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절대 후회하지 마라

(질문) 네가 열 수 있는 문은 몇개나 되니?

by 글 쓰는 나그네


“절대”, “후회”라는 말을 아들에게 가끔 한다. 이 말은 대부분 아들과 대화의 벽에 부딪힐 때 쓰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거나 진로에 대해 엉뚱한 생각을 할 때면 묻는다. “너 그러고도 나중에 절대 후회하지 않겠어?” 사실, 후회할 거라는 말이다. 그러니 너의 선택을 바꿨으면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책임을 자녀에게 떠넘기며 부모의 책임이 아니라 네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부모가 비겁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면 될 터인데 굳이 이렇게 비꼬아서 표현하고 있다고.


하지만 부모가 돼 봐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고 하지 않나. 자녀와 맞서고 싸우다 보면 지친다. 논리적인 이해와 공감에도 한계가 있다. 설득하기에는 내가 가진 설득의 논리가 부족하다. 아닌 것은 확실한데 표현하기 힘들다. 이럴 때 책임을 떠넘기며 부담을 주려고 한다. 이러면 좀 돌아서려나라는 마지막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퇴로를 열어 둬라. 『당신이 옳다』의 저자 정혜신 씨는 “나중에 후회하거나 힘들다고 하지 마라”는 말은 아이에게 퇴로를 막아버리는 말이라고 한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기에 그 다양성을 무시하고 ‘이것 아니면 안 돼! 무조건 이 길만 가!’라고 강조한다는 의미다. 아이가 커서 자신이 선택한 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돌아서야 하는데, 부모의 강한 질책이 족쇄가 되어 돌아서지 못하게 한다. 아닌 걸 알면서 계속하게 되는 것만큼 힘든 삶은 없다. 아이에게 퇴로를 열어줄 수 있도록 믿음을 줘야 한다. 그 믿음은 소통에서 찾아야 한다. 소통은 잘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녀의 말을 잘 들음으로 공감의 방이 만들어지고 그 방이 믿음의 공간이 되고 퇴로를 열어주는 지렛대의 역할을 하게 된다. 길을 막아서는 일, 부모가 너무 잘하는 일이다. 잘하지 말아야 할 일을 더 잘하려고 하니 꼰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급여 받으며 살고 있지만 절대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다. ‘내가 선택했지만, 나의 선택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직장이라는 울타리는 선택했지만 내가 원하는 길은 찾지 못했다는 의미다. 퇴로가 막혀 있지는 않다. 하지만 퇴로를 열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일, 지금의 직장을 벗어나면 사오정, 손오공이 될 것이다. 퇴로는 다른 누군가가 막고 있지 않다. 내가 스스로 자기만의 틀 안에 가두고 있을 뿐이다. 그 틀을 스스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혼자가 아니고 가장이라는 빨대가 꽂혀 있기 때문이다.



두 종류의 후회


“세상에는 두 종류의 후회가 있다. 하고는 싶었으나 해보지 못한 아쉬움에서 오는 후회와 실컷 용기를 내어 실천했지만 기대보다 성과가 좋지 못한 서운함에서 오는 후회, 어떤 후회가 더 나쁠까?”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김난도-

