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해고가 즐거울 수 있을까?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딸은 대학 입학 후 처음 맞은 여름방학이다. 살 것도 할 것도 많지만 고맙게도 기숙사비 반을 본인이 부담하겠다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루 2시간씩 일주일 내내 일한다며 면접보고 합격한 곳이 곱창집이다. 면접에서 사장님은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주 7일 근무해도 주휴 수당은 줄 수 없다고 했다. 주휴 수당이 뭔지 몰랐으니 고개만 끄떡였다고 했다. (사실, 주 15시간 이상 일해야 주휴 수당을 받을 수 있는데 주 14시간이니 수당 지급의 의무는 없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비가 얼마이고 언제 준다는 것도 모르는 깜깜히 계약이다. 같은 장소에서 계속하는 아르바이트는 처음이라 꼼꼼히 묻지 못한 것 같다. 사장님을 무한 신뢰한다며 을의 모습을 보여 주는 딸이 안쓰럽지만 배우는 과정이라 이해하고 싶었다.
아르바이트 첫날, 얼굴이 상기된 채로 돌아왔다. 손님은 많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헤매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단다. 실수도 여럿 했지만 그래도 하루를 이겨냈다는 만족은 있었다고 한다. 다가올 내일이 두려워지는 마음과 함께 잘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이튿날은 더 상기된 얼굴로 돌아왔지만 잘 적응해 가는 모습이 보여 대견했다. 셋째 날은 마칠 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왜 안 오지? 친구랑 만나 이야기하고 있나 보다 생각하며 지나쳤는데, 10시 반이 넘어들어왔다. 인사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데 얼굴빛이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아내가 물었다.
"무슨 일 있었니?"
"사장님한테 혼났어요."
"왜?"
"식기 세척기에 식기를 넣었는데 한 개가 흘러내렸어요."
"그런데……. 그것 가지고 혼내니?"
"식기가 걸려 세척기 문이 완전히 안 닫힌 상태로 작동될 뻔했어요, 사장님이 이게 300만 원 자리인데 고장 나면 네가 물어줄 거야! 라며 소리쳤어요."
"......"
"남편 사장님하고 밖에 있던 알바들 무슨 일인지 들어와서 보는데도 혼내서, 너무 자존심이 상해요. 일을 원래부터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미친 듯이 화부터 그렇게 내는지……."
"이그, 좀 잘하지. 그래도 그것 갖고 애한테 그러게 화내고 그래."
딸은 이야기하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먹였다. 스스로는 열심히 한다며 자기 일이 아닌 다른 아르바이트 일까지 도와줬는데 자기 일은 실수 연발이었나 보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한 살 어린 동생들이라 게네들 잘 못 한 것까지 혼났다고 한다. 아마도 일머리를 잘 몰라 눈치껏 행동하지 못했나 보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아르바이트생에게 혼내느냐며 얘기하자 남편 사장님은 잘해주시는데 아내분이 정색하며 혼내서 무섭다고 한다. 서러워서 집에 들어오다 남자 친구에게 전화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친한 친구에게 하소연하다 늦었다고 한다. 풀이 죽어 있는 딸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힘내라며 한마디 거들었다.
"아르바이트가 거기밖에 없어? 또 그러면 따지면서 그만둬 버려! 아르바이트도 교육하면서 하는 거지. 원래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세상일이 쉬운 일이 어디 있니? 남의 돈 받기 그래서 힘든 거다. 잘 참고 견디다 보면 인정받을 거다. 힘내라 딸!` 속마음은 이런 생각이었다. "네 알겠어요."라며 고개 숙이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다양한 맛을 보는 시기이다
딸은 이제 세상의 쓴맛을 보고 있다. 달콤한 부모의 품속에서 그리고 학교라는 보호막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상과 맞대면하고 있다. 자신의 노동력과 자존심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최저 시급에 얼추 맞춘 돈을 번다. 자본주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지만 아직은 지하실의 존재는 모른다. 더 낮은 곳에서의 경험도 세상의 쓴맛도 더 필요할 것이다. 팔팔 끓는 주전자에 데어 본 사람과 상식으로 끓는 주전자가 뜨겁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살아가는 방식이 틀리다. 체험에서 얻은 지식은 뜨거움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아픔에도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아픔을 경험해 보았으니까!
이런 경험은 나이 들어서 하면 슬프다. 될 수 있으면 한 참 젊었을 때 해 보는 게 낫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며 가끔 내게 되묻는다. `아빠 맞아! 딸인데 꽃길만 걷도록 더 소중히 키워야 하는데……. 어떻게 쓴맛, 신맛 다 맛보게 하려고 하니` 세상에 단맛만 있는 것이 아님을 딸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쓴맛, 신맛은 주전자의 뜨거움처럼 한 번쯤은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경험을 해 봤으면 한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버티고, 견디며 이겨낼 수 있을까? 세상에 꽃길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자갈길과 가시밭길이 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딸, 아니 내 딸이 소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담대함으로 잘 이겨나갔으면 좋겠다.
넷째 날, 아내에게 물으니 가기 싫어하면서도 말없이 곱창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딸에게는 고통의 시간이다. 일을 마치고 여전히 발그스레한 얼굴로 돌아왔다. 어제 보다는 덜 혼났다며 주말인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며 볼멘소리만 하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딸 장하다. 가기 싫고 혼나는 자리인 줄 알면서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찾아가는 용기가 가상했다. 그다음이 월요일이라 출근했더니 오후쯤 아내에게서 톡이 왔다.
"다은이 잘렸어!"
"?"
"아르바이트 사장이 문자 와서 그만 나와도 된다고 했대"
"뭐, 다은이는 괜찮아?"
"별말은 없는 데 좋아하는 것 같은데……."
사장에게서 온 문자 내용은 이렇다.
"다은학생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문자 보냅니다. 지난 4일간 아르바이트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미안합니다. 통장번호 보내주세요. 다시 한 번 미안하다 전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생애 첫 해고를 통지하는 문자다. 딸은 해고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내의 톡 내용처럼 기쁨일까? 그렇다면 역설적이다. 해고가 즐거움과 위안이 됨을 딸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우리 사회는 ‘해고는 살인이다’는 구호 아래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전개되는 곳이다. 이런 환경에 빠져 살면서 해고는 악하고 두려운 존재로 남아 있다. 그런데 딸에게는 이런 투쟁의 냄새가 없어 좋다. 느끼는 그대로의 단순한 마음의 표현이 더 와 닿는다.
‘이 일이 무척 힘드니 제발 강제로 나를 잘라 주세요. 제가 스스로 그만둘 용기는 없습니다.’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가슴 한편에 사직서를 움켜쥐고 던질까 말까 고민한다. 스스로 가장이라는 책임과 주변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박차고 나오지 못한다. 당장 가족의 생계가 걱정되지만, 가슴속에 딸이 느낀 이런 마음이 진실한 마음이다. 해고가 뭐라고 우리 사회가 우리 직장인들이 이렇게 벌벌 떨고 있을까? 삶에 붙잡혀 사는 인생의 단면에 날카롭게 베이는 심정이다.
해고가 즐거울 수 있는 세상이 어느 순간에는 오지 않을까? 세상은 정반합(正反合)의 체계로 돌아가지만 `반`하는 환경을 통해 기존의 가치관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합`하는 세상이 돌아올 것이다. 일을 찾고 일을 그만두는 일이 즐거울 수 있기를 딸을 통해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