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오브 어스>가 보여주는 레비나스의 연민과 책임
2013년 출시된 <라스트 오브 어스>는 인류가 감염병으로 거의 멸망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거리엔 변종 감염자들이 배회하고, 생존자들은 서로를 약탈하며 살아간다. 도덕이나 정의를 논하기엔 너무 처절한 상황이다.
이런 세계관은 단순한 배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문명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인간다움이 가능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감염자들의 공포스러운 모습은 인간성을 잃은 존재의 상징이며, 약탈자들의 폭력은 도덕이 사라진 세상의 민낯을 보여준다.
주인공 조엘은 이미 큰 상실을 겪은 인물로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고 자신만 살아남으려 한다. 하지만 게임은 그에게 엘리라는 소녀를 맡기면서,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조차 너는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한편,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자(他者)와 마주치는 순간'이 곧 윤리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생존만을 우선하는 이 폐허 같은 세계에서, 과연 타자를 향한 책임이 남아 있을까? 이는 단순한 철학적 사변이 아닌,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던지는 실존적 질문이 된다.
조엘은 딸을 잃고 냉혹해진 생존자다. 사람을 믿지 않고 목적을 위해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감정 표현도 최소한으로만 하며 굳이 남을 챙길 이유가 없다는 태도로 살아간다. 그의 차가운 태도는 단순한 성격이 아닌,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다. 게임은 그의 과거를 보여주는 짧은 장면들을 통해 그가 왜 이토록 자신을 단단한 갑옷 속에 가두었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엘리는 감염에 면역이 있는 특별한 소녀지만 동시에 너무 어린 나머지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운 존재다. 그녀는 황폐해진 세상에서도 순진한 호기심과 인간적인 온기를 버리지 않는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녀가 보여주는 '희망'이다. 면역이라는 특수성을 넘어, 그녀는 이 절망적인 세계에서도 웃음과 장난을 잃지 않으며, 타인에 대한 신뢰를 간직하고 있다.
처음 조엘은 엘리를 단순히 '임무'나 '짐'처럼 여긴다. 하지만 게임은 이 둘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서로에게 없던 감정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밀도 높게 보여준다. 특히 이들의 관계 변화는 대화나 긴 설명 대신 작은 행동과 표정의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위험한 순간에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의 톤이 달라지고, 평화로운 순간의 침묵이 점차 편안해지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화한다.
'살벌한 세상에서 이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결심하는 순간, 조엘 내면에서 타인에 대한 책임이라는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를 넘어선다. 엘리는 조엘에게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게 하는 거울이 되고, 조엘은 엘리에게 이 혹독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스승이 된다.
엠마누엘 레비나스(1906~1995)는 "윤리는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단순한 도덕론이나 윤리학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조건을 탐구한다. 몇 가지 핵심 개념을 통해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얼굴(Face)
레비나스에게 '얼굴'은 단순한 신체 부위가 아니다. 그것은 타자의 취약성과 존엄성이 동시에 드러나는 장소다. 다른 사람과 실제로 마주 보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은 나에게 말한다. "나를 해치지 말라. 나를 돌보라." 이 요구는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끼는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명령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얼굴이 가진 저항할 수 없는 힘이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 앞에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게 된다.
책임(Responsibility)
얼굴을 본 나는 이미 그를 책임질 '부름'을 받게 된다. 내가 원하거나 말거나 타자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 내 앞에 나타난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레비나스는 이 책임이 우리의 존재 자체에 새겨져 있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임이 비대칭적이라는 점이다. 타인이 나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든, 나의 책임은 줄어들지 않는다.
윤리의 근원
레비나스에게 윤리는 어떤 합리적 사고나 도덕규범 이전에, 타자를 외면할 수 없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는 공리주의적 계산이나 의무론적 규칙에 앞서는 원초적 경험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조건이다.