청년들에게 하는 말이 내게 쏘는 화살촉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끔하기도 하고 따듯하기도 하다. 아쉬움에서 오는 후회보다 서운함에서 오는 후회가 더 낫다. 미련보다 후회가 나은 것처럼. 해 보지 않고 두고두고 해 볼 걸 하며 미련으로 쌓아두기보다는 저질러 보고 잘 안 되면 후회하는 것이 더 낫다. 아들에게도 미련보다 후회가 더 나음을 가르쳐야 하는데, 부모의 입장이 되면 후회보다 미련을 선택하게 된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똑똑한데 노력을 안 해서 그래’라며 끝없는 미련을 옆에 두고 놓지 않는다.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만들려면 다양한 조합을 통한 실험을 해야 한다. 그 실험을 통해서 새로운 약이 만들어진다. 실패도 하고 애초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도 되지만 어떻게든 앞으로는 나아간다. 이처럼 선택을 하고 실행을 하면 실패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부모가 살아온 과정이 자녀에게 하나의 고정관념이 되어 있다. ‘내가 이제까지 온몸으로 살아봤어. 이렇게 하면 반드시 실패하고 후회한다. 그러니 너는 이 길은 절대 선택하지 말고 저 길을 선택해. 알았지. 아들!’ 매번 이 말이 입속을 채우고 있다. 머리는 깨어 있으려 노력한다. 다양한 책도 읽고 다양한 사색도 하고 다양한 경험도 한다. 머리는 어느 정도 깨어 있지만 입은 깨어 있지 못하다. 생각이 부딪히면 듣고 경청하며 소통하기보다 투박한 입버릇, 말버릇으로 자녀에게 명령조에 가깝게 지시한다. 부모의 권리는 이런 것이란 것을 바로 보여주고 싶은 게다.


뇌과학자인 정재승 교수는 『열두 발자국』 실망과 후회의 차이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실망’은 기대치보다 결과가 낮게 나올 때를 말하고, ‘후회’는 선택의 문제에서 하나를 선택했을 때 결과가 낮게 나올 때. A를 선택하지 않고 B를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 실망과 후회의 범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망과 후회의 과정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하든 선택은 해야 한다. 선택하지 않는 결정장애는 없어야 한다. 요즘 세대를 ‘결정장애 세대(Generation maybe)’(1)라 한다. 스타워즈의 요다처럼 모든 것을 쉽게 결정해주는 이는 없다. 가끔 하는 그 결정에 초 치지 말자. 또한, 후회하지 말라는 범주에 꼭꼭 쑤셔 넣어서 자녀들을 가두지 말자. 그 범주가 자녀 인생의 잘못된 틀이 될 수 있다.


절대 가두지 마라. 동물은 가두면서 순종은 가르쳤지만, 자유는 잃었다. 자유를 잃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이 없어진다. 자기 주도권을 상실하면 내 삶이 아니라 다른 이의 삶을 살게 된다. 누군가를 위한 이타적인 삶은 괜찮지만, 주도권을 상실한 이타적 삶은 안된다. 자녀도 가두면 점점 자유를 잃게 되고 자신을 잃게 된다. 분명히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일이 많은데 부모의 눈치를 보게 되고 의지하게 된다. 가두면 의존적 삶의 길로 접어들게 한다. 세상을 변화시킨 위인들의 대부분은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라고 한다. 지킬 것이 없는 차남은 자신을 스스로 가두지 못하고 틀 밖으로 뛰쳐나갔다. 현재의 울타리에서 얻을 것이 없기에 세상 밖으로 나가 새로움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뛰쳐나가지 않았다면 그 안에서 순종하며 자유를 잃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도 장남의 권위 안에서만 가능했을 것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회장의 말처럼 수많은 선택지가 주어진 곳이 세상 밖이다. 그 밖에서 뛰어놀게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가두지 말자. 절대로!


이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으면 되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며 소시민의 삶에 만족하며 살았다. 큰 꿈을 꾸기보다 작은 파이 한 조각에서 행복을 찾았다. 그 작은 파이가 절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큰 꿈을 가질 기회의 문은 열어 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라.”라는 말처럼, 현실은 낮고 보잘것없지만 새우가 고래가 되는 길은 열려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쪽문만 열려고 하지 말고, 솟을대문도 열고 나갈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 문은 안에서 여는 것보다 밖에서 여는 게 바람직하다. 품 안의 자식은 옛말이다. 품 밖으로 밀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일어선다. 그래야 두 다리에 근육이 생기고 힘이 생긴다. 그 힘으로 스스로 다양한 선택의 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 문은 내가 열고 싶을 때 열 수 있는 문이 될 것이다.

자녀의 삶을 부모가 대신 살아줄 수 없듯, 선택의 문은 대신 열어 줄 수 없음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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