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지금도, 머뭇거리고 있니?
어린 시절 `철` 들기 위해 무척 노력하며 살았다. 부모님 속 썩이는 일은 하지 않고 정해준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는 삶의 과정이었다. 그 길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찾지 못했고, 아니 찾을 여건과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 스스로가 가둔 틀 속에서 생활하며 소위 `철` 잘 든 청년으로 어른으로 성장했었다.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께 반듯하고 예의 바르다는 칭찬은 들었지만 별다른 기쁨은 없었다. 다만 부모님 욕 안 먹는 정도의 수준에 만족하게 살았다. 그 속에는 내 인생은 없고 다른 이를 배려하기 위한 인생을 사는 느낌뿐이었다.
그런데 아들도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과 꿈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자신의 틀 안 세상 속에서 맴돌고 있다. 며칠 전 식탁에 앉아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얼마 전 꿈에 대해 블로그에 작성한 글을 보여줬더니 짧은 한마디를 남긴다.
"잘 썼네요. 그런데 제겐 어려워요!"
"뭐가 어려워?"
"전체적인 의미는 알겠는데 이해하기는 어려워. 그런데 단어 중 마중물이 뭐죠?"
"아, 마중물! 옛날 물을 퍼 올리는 수동 펌프가 있었는데 그 수동 펌프를 움직이려면 필요한 물이다. 이 마중물이 있어야 지하에 있는 물을 끄집어 올릴 수 있단다. 그래서 마중 나가서 찾는 물이라고 마중물이라고 해"
설명하고 나니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말로 옛날 물건을 이미지화해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알 듯 말 듯한 표정 짓다, 질문을 스스로 거두고 만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꿈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빠 글을 보며, 전 무엇이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죠. 오늘 교회에서 꿈에 대한 특강도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의미`라는 단어가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의미? 네가 그런 생각을 하니! 우리 아들 많이 컸구나!"
"그러면 너는 미련과 후회라는 단어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뭘 선택할 거야?"
"저는 후회를 선택합니다."
"왜?"
"해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난번 아빠가 잠깐 얘기했던 것이 기억이 나서요"
언젠가 이야기했었나 보다. `미련과 후회`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면 이제까지 `미련`이라는 놈에게 계속 이끌려 갔었다. 새로운 뭔가를 해 보고 싶었지만, 현실의 장벽 앞에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시간이 없어, 저걸 해서 얼마나 효과를 볼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도 하고, 저 나이에 뭐 하는 거니?` 나를 보지 않고 주변의 여건에 휘둘리는 나를 더 중시했었다. 그런데 해 보지 않고서는 이 미련이라는 놈을 극복할 수 없다. 한 번 용기 내어 시도해보면 미련은 이겨낼 수 있다. 실패하면 단지 `후회`가 친구가 될 뿐이다. 성공하거나 성취한다면 내 인생에 큰 경험과 자산이 되는 것이기에, 절대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왜 머뭇거리지?
그럼 이제까지 머뭇거린 이유는 뭘까? 아마 간절함도 없었지만, 철 들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이 주변 여건을 고려하며 살다 보니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스스로가 먼저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새장에 갇힌 새를 보며 불쌍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도 세상이라는 새장에 갇혀 있다. 새장 속에 있는 새가 우리를 불쌍히 여길지 모른다. 새장 속에서 보면 우리도 갇혀 있는 존재로 보일 테니…….
이제는 새장에서 벗어나고 탈출할 때이다. 머뭇거리기보다 저지르고 봐야 할 나이다. 무엇 때문에 멈칫하는가? 아직도 새장 속이 세상이 편한가? 새장 안에 갇히면 철들며 살아야 한다. 여전히 나는 없고 주변만 있을 뿐이다. 탈옥이 별건가, 잠깐 빗장을 열고 걸어 나오면 된다. 그러면 다른 세상이 기다릴 것이다. 그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플라톤은 이데아 사상을 강조했다. 아주 흠 없는 완벽한 세상이 이데아의 세상이다. 그 세상의 복제판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완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복사본은 원본을 넘어 설 수 없으니 말이다. 플라톤이 말한, 현실의 세상은 복사본이니 또 다른 복사본을 하나 더 만들자는 것이다. 이데아(원본)는 바꿀 수 없지만, 복사본은 여럿 둘 수 있다. 그 복사본을 통해 다른 삶을 살아보자.
김수영 작가의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를 보면, 다양한 꿈을 쓰고 80개국에서 72개의 꿈에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김수영 작가는 이데아는 못 바꿔도 복사본은 수없이 많이 만들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꿈은 하나일 필요가 없다. 또한, 세상도 하나일 필요가 없다.
스스로가 가둔 새장 안의 세상이 아닌 새장을 벗어난 다른 세상을 항상 꿈꾸고 있다. 치열한 경쟁속 샐러리맨의 삶에 지친다. 치열함의 삶을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동경하며 그 꿈을 이루어나가듯, 우리 안에 다른 삶에 대한 간절함이 움츠리고 있다. 그 간절함은 누구의 것이 아닌 나만의 간절함이어야 한다. 다른 이를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 그 삶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
“이제는 그냥 철없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