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좋았다.
가끔은 어떠한 의도를 가지도 한 행동이 아니었는데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대단한 계획을 세우고 행동한 일이 허투루 끝나는 경우도 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자면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었음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 어쩌면 축복받은 인생이라고 하고 싶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올해로 40해가 지났다. 그러다가 가족납골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오랜 시간 차근차근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심을 하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사실 가족들은 결심을 하고 어떤 묘를 할지 정하고 나서 파묘를 할 날짜를 잡는 것이 다였다. 그리고 마음을 앓는 것.
어쩌다가 내가 9월 내내 읽던 책은 리사 슐먼의 『슬픔의 해석』이었다. 파킨슨병 전문의 리사 슐먼이 배우자를 잃고 쓴 이야기지만 엄마 잃은 아이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리사 슐만은 남편이 떠난 지 4년이 지났어도 공항에서 가방을 잃고 자신이 있는 도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꿈을 꾼다. 그래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황망한 순간을 잊기 위해 불타는 건물에서 도망치듯 떠나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애도해야 한다고, 심사숙고해서 길을 고른 뒤 차분하게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그녀는 충고한다. 어떠한 의도 없이 집어 들었던 『슬픔의 해석』은 파묘의 날을 기다리며 우울에 빠져 지내는 나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여름의 끝을 알리는 장대비가 내리던 날 파묘가 진행이 되었다. 40년 전 군대에 있어서 누나의 장례에 참석하지 못했던 둘째 외삼촌이 내내 눈물바람이었는데, 갑작스런 장대비에 삼촌이 논의 물길을 잡느라 잠시 다녀온 사이 엄마의 유골을 정리하게 되었다. 묘 안은 생각지도 않게 물이 차 있었다. 비가 와서가 아니었다. 물이 차 있는 것 자체도 마음이 아픈데 혹시 유골이 유실될까 모두 걱정했지만,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한 여자여서일까, 값싼 나일론 재질의 수의를 입혔던 덕에 썩지 않은 수의 안에 고이 간직된 아주 작은 유골까지도 건사할 수 있었다. 둘째 삼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슬퍼하며 통곡하였을지, 내 슬픔도 벅찬데 누군가를 위로하고 그 넋두리를 듣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40년이 지났다고 슬픔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잊고 살다가 아프다가, 잊고 살다가 아프다가의 반복이다.
참 모를 일이다. 묘에 물이 찼는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래서였는지 화장을 하면서도 내내 추웠을 엄마의 몸이 뽀송하게 마르고 따뜻하게 덥혀지는 느낌이어서 덜 슬펐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꼭 해야 하나 싶었는데, 하고 나니 이보다 잘한 일이 없다. 파묘를 결정하고, 비가 오고, 외삼촌이 자리에 없던 그런 일들 하나하나에 엄마가 함께했음을 느꼈다. 엄마는 더위에 지친 우리에게 가을을 선물하고 편히 자리 잡으셨다.
선한 끝은 있다고, 젊었을 때는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나를 왜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는지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억울해하고 과연 신은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심했었다. 그러나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고,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세상은 나의 편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