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와 데리다가 말하는 진실의 해체
당신의 DNA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르고 있을까? 수천 년 전 조상들의 삶과 기억이 우리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다면, 그것을 꺼내어 볼 수 있지 않을까? 2018년 출시된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Assassin's Creed:Odyssey)는 이 매혹적인 상상에서 출발한다. 애니머스라는 가상 기계를 통해 DNA 속에 저장된 고대 그리스인의 기억을 재현하는 이 게임은 단순한 역사 체험을 넘어선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향방이 바뀌고, 신화 속 괴물이 역사적 존재가 되며, 우리가 알던 역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에 직면한다.
이렇게 확실해 보이는 과거를 흔드는 시도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1930-2004)의 사유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그는 우리가 믿는 절대적 진리나 원본이란 것도 사실은 끊임없이 다시 읽히고 해석되는 하나의 텍스트일 뿐이라고 말했다. 마치 오디세이에서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새롭게 쓰이는 것처럼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한 장을 생각해 보자. 누군가는 그 사진의 구도를, 다른 이는 등장인물의 표정을, 또 다른 이는 배경을 주목할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보면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데리다는 이처럼 하나의 대상이 끊임없이 새롭게 읽히고 해석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의 관점에서 모든 것은 '텍스트'이며, 심지어 가장 확실해 보이는 역사적 사실조차도 끊임없는 해석의 대상이 된다.
오디세이는 이러한 데리다의 시각을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극적으로 구현한다. 플레이어는 카산드라(또는 알렉시오스)가 되어 고대 그리스를 누비며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과 마주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선택, 가족과 임무 사이의 선택, 진실을 밝힐 것인가 감출 것인가의 선택. 이 모든 선택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연다.
오디세이에서 플레이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역사책에서는 이미 결말이 정해진 이 전쟁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데리다가 말한 '해체(Deconstruction)'가 바로 여기서 일어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서사는 분해되고, 새로운 가능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게임은 '역사적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를 교묘하게 해체한다. 예를 들어 페리클레스의 죽음을 다루는 장면에서, 플레이어는 역사책에 기록된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경험하게 된다. 페스트로 인한 죽음이라고 알려진 그의 최후에 사실은 다른 음모가 숨어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시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역사의 각색이 아니라, 우리가 '확실한 사실'이라고 믿어온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디세이는 현대의 주인공 라일라가 DNA를 통해 고대 그리스인의 기억을 체험하는 이중적 구조를 가진다. 이는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의미는 결코 완전히 현전 하지 않으며, 항상 지연되고 변형된다는 것이다. 라일라가 체험하는 과거는 '진짜' 과거가 아닌, 현대인의 관점에서 재해석된 과거다. 마치 우리가 옛날 사진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 현재의 관점이 자연스럽게 개입되는 것처럼 말이다.
애니머스를 통한 기억 재현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DNA 속에 저장된 기억이 불완전하거나 손상되었을 때, 시스템은 그 빈 공간을 자동으로 채워 넣는다. 이는 우리가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역사가들이 단편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과거의 모습을 재구성하는 것처럼, 게임 속 애니머스도 불완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나의 가능한 버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라일라가 체험하는 과거는 단 하나의 버전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카산드라(또는 알렉시오스)의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이는 '진정한 기억'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SNS에 남긴 수많은 기록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되고 의미가 변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디세이는 역사와 신화의 경계를 흥미롭게 해체한다. 미노타우로스, 메두사, 스핑크스와 같은 신화 속 존재들이 게임에서는 역사적 실체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한 괴물이 아닌 고대 그리스인들의 두려움과 욕망이 만들어낸 존재들로 그려진다. 예를 들어 미노타우로스와 조우하는 장면에서, 플레이어는 이 전설적 존재가 사실은 의식을 치르는 제사장의 가면일 수도, 혹은 실제 괴물일 수도 있다는 모호한 상황에 놓인다.
이는 데리다가 말한 '이분법의 해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와 신화,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우리는 더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을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세계관과 역사를 담은 중요한 텍스트였다. 오디세이는 이러한 관점에서 신화를 재해석하며, 동시에 우리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어온 것들도 일종의 신화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게임은 소크라테스, 페리클레스, 알키비아데스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을 재조명하면서 이러한 경계의 모호함을 더욱 강조한다. 교과서에서 만나는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게임에서 거리의 철학자로 등장해 플레이어의 선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는 역사적 인물도 결국 후대의 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일종의 신화가 되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는 표면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모험을 그리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게임이 보여주는 것처럼 역사는 결코 하나의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는 살아있는 텍스트다.
이러한 관점은 결코 허무주의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가 단 하나의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 풍부한 이해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마치 좋은 소설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듯 역사도 들여다볼 때마다 새로운 통찰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오디세이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절대적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관점에서 과거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현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과거를 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현재를 사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 게임과 데리다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espinosa_rosique/8567442079 by Arturo Espinosa
https://www.goodfon.com/games/wallpaper-assassin-s-creed-odyssey-odisseia-assassins-creed-ubisoft--3.html by Devogorin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hinmoy_Guha_with_Derrida_%28cropped%29.jpg by Wikimedia Commons
https://www.flickr.com/photos/fernandoblaya/41097272160 by Fernando Bla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