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참을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충청도 사람답게 참을성이 대단하다. 뜨거워도 꾹 참고, 차가워도 꾹 참고, 힘들어도 꾹 참고, 괴로워도 꾹 참았다.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울고 꾹 참았다. 나의 참을성이 입을 꾹 닫아버리는 것으로 잘못 표출되기도 하지만 나는 나름, 참을성이 참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더랬다.
아니었다.
나는 미련한 거였지 참을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미련함과 참을성이 많다는 차이가 많다. 참을 만한 것을 참는 것이 참을성이지, 참아서는 안될 일에 참는 것은 미련이고 방관이고 포기다. 나는 참지 않아도 될 일까지도 참아내느라 많이 아팠었다. 그러면 안 됐지만, 성격이 그런 걸 어쩔 것인가.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제법 상도 많이 받았었다. 배우는 것도 잘한다. 창의성은 없어도 끈기는 있어서 배우는 대로 곧잘 따라한다. 그래서 겁이 없었나.
연필화를 배운 지 한 달째다. 1시간 30분 동안 그림을 그리는데 60분쯤 지나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다. 나의 참을성은 60분이 한계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그림자 한 땀 한 땀, 모두 그리는 것이 정말 화가 난다. 나는 내가 성격이 차분하고 진득하고 참을성이 많고 끈기가 있고 뭐 그런 줄 알았는데 연필화를 배우면서 알았다. 나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물을 사사삭 발라서 내가 원하는 색을 한방울 떨어뜨리면 나름의 그림이 되는 수채화가 그래서 좋았나 보다. 연필화를 그리다가 60분이 지나면 슬며시 연필을 놓고 손을 든다.
선생님, 다른 거 그리면 안 돼요?
선생님께서 내 그림을 보시고 안된단다. 아직 멀었단다. 명암을 더 줘야 하고 선을 더 그려야 하고 아래에서 위로 그려야 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려야 하고 -
선생님, 미춰버리겠어요. 못하겠어요.
안된단다. 성글게 말고 촘촘하게 다시 더 그리란다.
못하겠어요-라고 아이들이 말하면 나도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었다. 더 생각해 보라고, 분명히 더 좋은 생각이 날 거라고, 더 좋은 표현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미안하다. 얘들아.
하기 싫은 마음을 부여잡고 연필을 잡고 다시 그린다. 역시 성글다. 그리다가 너무 우습다. 원본과 너무 다르다. 원본의 그녀는 무언가 의연하게 바람을 즐기는 것 같은데 내 그림의 그녀는 화가 잔뜩 나있다. 말 걸었다가는 한 대 맞을 것 같은 표정이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늘 도망치듯 나온다. 집이 몹시 그립다. 그래도 나는 참을성과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되면 무거운 발걸음으로 화구를 챙겨서 집을 나선다. 나는 정말 참을성이 있는 건가. 객기가 가득한 건가.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