃겨.”     

 “그만 좀 웃어라 누나야. 웃기려고 농담도 아직 안 했는데.”     

 

 진한길 씨가 이렇게 말을 잘했단 말인가. 아니면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걸까. 지금이 그나마 괜찮은 상태인 거 같은데. 나는 ‘끼리끼리 콤비’가 알아서 올라갈 때까지 병동에 전화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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