(1) 미션 초반의 무심함
게임 초반부 조엘은 엘리를 데리고 이동하면서도 사실상 냉담한 태도를 유지한다. 플레이어가 조엘을 조작해 전투나 잠입을 진행할 때, 엘리는 자주 위험에 노출된다. 처음엔 그녀가 다치거나 말거나 내 사정이 아니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러한 냉담함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닌 상처받지 않기 위한 적극적인 거리 두기다. 조엘의 내면에는 '또다시 누군가를 잃는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여러 차례 엘리를 보호하는 이벤트를 던진다. 적이 갑자기 엘리를 낚아채려 할 때 우리는 즉각 대응해야 한다. 이 순간이 바로 게임만이 줄 수 있는 체험이다. 내가 조엘이 되어 엘리를 지키지 않으면, 그녀는 죽거나 심각한 위험에 빠진다. 이런 순간들은 단순한 게임플레이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플레이어는 조엘의 입장이 되어 '보호해야 할 존재'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2) ‘얼굴’이 전해 주는 울림, 구체적 장면 예시
한 미션 중에 엘리가 약간 엉뚱한 농담 책을 꺼내 웃으려 애쓰는 장면이 있다. 조엘은 척박한 환경에서 "이게 무슨 소용이람.." 하면서도 잠깐 미소를 지으며 엘리를 바라본다. 이 짧은 순간은 게임의 전환점이 된다. 엘리의 순수한 시도는 조엘의 단단한 방어막에 작은 균열을 만든다.
또 다른 장면은 엘리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게 되는 상황이다.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충격과 공포를 마주한 조엘은 더 이상 무심한 태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의 얼굴'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엘리의 고통이 조엘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그는 처음으로 진정한 보호자의 역할을 자각하게 된다.
레비나스식으로 말하면 엘리의 '얼굴'이 주는 순수함과 연약함이 조엘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이다. 아무 쓸모없는 농담 책 조차 죽음이 일상화된 세계에서 나는 아직 사람이고 싶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그런 순간이 쌓이며 조엘은 이 아이를 그냥 버려둘 수 없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애착을 넘어서는 윤리적 각성의 순간이다.
(3) 후반부 결말의 딜레마
게임 후반부 조엘은 엘리를 희생시키면 인류를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마주한다. 여기서 게임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깊은 윤리적 딜레마를 제시한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한 개인의 생명이라는 전형적인 공리주의적 계산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는 그런 선택을 거부하고 끝까지 엘리를 지키려 한다. 누군가는 이를 이기적인 결정이라 부를 것이고, 또 누군가는 유일한 가족을 지키려는 당연한 마음이라 여길 것이다. 이 선택의 순간은 단순한 플롯의 전환점이 아니라, 레비나스가 말하는 윤리적 책임의 본질을 드러내는 철학적 장면이 된다.
레비나스적 관점에서는 바로 눈앞의 '얼굴'을 외면하고 다수의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는 근본적인 윤리를 배반하는 일이다. 엘리는 한 명의 구체적 '타자'이며, 그 존재를 어떤 논리로도 지워버릴 수 없다는 것이 조엘의(또는 플레이어의) 결단인 셈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개인을 희생해 다수를 살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바로 내 앞의 얼굴을 버리는 것이 정말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묵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라스트 오브 어스>의 배경은 누구도 믿기 힘들고, 타인을 배려할 여유조차 없을 만큼 가혹하다. 그런데도 조엘과 엘리는 서로에게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한다. 이때 레비나스가 말한 인간이 인간으로 남는 길인 타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의 여정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다. 게임은 여러 차례 "그저 살아남는 것"과 "인간답게 사는 것"의 차이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그들이 만나는 다른 생존자 집단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선택했다. 약탈자들은 폭력으로, 격리 지역의 주민들은 엄격한 통제로, 혹은 무정부 상태의 혼돈 속에서 살아간다. 이들은 모두 생존에는 성공했지만, 과연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남긴다.
생존 그 이상의 의미
게임의 다른 사람들은 생존에만 몰두하거나 폭력으로 군림하려 한다. 반면 조엘은 점차 이 아이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그가 폭력을 쓰는 이유조차 지금은 악행처럼 보이지만, 레비나스적으로 해석하면 타자를 보호하기 위한 책임감의 표현일 수 있다.
