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yourself

(질문) 삶에 색깔이 있다면, 어떤 색으로 물들이고 싶니?

by 글 쓰는 나그네

내 안에 너 있다


서양 조각과 건축을 대표하는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피에타상이나 다비드상 같은 훌륭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원례 존재하던 것을 꺼내 주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이미 조각상이 대리석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기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상상하는 수준도 자신을 뽐내지 않으면서 빛나게 만드는 언어의 유희도 그리고 사람을 자신의 색채로 물들이는 능력도.


딸, 네가 가진 장점은 무수히 많다. 단지 대리석 안에 갇혀 있는 너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아직은 다듬지 않은 거친 대리석일 뿐이지만 둘러싸인 가면을 벗기고 나면 다비드상 이상의 조각품을 빚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너답게 살아라.`


누군가 내 인생을 대신해서 살 수 없듯 가면을 제거하는 일도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너 안에 감춰진 보석을 끄집어내는 일은 이제까지의 삶보다 더 괴롭고 힘들 수 있다. 매일 아침 화장을 하며 예뻐지고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에 시간이 필요하듯, 네 안에 보석을 끄집어내는 일에도 시간이 필요함을 잊지 마라.


"아빠! 그러면 나 다운 게 뭐죠?"라고 묻는다면, 아빠는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다. 나다운 것은 "Let`s live my style." 네 style,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며 살라는 의미다.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 흉내 내며 살다 보면 너는 없어지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다. 나는 나일 뿐, 그 누구도 될 수 없다. 흉내 내면 너 안의 조각품은 모조품이 되고 만다. 너만의 윤기와 너만의 매끈한 아름다움은 단지 타인을 모방한 모습으로 변하고 만다. 그 누구를 배려하며 살기 전에 먼저, 너답게 살아라. 그것이 삶의 지혜이다.


"현재의 온실에 만족한다면 영원히 여러분의 시야를 넓힐 수 없을 것이다.“ 『하버드 인생특강』 마이클 샌들 외


온실 속 화초는 주인의 보호 속에서 물을 먹고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이한다. 자신의 주관대로 성장하고 자라는 삶이 아니라 주인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는 삶이다. 그 온실의 유혹은 매력적이다. 때 되면 살아갈 자양분을 주지만 딱 거기까지다. 더 크게 성장하려면 더 높은 곳을 향하려면 온실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의 인생을 더 크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 그 온실의 경계에 서서 고민하고 헤매는 시기가 지금의 네 모습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좋든 싫든 부모의 보호 속에서 자랐다.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부모의 힘에 좌우되는 삶이었다면 이제는 너의 힘을 기를 때이다. 너의 조각품을 찾을 때이다.


"내 안에 너 있다"라는 드라마 속 대사가 유행했었다. 연인끼리의 사랑의 언어로만 치부하기엔 아까운 문장이다. 네 속게 감춰진 너, 그 안에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을 찾아 나서는 길이 경계를 벗어나는 길이고, 경계를 벗어남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너목보(너의 목소리가 보여)`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 있다. 모든 패널이 음치 감별사를 자처하며 입 모양과 동작을 보고 음치를 구별한다. 음치라고 확신하며 선택했는데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뽐내는 이들을 보며 반전의 묘미를 느낀 적이 많았다. 그때 우리는 희열을 느낀다. 계산된 방식이 아니라 패널과 시청자를 함께 고민하게 한다. 일방적인 목소리의 전달이 아니라 시청자와 상호작용하는 컨셉이라 함께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더 열광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너목보`처럼 딸! 너의 목소리가 들렸으면 한다. 지금보다 더 크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으면 한다. `네 목소리를 내라.` 틀리든 맞든 상관없다. 단지, 네 목소리를 온전히 가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너는 너다. 너만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 때 `Your life`가 시작된다. 이제 스무 살. 인생 20년을 살았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20년 주기로 100세까지 산다면 다섯 번의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보통 20년 주기설이 위험과 격변을 얘기하지만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과정도 될 수 있다. 꽃다운 스무 살. 의지, 의존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자립`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채워나가기를 바란다. 스스로 일어서는 과정이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경계이다. `어느 선에 설레?` 주변 여건이 이렇게 묻는다. 타인의 목소리를 흉내 낼 것이냐? 네 목소리를 온전히 가질 것이냐?



흰 실은 물 들이기 나름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색이 하얀색이다. 어떤 색으로도 물들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람도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나며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게 된다. 습관이 몸에 배어 일상이 되듯 하얀색이 물들어 다양한 색깔로 덧입혀진다. 어떤 색깔을 선택할 것인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다. 그 선택을 돕는 과정에 부모와 교사와 같은 인생 선배들과 절친한 친구이라는 친구가 있다. 하지만 모두 조언자일 뿐, 선택할 순 없다. 같이 슬퍼할 수 있지만, 눈물을 대신 흘려줄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어떤 색으로 물들일래?”라며 어른들은 묻는다. 그 물음이 일상화되었다. 이 녀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도 있고 그냥 일상 대화의 방식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고 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자녀들을 통해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고 싶어 한다. 또한, 지금의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질문하며 스스로 그림 그린다. 그 그림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대신 그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또 지속해서 묻는다. 이 녀석이 어떤 모습으로 커 나갈지,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아니면 스스로가 포기할 때까지. 계속 꿈을 가지라며 강요하게 된다.


충고나 조언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일뿐이다. 인생선배의 경험을 살려 간섭하기 좋아한다. 그 시대에 살아왔던 삶의 궤적이 있기에 그 그림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그것이 더욱 쉽게, 올바르게 사는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앞선 우리가 경험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상상한 것 이상의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옛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미래는 내가 아니라 너의 몫이다.


"Be yourself" 너 자신이 되어라!


이 말에 네 인생의 방향이 달려있다. 그 방향이 가야 할 지향점이 되어 네 삶의 길을 인도해 가기를 바란다. 이 단어가 전인미답의 길을 가게 하여 힘겨워질 수도 있고 꽃길처럼 편안한 길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길일수록 길을 찾는 시간은 많이 걸린다. 똑같은 길이라도 가는 방식을 달리할 수 있다. ‘인생 똑같이 살면 재미없잖아.’ 지금보다 과거보다 조금은 더 다르게, 더 다른 색깔로, 너만의 길을 찾고 걸어갔으면 좋겠다.


“Be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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