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참 고마워'라고 진심으로 말한 적이 있니?
제목 : 없음
- 여준서 -
“언젠가 너에게 이렇게 말하는 순간이 올 거야
그때의 그 아픔으로 인해 지금의 네가 있는 거야
그 시련을 겪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예쁜 소녀일지 몰라
참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꼭 필요한
선물 같은 일이었어
참 고마워.
그러니까 괜찮아. 정말 괜찮아.
너무나 소중한 너의 삶이고
너의 지금이니까.“
2019. 08. 17 (토)
모처럼 도서관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뜬금없이 아들에게서 톡이 왔다. 노트북 화면을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에 제목 없는 시가 한 편 놓여 있다.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아들에게 물었다.
“이게 뭐니?”
“그냥 써 봤어요”
“네가 쓴 글이니?”
“네”
“잘 썼다. 아들!”
여기서 ‘너’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의미하는지. ‘예쁜 소녀’라는 단어는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아들에게 물어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다고만 말한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아린다. 이제 중3인데, 사용되는 단어에 아픔이 묻어 있다. ‘아픔’ ‘시련’ ‘제자리걸음’ ‘힘들다’는 의미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 것일까?
“아빠, 나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청소년은 그 나름의 발랄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나이보다 더 어른스러워지면 그것 자체가 불행이다. ‘너처럼 사는 삶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삶’이 중요한 시대이다. 이타적인 삶 속에도 나를 위한 이기적인 삶은 필요하다. 청소년은 청소년다운 글과 행동이 동반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이 글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아픔과 시련과 힘겨움에 너무 힘들지만, 미래의 나에게 잘 이겨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삶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견딤의 대상이다. 이기려고 하지 말고 잘 견디면, 그 아픔과 시련도 선물이 될 수 있다. “참 고마워”라는 말이 아주 좋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시름이 녹아내린다. 힘들 때 누군가 곁에 있어만 줘도 위로가 된다. 위로의 눈물 한 방울에 사람은 감동하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참 고맙다’는 이 말. 인생 살며 제대로 들어보지도 해보지도 못했다. 오로지 나만 보고 앞만 보고 살아온 삶인가 보다. 아들의 짧은 시 한 구절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참 고마운 존재였을까? 친구와 직장동료 그리고 주변 이웃들에게……. 하물며 아내와 자녀에게도 듣지 못한 말이다.
생각 나무를 심어라
아들이 점점 성장하고 있다.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할 때는 ‘머리 컸다고 개기냐?’라는 말도 했지만, 몸이 크는 것만큼 내면도 함께 크고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할 때면, ‘그래서 네 생각은 뭐니?’라고 묻는다. 대화를 통해 ‘생각 나무’를 심겨주려고 노력했는데 어느새 스스로 그 나무를 심었다. 활동적인 성격이라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삶을 통해서 배우고 익혀서 앞으로 나아간다. 가끔은 무작정 부딪히며 사는 삶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배움은 이론과 계획을 수반해야만 좋은 것은 아니다. 몸으로 부딪히며 몸이 겪고 말하는 것을 익혀야 한다. 머리만 성장하려 하지 말고 몸이 동반된 성장이 필요하다. 몸이 말하고 몸이 느끼는 이야기를 가슴으로 읽어내는 과정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청소년기엔 따듯한 감성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차가운 이성에 의한 지식의 탐구와 암기보다, 따듯한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삶의 부딪힘이 중요하다.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스파크가 튀고 열이 난다.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감동하기도 한다. 화날 때 화낼 줄 알고, 슬플 때 울 줄 알고, 감동할 때 기쁨의 환호를 지를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이고 그게 삶이다.
그런 면에서 아들은 성장했다. 때로는 대서고 때로는 흥분하고 또 때로는 감동하는 글을 남기기도 한다. 학교 선생님들께 인기가 많다고 한다. 공부를 잘해서는 절대로 아니고, 감성적인 접근을 잘하는 것 같다. 선생님들께 손편지를 쓰고, 긴 톡으로 마음을 전한다. 얼마 전에는 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선생님인데 교장 선생님께 지적당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께 손편지를 썼다. “지나가다 우연히 듣게 되어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 꾸중 듣고 계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게 다가와서 힘내시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 ” 이런 식의 내용이다. 요즘 세상에 학생이 선생님께 손편지를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다 보니 그 편지를 받는 선생님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좋아하신다고 한다. 아들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따듯하게 드러내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이 어설프지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시를 쓸 힘을 주지 않았을까?
나무에는 나이테가 있다. 한 해의 다양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고생했다고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삶에도 이런 나이테가 있다. 화내고 울고 환호성을 지를 때 사람도 나이테로 한 살씩 먹는 것이다. 그만큼 성장하고 성숙했다는 의미이다. 아무 문제 없이 성장하지 않는다. 아무런 아픔 없이 성숙하지 않는다.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라는 노래 제목처럼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이겨내고 아픔까지도 사랑할 때, 어른아이의 모습이 아닌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직은 괜찮다. 어른이 아니니 네 안의 너에게 솔직해지면 된다. 잠잠히 네 목소리를 들어라. 그 안에서 말할 것이다.
‘아빠 전 아직 어려요. 하지만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요. 왜냐하면, 인정받고 싶거든요.’
나이테는 절대 거꾸로 만들 수 없다.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필연적인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지금은 그 시간과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니, 조급해하지 마라.
‘이제는 너의 시간이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