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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Jun 01. 2023

전원 코드를 뽑아 주세요

리셋이 필요해요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던 건조기가 멈췄다. 무슨 일이지 싶어 다시 전원을 누르고 동작을 누르니 또 된다. 며칠 뒤 다시 건조기를 돌리니 또 멈춰서 또 한 번 동작을 눌렀다. 그럭저럭 빨래가 건조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잘 마르고 있다. 습기 가득한 젖은 빨래가 건조기 안에서 뽀송뽀송 따뜻하게 마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몹시도 당황스럽다.


일주일 뒤에 기사님이 방문할 수 있게 AS신청을 하고 조심스럽게 건조기를 사용해 보았다. 잘 된 건지,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별일 없이 빨래가 잘 말랐다. 


온몸에 불긋불긋 반점이 올라와서 병원 문 열기를 기다렸다 달려가서 의사 선생님 앞에서 배를 깠는데 새벽 내 올라왔던 반점이 사라져서 당황했던 내가 떠올랐다. 아무런 처방도 받지 못하고 진료비만 날렸다. 기계는 AS기사를, 내 몸뚱이는 의사를 무서워한다. 우선 누군가가 고치겠다고 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고쳐지려 노력하는 걸까?


오늘 방문 예정인 기사님이 어제 전화를 했다. 방문이 예정을 확인하는 전화였는데 우리 집처럼 AS신청을 했다가 기계가 잘 돌아가는 경우가 심심찮은 건지 건조기가 아직도 잘 되지 않는지를 물었다. 지금 잘 되고 있지만 그래도 기사님께 한 번쯤 점검을 해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기사님은 방문을 했음에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수리를 할 수 없지만 출장비는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전원 코드를 뽑아 보세요.


라고 했다. 30분 동안 전원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꽂으라는 거다. 그러면 건조기가 리셋이 되는데 그 후 사용해 보란다. 그리고 출장 전에 전화를 할 테니 방문을 할지 말지를 알려달라는 거였다. 전화를 끊고 기사님의 권고대로 해보았다. 잘 된다. 잘 돌아간다. 잘 마른다




6월이 시작되었다. 벌써 6월이다. 퇴사 후 많이도 쉬었다. 이제는 스케줄이 잡혀 보따리 장사도 다시 시작해야 하고 쉬는 동안 공부했던 사회복지사 실습도 해야 한다. 160시간의 실습은 6월과 7월에 걸쳐 하기로 했다.


전원을 끄고 한동안 쉬었더니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쉬다가 일하려니 마음을 다잡는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다.

사람도 기계도 잠시 전원을 꺼 두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전원만 끄는 건 쉬는 게 아니었다. 코드를 꼭 뽑아야 한다. 퇴사를 했다는 것이 전원은 끈 것이지만 이것저것 일이 많은 나는 코드까지는 뽑아두지 못했던 모양이다. 대기전력을 늘 가지고는 할 일이 생기면 벌떡벌떡 일어났던 거다. 코드를 뽑지 않았던 나는 쉬는 기간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기운이 풀풀 충전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코드는 다시 꼽았고, 전원을 켰으니 이제 동작 버튼을 누르고 다시 시작해야지..




6월의 챌린지가 있다면 10분이라도 내 몸의 전원코드를 뽑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제발 부시닥 거리지 말고 음악도 듣지 말고 커피도 마시지 말고 그냥, 딱 10분 마당만 바라보기. 아 안 되겠다. 3분도 버티지 못하고 풀 뽑을 것 같다. 하루 10분 하늘 바라보기로 바꿔본다. 

나, 성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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