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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속 디오게네스는 바위를 밀어올린다

Getting Over It(항아리 게임)으로 읽는 카뮈의 부조리 철학

by 신영

Getting Over It with Bennet Foddy(2017)와 알베르 카뮈(1913-1960)


항아리에 담긴 채 망치 하나로 암벽을 오르는 Getting Over It의 주인공. 게임은 시지프스의 상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끝없는 추락의 순간에서

"Getting Over It은 고통을 견디는 힘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게임입니다." - 게임 내 나레이션

망치가 바위를 긁는 소리, 캐릭터의 신음, 플레이어의 한숨이 뒤섞인다. 화면 속 디오게네스는 추락하고 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다. 수십 분간의 끈질긴 등반으로 겨우 도달한 높이에서, 단 한 번의 작은 실수로 시작점으로 또 다시 돌아가는 중이다. 이 순간은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린 시지프스가 그것이 다시 굴러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처럼.


<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는 2017년 출시 직후부터 독특한 반향을 일으켰다. 항아리에 몸을 담은 채 망치 하나에 의지해 끝없는 등반을 시도하는 이 게임은 어떠한 친절한 안내도, 쉬운 길도 제공하지 않는다. Wired지는 이 게임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둡게 웃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도전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 게임을 개발한 베넷 포디(Bennett Foddy)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호주에서 태어나 멜버른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전자음악 그룹 Cut Copy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2003년 인지과학과 인간의 중독을 주제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약물 중독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이후 옥스포드 대학에서 과학 윤리 연구소 부국장을 거쳐 NYU게임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그는 2006년부터 독학으로 게임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철학계의 부정적 시선을 우려해 동료들에게 게임 개발 사실을 숨겼다는 점이다.

1913-1960년을 살았던 알베르 카뮈. 그의 부조리 철학은 반세기가 지난 후 디지털 게임으로 재해석되었다.

1913년에 태어나 1960년에 세상을 떠난 알베르 카뮈가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를 알았더라면, 이 항아리게임이라 불리는 Getting Over It에 깊은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인간의 의미 추구와 세계의 침묵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탐구했던 카뮈의 통찰이 이토록 직접적이고 강렬한 방식으로 구현된 사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편함의 시대를 게임하다

"이 게임은 당신을 좌절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좌절은 의미가 있습니다." - 게임 내 나레이션
CLOP에서 말의 네 다리를 따로 조작하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

포디가 만든 게임들은 '의도적인 불편함'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2008년 제작된 QWOP에서 플레이어는 육상 선수의 각 근육을 Q, W, O, P 키로 개별적으로 제어하며 100m를 달려야 한다. GIRP에서는 키보드의 각 키가 암벽의 특정 홀드에 할당되어 있어, 마치 트위스터 게임처럼 키보드를 잡아야 한다. CLOP에서는 말의 네 다리를 따로따로 조작해야 한다. Getting Over It은 이러한 게임들의 계보를 잇고 있다.

QWOP(2008)에서 플레이어는 육상선수의 각 근육을 개별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이런 게임들의 근원에는 두 가지 영감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1980년대 아케이드 게임의 난해함과 TV 게임기의 즉시성을 재현하려 했다고 포디는 말한다. 그러나 더 깊은 층위에서 이 게임들은 카뮈가 말한 실존적 상황을 다루고 있다. 카뮈는 인간의 조건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도 계속해서 살아가고 도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반항이라고 보았다. 플레이어들은 매 순간 이러한 반항을 체험한다.


부조리한 세계의 거울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한 시간? 아니면 더 오래?" - 게임 내 나레이션
항아리 속 디오게네스. Getting Over It의 주인공 디자인에 영감을 준 고전 회화로, 장레옹 제롬의 1860년 작품이다.

Getting Over It은 <시지프스의 신화>를 게임 메커니즘으로 구현했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무관심해야 한다는 포디의 신념은, 우리의 의미 추구에 침묵으로 답하는 세계에 대한 카뮈의 관찰과 정확히 일치한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명확한 목표(정상에 오르는 것)를 제시하지만, 그 과정은 끊임없는 좌절로 가득 차 있다.


독특한 특징은 저장 기능의 부재다. 대부분의 현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저장할 수 있게 해주는 것과 달리, 이 게임은 이러한 안전장치를 제공하지 않는다. "비디오 게임이 가진 중독성과 강제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포디는 말한다. 이는 그의 약물 중독 연구 경험이 게임 디자인에 반영된 지점이다.


