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잘 부탁해.
여름에 심은 수세미, 방울토마토, 큰 토마토, 오이는 11월이 가까워 오는 시기까지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고 있다. 이미 낮에도 조금씩 추워짐을 느끼지만 햇볕이 따뜻한 날에는 '오늘은 열매가 그래도 조금 더 익겠지'라며 아직 과실들이 익어가기를 희망해본다.
그러가다 문득 더 이상 열매가 예전만큼 자라지 않고 진초록색이었던 잎들도 조금씩 연두색, 갈색으로 퇴색되는 것이 보이는 시기가 온다. 이때가 바로 여름 텃밭을 정리해 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아직 덜 익은 열매에 대해 아쉬움이 남지만 이대로 텃밭에 두었다가는 곧 내릴 서리에 한꺼번에 냉해를 입기 때문에 덜 익은 열매라도 일찌감치 수확하여 주는 것이 좋다.
텃밭에 심은 작물을 정리할 때 함께 해주는 일은 바로 '채종'이다.
지난봄과 여름 사이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던 식물들이 다음 생을 위해 씨앗을 남기는데 이를 거두는 일이다. 열매를 수확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왠지 일 년 텃밭관리를 잘했다는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올해 일 년을 잘했으니 내년 한 해도 잘 부탁한다면서(내년을 기약하며) 주는 선물 말이다.
씨앗부터 심고 키운 후 다시 씨앗까지 수확해야 비로소 그 식물을 완전히 키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여름작물들의 씨앗을 채종 할 즈음이 되면 일 년이 벌써 다 지나갔다는 생각과 함께 올해 키움은 끝났다는 마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씨앗을 구매하면 되는데 굳이 채종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럽 상추와 같이 종자 회사에 특허권이 있어 채종이 불법인 작물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키운 작물을 채종 하는 것은 특권이다.
갓 채종한 씨앗은 이듬해 심어도 그 싱싱함이 남아있다. 발아율도 좋고 무엇보다도 작물의 자급자족면에 있어서 채종만 한 것이 없다.
요즘 국제적으로 식량 종자에 대한 특허권에 관해 말이 많다.
이를 이야기하자면 길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고자 한다. 어쨌든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채종의 기쁨과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물론 작물을 베어나고, 씨앗을 털고 꽃이 진 후 꽃대가 잘 마르기까지 기다리는 그 과정이 맘에 차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식물이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며 주는 작은 선물들을 흘려버리기엔 너무 아까우니 말이다.
탈탈 털어주거나 씨방을 거꾸로 들기만 해도 씨앗이 쏟아지는 식물들
바질, 깻잎, 민트류, 매발톱, 파, 부추, 금잔화, 메리골드 등
손으로 따 주거나 씨방을 비벼주어 채종 하는 식물들
해바라기, 상추, 수레국화, 둥근 잎 유홍초 등
껍질이 겹겹이 있거나 솜이 붙어 있어 별도의 작업을 해 주어야 하는 식물들
목화, 크림슨 클로버, 천일홍 등
과육 안에 씨앗이 있어 과육 섭취 후 채종 할 수 있는 식물들
수박, 사과, 토마토, 오이, 호박, 수세미 등 과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