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상희 Feb 20. 2024

나는 이제, 찌질녀가 아닌가

오해는 사치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네 명의 가족 중 세 명이 2월에 생일이 있어서 가장 빠른 날짜에 태어난 남편의 생일날 세 명이 함께 모여서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르며 축하는 했었다. 그래도


아침에 남편이 평온하게 드르렁 거리며 자고 있었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 그까짓 것 뭐 대단한가 생각하다가, 그래도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쯤 해줄 수도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조금 서운해졌다. 아침밥을 차리고 남편을 깨우고는 '혹시,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하고 물었다. 까치집을 지은 머리를 하고는 어리둥절이다. 옛날 같았으면 기분을 감추고 눈물을 꾹 참으며 하루를 보낸 후 밤에 혼자 울었었다. 그건, 말 그대로 옛날에 그랬다.


나에게 빨리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


아하하, 남편이 웃으며 축하해 주었다. 꿈에도 몰랐단다. 기억했다면 미역국이라도 끓였을 텐데 정말 생각도 못했단다. 까마귀 고기야 나도 꽤나 먹고 있는 중이니, 용서한다. 오전 스케줄을 마치고 집에서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있는데 남편이 짜장면을 시켜 놓겠단다. 그러라고 했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기에 말이 짜장면이라고 하지만 중식을 시키려나보다 생각하며 짬뽕이나 또는 탕수육을 시켜 놓았을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남편은 사이드메뉴를 거의 시키지 않은 성격이고, 나는 사이드메뉴가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다. 집에 가니 간짜장이 도착해 있었다. 아, 옛날 같았으면 또 울었다. 나는 질한 여자였나 보다


혹시, 이거 나 생일이라고 간짜장 킨겨?


어! 어떻게 알았어! 당신 생일이라 짜장면이 아니라 간짜장 시켰어. 나 잘했지?


고마워요. 나는 또 탕수육이라도 시켜줄 줄 알았네.


둘을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 웃었으니 되었다. 남편은 탕수육을 시키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뭐, 괜찮다. 간짜장이 맛있어서 용서가 되었다. 실컷 웃고 나서 맛나게 먹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양이 너무 많다, 그렇지?


허공에서 남편과 나의 눈빛이 마주쳤다. 남편이 얼른 말했다. '미안해.' 교육의 힘은 강하다. 나의 눈빛에서 나의 마음을 읽어내다니, 그에게서 내공이 느껴진다.


나, 맛있게 다 먹으려고 하고 있는데 '양이 많다'라고 말하면 내가 다 먹을 수가 없잖아. 돼지 같잖아!


푸하학 남편인 또 웃는다. 말을 뱉자마자 다시 주워 담고 싶었단다. 이건 욕먹을 말이다 싶었단다. 이제 나는 남편의 악의 없는 말에 혼자 오해하고 울고 밤을 새우고 그러지 않는다. 돌려 말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느낀 말하고 나의 요구사항을 말하기도 한다. 진실은 항상 바로 앞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 혼자서 외로워하고 혼자서 괴로워하던 많은 날들. 이제 서로 헛헛헛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날을 세우다가 막 그런다. 생일은 좋다. 막 생 난리를 쳐도 용서해 준다. 마음 넓은 남편.


점심을 먹고 가족 단톡에 내 생일을 빨리 축하하라고 독촉을 해서 축하를 받아냈다. 아침댓바람부터 윙크안경점에서도 축하하는 생일을 이렇게 닦달을 해서 받아내다니. 장하다!




이전 04화 나는 참을성이 없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