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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Oct 27. 2024

21화



 21     

 

 잠깐이라도 조용한게 싫은건지 오늘도 병원은 시끌시끌 했다. 여러 핑계로 잠시 내려놓았던(?)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펼쳤다. 그래 첫 작품이니까 내 이야기를 쓰자. 물론 소설이니까 과장도 하고 없는 얘기도 지어내면서 말이지. 재밌겠는데? 오랜만에 손가락 좀 풀어보자!     

 

 띨릴리리! 띨릴리리!     

 

 “네, 경비 반장입니다.”     

 “반장님. 혹시 거기에 천광명 환자 안 내려갔나요?”     

 “네. 아무도 안 내려왔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천광명 환자가 어디로 갔는지 안 보여요. 연락도 안 되고······.”     

 

 그럼 그렇지.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데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게 이상하지. 이제 이런거에 익숙해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천광명 환자가 갈 만한 곳으로 이리저리 찾으러 갔다. 최근에 보호자들이 면회 하러 안왔다고 하더니 무슨 일이 있는걸까? 설마······.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 옥상 버튼을 눌렀다.     

 

 밖에는 비바람 불고 있었다.      

 

 “천광명 할아버지! 여기 계신 거 다 압니다. 얼른 나오시죠.”     

 “총각은 내가 마치 숨은 것처럼 얘기하네?”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갔다. 이미 비에 홀딱 젖은 할아버지는 얼굴 빛이 안 좋아보였다. 이 할아버지 분명 무슨 일이 있네. 원래 이럴 분이 아닌데.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할아버지 무슨 일입니까? 비도 오는 데 왜 이런 곳에 나와 계세요?”     

 “옥상에는 비가 오기 전부터 있었어. 비가 내리기 시작한지는 얼마 안 됐지. 하늘도 내 마음을 알고 슬퍼해주네.”     

 “······이제 내려가시죠 할아버지. 감기 걸리시겠어요.”     

 “아니, 아니야. 내가 건강하고 오래 살면 가족들이 싫어할텐데 뭣하러. 오히려 감기에 걸리고 아픈 게 낫지. 빨리 죽어야 가족들도 좋아할테니까.”     

 

 이대로는 할아버지가 순순히 내려갈 것 같진 않아보였다. 할아버지에게 더 말을 걸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시냐고, 가족들이 걱정을 하지 오히려 좋아한다는게 무슨 말이냐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한 숨을 푹 쉬었다.     

 

 “최근에 가족들이 면회를 오지 않은 이유가 있어. 자식들끼리 나한테 있는 재산을 물려 받을 때 어떻게 할지 얘기를 나누다가 싸움이 났다는구만. 벌써부터 내 재산을 가지고 싸워대는 모습이 보기 싫었어. 그래서 면회를 오지 말라고 했더니, 재산은 처음부터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이 없었던 거 아니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연락도 안 오고, 면회도 오지 않아.”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예전에 있었다. 죽고 싶다는 충동이 들고, 모두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그 시절. 방문을 걸어잠그고 아무하고도 얘기를 하지 않으니 삼촌들이 방문 너머로 이렇게 얘기했다.     

 

 “너, 할머니가 우리만 도와주고 너한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아서 그런거냐?”     

 “할머니가 너한테는 돈을 물려주지 않아서 화가 났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이런 말이 나와 당황스러웠다. 나는 너무나 답답하고 화가 나서 결국 입을 열었다. 아니라고 큰 소리쳤다. 그러나 이 논쟁은 끝나지 않고 불이 더 활활 불타올랐다.      

 

 “아니! 니가 그게 아니고서야 이럴리 없지. 솔직히 얘기해봐라.”     

 “······.”     

 

 삼촌들은 내 말을 끝까지 믿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할아버지··· 가족이란 뭘까요? 예전엔 저한테 가족이란 믿음과 신뢰로 맺어진 관계라며 사람들한테 잘난 듯이 말하곤 했습니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또 겪어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가족이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다 인간이에요. 인간이기에 이런 신뢰관계가 생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또 얼마든지 깨질 수 있음을 몰랐던거죠. 저도 예전에 돈 때문에 삼촌들과 언성을 높인 적이 있어요. 삼촌들은 제 말을 듣지도 믿지도 않았죠. 그 뒤로 오해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은 연락도 만남도 거의 안 하고 있어요.”     

 “······ 하고 싶은 말이 뭔가?”     

 “할아버지만 그런 거 아니니까 이제 그만 비 맞고 내려가셔요. 저도 가족들한테 믿음으로 내팽겨져버린 사람 중에 한 명이니까요.”     

 “허허 이거 참.”     

 “왜요 할아버지?”     

 “이 얘기를 하면 주위에서는 당연한거다, 그냥 니가 모른 척 당하고 살아야 노후 끝까지 편안하다는 등의 얘기만 들었지. 총각처럼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처음이야. 근데 그 어떤 말보다 위안이 되는군. 고맙네 총각.”     

 “······ 할아버지 우리 친구해요!”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믿음으로 버림받은 사람끼리 친구하자는 소리요.”     

 “아니 그래도 나랑 자네가 나이 차이가 제법 많이 나는데 어떻게 친구가 되겠나?”     

 “예수님은 높은 곳에서 내려와 낮은 자들 사이에서 친구가 되어주셨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그...그건.”     

 

 나도 어릴 적 좋아하는 여자애 때문에 교회를 나간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설교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그럼 우리 이제 친구입니다.”     

 “허허...그래 그렇게 하지.”     

 “그럼 이제 우리 친군데 말 놔도 되겠습니까?”     

 “···뭐?”     

 “······ 조크! 조크에요 미국식 조크.”     

 

 그제서야 할아버지와 나는 옥상에서 내려왔다. 비를 홀딱 맞은 생쥐마냥 부들부들 떨었는데 기어이 다음 날 감기에 걸려버렸다. 할아버지도 같이 감기에 걸릴 줄 알았는데 나만 걸렸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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