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의지와 도덕법칙 사이, 게임은 어떻게 윤리적 행위를 질문하는가
게임에서 실수를 했다면? 대부분은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어떤 게임은 다르다. 2015년 출시된 언더테일은 플레이어의 모든 선택을 영원히 기억한다. 게임을 삭제하고 다시 설치해도, 과거의 선택은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현실처럼, 혹은 우리가 SNS에 남긴 흔적처럼 말이다.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런 시대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모든 행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추상적 원칙에 가까웠던 이 생각이 디지털 시대에는 놀랍게도 현실이 되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기록되고, 복제되고, 전파된다. 하나의 게시물이 밈이 되고, 트렌드가 되고, 문화가 된다.
언더테일의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적대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들을 만난다. 여기서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싸워서 제거하거나, 대화를 통해 이해하거나. 쉬운 선택은 전자다. 하지만 게임은 이 쉬운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실제로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처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RPG처럼 적과 싸우며 진행했다. 그러다 몇몇 플레이어가 평화로운 플레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소식은 급속도로 퍼졌고, 많은 플레이어들이 모든 존재를 살리는 플레이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선택이 하나의 법칙이 된 것이다.
칸트는 이를 '정언명령'이라고 불렀다. 네 행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원칙이다. 디지털 시대에 이 원칙은 더욱 절실해졌다. SNS의 댓글 하나, 온라인 게임에서의 행동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작은 선택이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언더테일은 플레이어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낸다. 실수로 캐릭터를 해치는 것과 의도적으로 해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칸트가 강조한 '선의지' 개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과가 아닌 의도가 행동의 도덕적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게임 속 평화주의 루트는 결코 쉽지 않다. 적대적인 캐릭터의 공격을 피하면서, 대화를 시도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많은 시도와 실패가 따른다. 하지만 이 어려운 선택이 주는 결과는 명확하다. 모든 존재와 친구가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보편적 법칙이 될 만한 행동이다.
반대로 제노사이드 루트는 무서운 실험이 된다. 모든 것을 적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는 선택. 이것이 보편적 법칙이 된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게임은 이 선택의 결과를 끝까지 보여준다. 돌이킬 수 없는 파멸과 영원한 죄책감이 바로 그것이다.
인터넷은 우리의 행동을 영구히 기록한다. 한때는 "인터넷에 올린 글은 영원히 남는다"가 경고의 문구였다. 이제는 일상의 현실이 되었다. 지우고 싶은 과거도, 숨기고 싶은 행동도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 언더테일은 이런 시대의 특성을 게임으로 구현했다. 플레이어의 모든 선택이 지울 수 없는 기록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칸트의 통찰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그의 정언명령은 "네 행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라고 말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실제로 모든 행동이 복제되고 전파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악의적인 댓글이 새로운 문화가 되고,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밈이 되어 퍼진다. 우리의 선택은 정말로 하나의 법칙이 되어 돌아온다.
언더테일의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두 번의 심판을 받는다. 하나는 게임 내에서의 결과다. 평화의 길을 선택하면 모든 캐릭터와 친구가 되고, 폭력의 길을 선택하면 황폐한 세계가 남는다. 다른 하나는 게임을 벗어난 곳에서의 심판이다. 플레이어의 선택은 게임 데이터에 영구히 기록되어, 이후의 모든 플레이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현대인의 삶과 닮아있다. 우리는 현실과 온라인이라는 두 세계에서 살아간다. 온라인에서의 행동은 "그냥 게임이야" 혹은 "인터넷일 뿐이야"라고 치부할 수 없다. 그것은 실제 영향을 미치고, 실제 사람들에게 고통이나 기쁨을 준다. 가상공간에서의 선택도 도덕적 무게를 갖는 것이다.
칸트는 도덕적 행동의 기준이 결과가 아닌 의도에 있다고 보았다. 선한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는 행동의 모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행동의 의도만큼은 분명히 할 수 있다.
게임은 흔히 폭력의 매체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게임이 전투와 충돌을 주요 메커니즘으로 삼기 때문이다. 언더테일은 이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폭력은 선택사항일 뿐 필수가 아니다. 오히려 평화로운 해결이 더 완성도 높은 결말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게임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다. 처음에는 그냥 게임이라 생각하고 쉬운 길을 택할지 모르겠지만, 게임이 선택을 기억한다는 걸 알게 된 후 게이머는 자신이 수행하는 행동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쉬운 길이 아닌 옳은 길을 선택하는 '선한 의지'의 본질이다.
칸트의 철학은 18세기의 것이지만 그가 제시한 원칙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선명해졌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기록되고, 복제되고, 법칙이 되어 돌아온다. 언더테일은 이런 시대의 특성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게임이라는 매체로 구현해 냈다.
이제는 "이 행동이 기록될까?" 대신 "이 행동이 보편적 법칙이 되어도 괜찮을까?"라고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남기는 모든 디지털 흔적은 미래의 누군가에게 하나의 선례가 된다. 그것이 선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길 바란다면, 지금 우리의 선택에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https://www.deviantart.com/vr-mmorpg/art/Undertale-Wallpaper-Desktop-569316982 by VR-MMORPG
https://picryl.com/media/immanuel-kant-portrait-c1790-f59dc7 by Wikimedia Commons
https://printerval.com/undertale-determination-heart-undertale-house-flags-p39871685 by Shabby Ra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