조엘의 폭력성은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 성격이 변화한다. 초반의 폭력이 단순한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면, 후반부의 폭력은 "엘리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변모한다. 이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레비나스의 관점에서 이는 복잡한 질문이 된다. 타자에 대한 책임이 다른 타자를 해치는 것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플레이어의 체험
게임이 영화나 소설과 다른 점은 우리가 직접 조엘을 조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를 구하려면 내가 직접 총을 쏘고, 위험지역을 탐색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해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진짜 이게 옳은 걸까?"라는 의문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상호작용적 체험은 윤리적 딜레마를 단순한 사고실험이 아닌, 직접적인 경험으로 만든다.
게임의 전투 시스템은 이를 잘 드러낸다. 대부분의 전투는 피할 수 있는 선택지로 주어지지만, 엘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반드시 대응해야 한다. 이런 게임 메카닉을 통해 플레이어는 "무엇을 위한 폭력인가?"를 계속해서 고민하게 된다. 생존만을 위한 폭력과 타자를 지키기 위한 폭력 사이의 윤리적 차이를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결국 '파멸한 세상에서 왜 인간성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레비나스는 답한다. 타자의 얼굴이 우리를 부르고 있으니까. 이 불가피한 책임감이 인간이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마지막 이유라는 것이다. 게임은 이 철학적 명제를 추상적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서사와 경험으로 전달한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가혹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서도 옆 사람을 돌보고 책임져야 할 이유가 남아 있는지 집요한 물음을 던진다. 이는 단순한 서사적 장치를 넘어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윤리적 질문들을 건드린다.
개인과 전체의 딜레마
게임의 가장 강력한 철학적 질문은 한 개인의 생명과 인류 전체의 생존 사이의 선택에서 나온다. 언뜻 보면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답은 명확해 보인다. 한 명을 희생해 수백만을 구한다는 계산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이런 계산법 자체를 문제 삼는다. 바로 눈앞의 '얼굴'이 가진 절대적 가치는 어떤 수적 계산으로도 상쇄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복잡한 것은 이 선택이 당사자의 의사와도 관련된다는 점이다. 엘리 자신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 했지만, 조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타자에 대한 책임이 때로는 그 타자의 의지와도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보호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타자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역설이 여기서 드러난다.
폭력의 정당화 문제
게임은 또한 '선한 목적을 위한 폭력'이라는 오래된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조엘이 엘리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는 단순히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넘어선다. 레비나스의 관점에서 보면, 한 타자를 지키기 위해 다른 타자를 해치는 행위는 더욱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
게임은 여러 생존자 공동체를 보여주며 각각이 택한 생존 방식의 윤리적 함의를 탐구한다. 어떤 공동체는 엄격한 규율로, 어떤 곳은 폭력적 지배로, 또 다른 곳은 완전한 무질서 상태로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에는 성공했지만, 인간다움을 지키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윤리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게임 말미에 조엘이 내리는 결정은 그 답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그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누군가는 타자의 얼굴을 지키려 한 진짜 인간으로 볼 수도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윤리의 딜레마이고, 동시에 우리가 무릎을 탁 치게 되는 통찰이다.
게임을 마치고 나면 우리는 단지 좀비 게임을 플레이한 것이 아닌, 한 사람만을 끝까지 지키는 행위가 정말 옳은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 속에 잠긴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판단의 문제를 넘어선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레비나스의 철학이 시사하듯,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인간성이 시작되는 지점일 수 있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이 추상적인 철학적 명제를 구체적인 서사와 경험으로 변환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무너진 세상이라도,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곁에 있는 바로 그 '타자'였다."
이 마지막 깨달음은 단순한 게임의 결말을 넘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윤리적 통찰 중 하나를 담고 있다. 문명이 무너진 세계에서도,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 이미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naughty_dog/7210732418 by naughty_dog
https://flic.kr/p/c2JvZ by Bracha_Ettinger
https://www.goodfon.com/games/wallpaper-the-last-of-us-part-i-dzhoel-zdanie-gorod.html by Ruslan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