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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Jul 06. 2023

침묵하는 나!

Today story - 179

 침묵이 미덕이라는 말을 수 없이 많이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참을 인자를 여러 번 새기며 사는 것이 다툼을 피하는 방법이고 가장 무난한 삶이라는 것도 포함해서. 하지만 마음속 깊이 피어나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이제는 다투고 싶어 집니다.



 나는 배웠습니다.

'정직하게 살아라. 올바른 행동을 해라. 다른 이에게 피해 주는 삶을 살지 말아라. 조금 더 손해 보고 살아라...'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는 몰랐지만, 다툼을 유발하는 행위는 하지 말라는 교육을 삶 속에서 익히고 배웠다. 항상 아버지의 가르침엔 변화가 없었다. 고향이 거제도의 작은 농어촌 마을이었지만 그 작은 곳에서도 항상 불협화음을 내는 사람이 있었다. 함께 사는 의미보다 자신의 주장만 항상 옳다며 핏대 세우며 싸우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아버지는 화를 억누르시며 '아들 너는 저런 인간은 되지 마라'라고 밥상머리에서 무언의 훈육을 하셨다. 말하지 않으셨지만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배운 것은 침묵이었다.

아버지는 불의에 항거하시기보다는 침묵으로 평화를 추구하셨다. 나서봐야 도움 될 것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셨다. 그곳에서 40년을 사셨지만 토박이가 아니라 외지인이었다. 김 씨, 이 씨 등 집성촌의 성격이 짙기에 논란이 되면 결국엔 친인척 편이 되고 마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계셨다. 도덕적인 삶을 살라고, 불의에 항거하라고 배우지만 침묵이 평화였고 내 일이 아니면 끼어들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래서 침묵하며 불의에 회피했다. 내가 아니면 맞서기보다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 피함이 결국 내 손과 내 발을 묶어버리는 수갑이 될 터인데, 한 치 앞도 못 보는 언제나 아둔한 인간이 나의 모습이었다.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말한다.


"우리의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침묵입니다."    


이 침묵을 다른 시각으로 전개한 것도 있다. 한승동의 <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에서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세력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면서 그들과 한패가 됐던 보수 주류 언론들이 바뀐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여론과 담론의 전복이 필요했다. 그들은 '민주냐 반민주냐'라는 당시의 주류 담론을 '영남이냐 호남이냐'의 지역주의 담론으로 바꿔치기했다."  


세상의 시류에 편승한 보수 언론들이 살아남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고, 또 힘을 가지기 위해 담론을 전복했다는 글의 무게에 동조하게 된다. 침묵은 가끔 편 가르기를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말과 글로 편 가르기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침묵을 통해 상대의 분열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지만,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되는 때가 있다. 누군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나, 불의에 항거해야 할 때 그리고 내가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할 때이다. 특히 스스로에게 침묵해서는 안된다. 말해야 할 때, 나서야 할 때, 나서지 못하고 침묵한다면 양탄자 아래의 괴물이 몸집을 키워 집을 통째로 이고 달아나는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 것이다.


말의 아픔,
글의 고통보다
어쩌면 침묵의 외면이
더 무서운 분열의 괴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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