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 묶어라

(질문) 신발 끈 묶을 수 있어?

by 글 쓰는 나그네


대학 들어가고 처음 맞는 방학이다. 이것저것 해보고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을 때이다. 대학 친구들은 방학하자마자 곧바로 여수 여행을 간다고 하고, 고등학교 친구들은 대천해수욕장 놀려 간다고 한다. 며칠 밤낮을 즐기며 억눌린 답답함을 털어내려 할 것이다. 함께 가고 싶지만 스스로 자제하는 딸을 보며 맘껏 즐기게 도와줄까 생각하다 접었다. 대학생이 되면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었다. 온실 속에 자란 화초보다 길바닥에 구르는 돌덩이가 되더라도 세상과 맞서기를 원했다. 약해지기보다 강해지기를 원했다. 다른 이에게 의존하기보다 다른 이들에게 손 내밀어 줄 수 있기를 바랐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야박한가?’라는 생각을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뻐하고 귀여워하는 아빠들도 많은데 나는 강해지고 자립할 수 있는 자질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 그런 나 자신이 미울 때도 많다. `그냥 딸이잖아. 남들처럼 하고 싶다는 것 다 들어주는 좋은 아빠의 모습이 되면 어때`라는 마음속 다짐도 해본다. 그 마음이 다짐일 뿐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딸에게 자립심을 길러줘야겠다는 결심을 서게 한 사건이 있었다.


고1이었던 것 같다. 학교 가려다 갑자기 현관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이리저리 신발만 쳐다본다. 그러다 출근하는 나와 마주쳤다.


"너 왜 이러고 있니?"

"갈 거예요."

"학교 늦지 않아"

"아직 안 늦어요."

"어! 신발 끈이 풀렸네!"

"아빠가 묶어주세요."

"네가 묶으면 되지!"

"저 신발 끈 못 묶어요."

"신발 끈을 못 묶는다고, 농담이지"

"아뇨. 신발 끈 한 번도 안 묶어 봤어요."

"그러면 체육 할 때 어떻게 하니?"

"친구들이 다 묶어줘요."

"헐……. 그게 말이 되니?"

"신발 끈 정도는 스스로 묶을 줄 알아야지"

"애들한테 얘기하면 돼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그럴 거야"

"남자 친구한테 시키면 돼요. 빨리 이거나 묶어줘요."

"그럼 배워야지. 그 정도를 못한다는 게 말이 돼?"


그 말과 함께 신발 끈을 묶어주고 출근했다. 이 일이 있고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의 손을 빌리는 삶에 익숙해지면 항상 기대며 살게 된다. 다른 이에게 기대며 사는 것만큼 처량한 삶은 없다. 자립이 별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자립이다. 그 자립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활동들이 있다. 밥 챙겨 먹고, 길 잘 찾고 신발 끈 묶는 일이다. 이제 대학생이 되었는데 신발 끈을 묶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신발 끈이 계기가 되어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자극했었다.


그 자극에 순수하게 반응하기보다 저항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빠의 생각을 이해하려 하지만 몸은 거부한다. 거부의 방식도 다양하다. 건성으로 듣거나 대꾸를 거부하거나 다른 친구 아빠와 비교하기도 했다. `왜? 나만 그래야 하나`라는 강한 불만도 튕겨 나왔다. 이럴 때면 아내와 상의를 한다. 내 행동이 너무 과한지? 방향이 잘 못 되었는지? 아내는 엄마의 시각에서 생각하고 조언을 하지만 결국은 내 고집대로 갈 때가 많았다.


"스스로 할 수 없으면 시장이 대신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딸에게 강조한 것 같다. 너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해. 네가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는 거랑 못하면서 안 하는 거는 천지 차이다. 나중에 주변에서 무시한다. 지금은 친구들이 적당한 선에서 도와주기도 하지만 매번 그럴 것 같으니. 절대 아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익한 존재일 때 신뢰하고 함께 가려고 한다. 피해를 주는 대상이거나 도움이 안 되는 존재이면 거리를 둔다. 적당할 때 이용하다 헤어질 이유를 찾게 된다. 그게 세상이고 그게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속 모습이다. 그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스스로가 강해져야 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 자신에게 답답하다. 내 안에서 고대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생존 방식을 추구하는 모습이 보인다. 약육강식의 세계와 강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의 늪에 깊이 빠져 들어가 있는 모습만이 내 모습이 아닐 텐데…….



냇물과 바닷물의 차이


그러면 나는 어떻게 자라왔을까?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내 고향은 거제도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으로 나와 누나 집에서 얹혀살았다. 섬에서 뭍으로 유학 보내신 것 보면 아버지는 막내에 대한 기대가 크신 듯했다. 별 볼 일 없고 잘하는 것 없던 내가, 자연스럽게 부모와 떨어져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 전학 간 때가 초 6학년이었기에 부모의 정이 그리울 때였다. 순박했던 고향 친구들보다 부산이라는 대도시의 샌님 같은 친구들은 버거운 상대였다. 새까만 촌놈이라며 무시도 받았고 김치밖에 없는 도시락이 초라해 펼쳐 보지도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먹지 않은 도시락 때문에 누나에게 혼날까 봐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다.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에 엄격해졌다.


시골과 도시의 관계는 냇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관계와도 같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맛을 지녔지만 언젠가는 부딪히고 어울려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다. 그 시기가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내가 나를 세우듯, 주변 사람들이 나를 세우게 만들어야 한다. 밀리면 한없이 무시당하는 모습을 많이 보며 스스로 강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타지에서 생활하며 몸에 밴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지금의 내 삶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듯, 딸의 인생도 꾸준한 도전과 실패의 과정을 겪으며 단단해질 것이다. `자립` `스스로`라는 단어에 나 자신부터 갇혀 있다. 그 틀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도 `스스로`해야 한다. 누군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와주기 위해 손 내미는 행동보다 함께 걸어갈 동반자를 찾아야 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교수는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라고 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함께 비를 맞는 관계이다. 부모가 자녀의 우산이 되어주기도 하겠지만, 자녀의 성장통을 함께 느끼고 공감한다면 올바른 치유의 과정이 될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삐뚤어질 테야’며 어긋나는 아이는 없다. 삐뚤어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강하게 보다는 유하게, 질책보다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야겠다. 딸에게 더 잘해 보고 싶다. 이제는 자립보다 따듯한 온기를 전해주고 싶어졌다.

신발 끈이야 내가 묶어주면 되지. 이런 생각하는 것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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