게임의 나레이션은 이러한 철학적 의도를 더욱 강화한다. 플레이어가 크게 추락할 때마다 들리는 포디의 목소리는 위로나 격려보다는 상황에 대한 객관적 관찰을 제공한다. 이는 마치 카뮈가 시지프스의 상황을 관찰하며 보여준 태도와 비슷하다. 둘 다 판단이나 동정 없이 그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실패를 사랑하는 법

"매 실패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습니다." - 게임 내 나레이션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 게임은 이 신화적 상황을 디지털 환경에서 재현한다.

Getting Over It에서 실패는 게임의 핵심 요소다. 카뮈가 시지프스의 고통스러운 반복을 통해 인간 실존의 본질을 들여다보았듯이, 이 게임은 실패와 반복을 통해 독특한 경험을 창조한다. 플레이어가 추락할 때, 게임은 그 순간을 숨기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천천히 캐릭터의 추락을 쫓으며,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개발자의 나레이션이 흐른다.


이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독특한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그들은 자신의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격려한다. 특히 게임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플레이어들의 좌절과 극복의 순간이 실시간으로 공유되었다. 2018년 Independent Games Festival의 최고상 후보에 오른 것도 이러한 독특한 플레이어 경험 때문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아무도 당신의 첫 작품이 완벽하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라고 그는 NYU 게임 센터의 학생들에게 자주 조언한다. 이는 단순한 게임 디자인 철학을 넘어 실존적 가치에 대한 통찰이기도 하다.


의도된 좌절의 역설

"좌절은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승리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 게임 내 나레이션


Getting Over It의 독특한 지점은 '의도된 좌절'의 디자인이다. 기술적 완벽함에 대한 집착은 창의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포디는 말한다. 게임을 개발하는 동안 그는 의도적으로 작은 기술적 결함들을 남겨두었다. 이는 마치 카뮈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조건을 긍정했던 것과 닮아있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안전장치와 편의성을 추구한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현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즉각적인 만족감을 위해 설계되는 반면, 이 게임은 의도적으로 그 만족을 지연시킨다. "때로는 불편함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포디는 언급했다. 이는 카뮈가 <반항하는 인간>에서 말한 '의식적인 반항'과 맥을 같이 한다.


포디가 게임의 즉시성을 중시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1980년대 TV 게임기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긴 로딩 시간이나 복잡한 메뉴 없이 바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게임을 실행하자마자 플레이어는 게임 세계로 내던져진다. 이는 카뮈가 말한 '직면'의 순간, 즉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 상황과 마주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추락과 상승 사이에서

"당신이 정상에 오를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변해있을 것입니다." - 게임 내 나레이션
철학자에서 게임 개발자가 된 베넷 포디. 그의 실험적 게임들은 Independent Games Festival에서 호평받았다.

게임의 결말은 의미심장하다. 무수한 좌절과 실패 끝에 정상에 도달했을 때, 플레이어가 발견하는 것은 화려한 보상이나 극적인 연출이 아니다. 단지 조용한 음악과 함께 흐르는 별들, 그리고 개발자의 담담한 목소리뿐이다.


포디의 여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통찰을 제공한다. 전자음악 밴드의 베이시스트에서 도덕철학자로, 다시 게임 개발자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발전시켰다. "창작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가장 잘 이루어집니다." 이는 카뮈가 문학을 통해 시도했던 것과 같은 작업이다. 다만 그 매체가 달라졌을 뿐이다.


QWOP로 시작된 포디의 실험적 게임들은 Getting Over It에서 정점을 찍었다. 게임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되었고, Independent Games Festival의 최고상 후보에 오르며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게임이 우리 시대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카뮈가 시지프스를 통해 보여주었듯이, 삶의 의미는 종종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된다. Getting Over It은 좌절과 실패, 그리고 끝없는 도전 속에서 그러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철학적 통찰을 전달하고 플레이어에게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항아리 게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정한 도전이자, 카뮈가 꿈꾸었던 예술의 한 형태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LOP by Bennett Foddy

https://www.lookandlearn.com/history-images/YWA0108946/Diogenes by Walters Art Museum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QWOP_screenshot.jpg by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creenshot_from_Getting_Over_It_With_Bennett_Foddy.png by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ennett_Foddy_receiving_2018_GDC_IGF_Nuovo_Award_%2840064691935%29.jpg by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e_Mythe_de_Sisyphe.png by WIKIMEDIA COMMONS

https://www.flickr.com/photos/vfutscher/31375928770 by vfuts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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