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금(禁) 하노라!

(질문) 삶은 이기는 것일까? 견디는 것일까?

by 글 쓰는 나그네

딸 방 앞에 서다


오늘은 토요일. 집 안에 아무도 없다. 모처럼 한적한 시간이다. 책도 싫고 TV도 싫고 소파도 싫다. 거실을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다 딸 방 문턱에서 멈췄다. 심심했나 보다. 이 방에 들어서면 복잡한 세상을 접하게 된다. 그래서 두렵다. 방문 손잡이를 잡고 잠시 머뭇거렸다. 마음은 거실을 향하는데 손은 방문 손잡이를 돌려서 열고 있다. 드디어 만난 딸 방, 생각한 만큼 기대한 만큼 난장판이다. 기대가 있었기에 실망스럽지는 않다. 난잡한 바닥을 거쳐 책상 위에 눈길이 멈췄다. 눈앞에 "좌절 금지"라고 적힌 부채가 한동안 마음을 붙잡는다.


"좌절"

세상에 나왔지만 날지도 못하고

꺾여버린 새의 날개 같다는 느낌이 든다.


`좌절`이라는 단어에 `금지`라는 부정의 언어가 붙어, 아이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품으라는 메시지다. 그런데 왠지 더 서글퍼진다. 청소년기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또한 소소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좌절이 갖는 단어는 실패라는 단어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다. 도전을 통한 실패는 더 나은 이야기를 향한 발걸음이 된다. 하지만 좌절은 이야기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만 같다. `묻지 마! 나에겐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어!` 이렇게 단정 짓게 되는 것이 좌절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 내면의 목소리인 것만 같다.


요즘은 예전보다 금(禁)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놀지 마라, 싸우지 마라, 핸드폰 하지 마라, TV 보지 마라, 거기에다 좌절까지 하지 말라니 하면 안 되는 것들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할까? 해라! 는 긍정의 단어보다 하지 마라! 는 부정의 단어가 입에서 맴돈다. 말로는 좋은 경험이 필요하고 세상을 향해 포효해 보라고도 하지만 실패를 통해 겪게 되는 아픔을 부모가 감내하기 힘들어한다. 아이들보다 부모가 먼저 담대해지고 강해져야 금하는 것들이 줄어들 것 같다.


부모의 관점에서 벗어나면 한없이 포용해주고 감싸주고 안아줄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 내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면 정죄하고 지적하게만 된다. 왜? 부정적인 모습들만 유난히 많이 비치는지, 이제는 내 자녀에 대한 걱정을 금(禁)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세대는 스스로가 걱정과 기우라는 틀에 갇혀 있다. 권(勸)하는 사회가 아니라 금(禁)하는 사회가 되어 간다. 이래서야 창의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때로는 `똘끼`로 가득 찬 이들이 주목받아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새롭고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권하는 사회로 한 걸음 더 전진해 갈 것이다.



역경에 맞서는 선택


삶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견디기 위해서는 내 앞에 놓인 역경이라는 장애물과 좌절이라는 늪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역경을 마주하게 될 때, 대부분 2가지의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 상황을 회피하든지 아니면 정면으로 맞서든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어떠한 사람으로 성장하는가와 직결된다.


나는 딸에게 당당하게 맞서라고 얘기한다. 정당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이전에, 올바르게 사는 삶을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 또한, 도전을 통한 용기를 획득하게 되기를 원한다. 용기는 노력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노력 없는 도전은 실패라는 단어를 품고 있다. 도약하고 더 크게 뛰기 위해서는 움츠리는 자세가 필요하듯, 더 크게 날기 위해서 더 큰 날개를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역경에 맞서라는 모진 아빠의 모습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의 이야기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제대로 크는 시점은 모든 것이 잘 풀릴 때나 풍족한 때가 아니라 시련을 겪고 역경과 맞서 싸울 때다. 맞서서 싸우는 자에게 값진 승리라는 열매가 주어진다. 시련을 겪으면서 더 단단해지고 역경과 마주하면서 더 강해진다. 더 단단해지고 더 강해져서 넘어져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을 키워야 한다. 이 회복 탄력성은 훈련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훈련, 역경에 맞서는 훈련, 좌절이라는 단어를 넘어서는 훈련이 수반될 때 마음의 근력이 단단해진다. 이 근력이 오뚝이처럼, 용수철처럼 눌려도 힘차게 튀어 오르는 힘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넘어졌다고 포기하지 마라. 우리는 끊임없이 넘어지면서 걷는 법을 배웠다. 넘어짐이 없었다면 네 발로 기어 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두 발로 걸을 수 있기에 두 손이 자유로워졌고 그 두 손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어엿한 스무 살. 이제 너를 가두는 빗장을 풀었다. 내가 푼 것이 아니라, 네가 풀었다. 빗장은 구속을 주는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자유를 준다. 궤도를 이탈하지 않을 자유, 책임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 스스로 결정에 힘겨워하지 않을 자유……. 그 자유를 박차고 나갔으니, 더 행복해야 하지 않겠니? 그 힘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은밀한 힘에서 나온다. 은밀한 힘은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죽순이 땅속에 뿌리를 박고 힘을 기르는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키워야 한다. 그리고 한 번에 응축되면 폭발하는 거다.


마음의 근력도 똘끼도 그리고 회복 탄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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