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엘리시움과 사르트르의 놀라운 대화
어느 날 당신은 한 남자로 깨어난다. 끔찍한 숙취, 모텔 방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낯설고, 머릿속은 혼돈의 소용돌이 그 자체다. 이것이 바로 '디스코 엘리시움(Disco Elysium)'의 시작이다.
이 설정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정한 본질이나 정해진 운명 없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의 실존 말이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말처럼 "인간은 먼저 존재하고, 그 후에 스스로를 정의한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이 철학적 명제를 게임이라는 매체에 녹여내며 플레이어에게 직접 체험하게 한다.
"이것은 내 얼굴인가?"
해리 드 부아(Harry Du bois)는 거울에 비친 낯선 얼굴을 바라본다. 그는 완전한 기억 상실 상태로 마티넘의 한 허름한 모텔 방에서 눈을 뜬다. 전날 밤의 기억은 물론,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앞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동시에 끝없는 공허가 펼쳐진다.
이 비어있는 상태는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설명한 '무(無)'의 상태와 놀랍도록 닮아있다. 과거도, 정체성도, 심지어 가치관까지도 모두 사라진 백지상태다. 이 상태에서 해리, 정확히는 그를 조종하는 플레이어는 순수한 선택의 자유를 마주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이 자유는 축복이 아닌 무거운 족쇄와도 같다. 해리가 느끼는 극도의 공포와 혼란은 바로 이 무한한 가능성의 무게에서 비롯된다.
해리의 기억 상실은 단순한 플롯 장치가 아니다. 그는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지워버렸다. 사르트르의 철학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현재 모습을 부정하고 다른 존재가 되기를 열망한다고 설명한다. 해리는 자신의 괴로운 과거로부터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역설적으로 그에게 새로운 시작점을 선사한다.
이제 플레이어의 손에 해리의 운명이 맡겨진다. 공산주의자? 자본주의자? 파시스트? 모럴리스트? 울트라리버럴? 이 모든 선택지는 열려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단순히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그 선택의 복잡한 결과와 책임까지 플레이어에게 온전히 경험하게 한다.
마티넘 지구는 부조리함이 물리적 형태를 취한 공간이다. 주변을 둘러싼 바다가 부패한 냄새를 풍기고, 오래된 건물들은 썩어가는 치아처럼 도시 풍경에 박혀있다. 한때 코뮌 혁명의 중심지였던 레바숄은 이제 실패한 이상과 부패한 정치, 약물 거래와 깊은 절망으로 뒤덮여 있다.
카뮈(Albert Camus)의 철학에 따르면, 인간은 의미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면서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디스코 엘리시움에서는 이 부조리한 세계의 개념이 놀라운 시각적, 내러티브적 깊이로 구현된다. 거대한 구멍이 도시를 집어삼키고, 막혀버린 운하에서는 냄새가 풍겨오며, 파업 중인 항만 노동자들과 이들을 진압하려는 회사의 용병들 사이의 긴장감은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다.
그러나 이 황폐한 세계 속에서도 플레이어의 선택은 깊은 의미를 지닌다. 사르트르의 철학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선택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고 본다. 게임의 대화 시스템은 이 철학적 명제를 구체적인 메커니즘으로 변환한다. 플레이어의 매 선택은 해리의 사상과 정체성을 조금씩 형성해 간다.
엄격한 파트너 킴 키츠라기(Kim Kitsuragi)와의 복잡한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목이 매달린 용병의 살인 사건과 관련된 진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항만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회사나 민병대의 편에 설 것인가? 플레이어는 때로 사소해 보이는 선택까지도 직접 내려야 한다. 이 모든 결정들이 모여 해리라는 한 인간의 자아를 구축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마티넘이라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낸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는 어둡고 냉혹하다. 혁명의 잿더미 위에 서 있는 쇠락한 도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절망과 씨름하는 사람들, 이런 배경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살아있다.
사르트르는 절망의 인식이 진정한 행동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개념이 게임의 진행과 함께 빛을 발한다. 세계의 부조리함을 직시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행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결말에서 해리는 표면적으로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 상실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실존주의적 관점에서는 삶의 의미가 우리의 선택과 해석을 통해 창조된다고 본다. 이 사르트르적 통찰은 게임의 중심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혼돈스러운 세계 속에서도 의미를 창조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마티넘의 황폐한 거리와 부서진 건물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지옥은 타인이다."
사르트르의 이 도발적 명제는 흔히 오해받는다. 이는 단순한 타인 혐오가 아닌, 타인의 시선이 우리를 객체화하고 정의내림으로써 자유를 제한한다는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해리는 타인들의 시선 속에 존재한다. 냉철한 파트너 킴, 냉소적인 호텔 관리인 가트(Garte), 노동조합 보스 에브라르트 클레어(Evrart Claire), 그리고 마티넘의 다양한 주민들까지. 이들은 각자의 렌즈로 해리를 해석하고 규정짓는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타인과의 관계는 해리의 자아 재구성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고립된 자아가 아닌,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의 복잡한 그림을 보여준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단순한 게임을 넘어선다. 이 작품은 사르트르의 철학적 개념들이 살아 숨 쉬는 복잡한 놀이터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선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조건을 가장 직접적이고 감정적으로 체험한다.
게임의 가장 독특한 시스템 중 하나는 해리의 스킬들이다. 해리의 머릿속에는 논리(Logic), 백과사전(Encyclopedia), 수사학(Rhetoric), 공감(Empathy), 권위(Authority), 내면세계(Inland Empire), 소름(Shivers) 등 총 24개의 스킬이 존재한다. 이들은 단순한 능력치가 아니라 각자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 목소리로 플레이어에게 말을 건다.
이 스킬들은 언제나 현명한 조언자가 아니다. 각각의 스킬은 자신만의 성향과 편견을 가지고 있어 때로는 해리를 최악의 선택으로 이끌기도 한다. 논리는 차갑고 분석적인 접근을 제안하고, 공감은 타인의 감정에 연민을 불러일으키며, 전율(Shivers)은 도시 자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때로는 내면의 한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와 격렬하게 충돌하기도 한다.
이 시스템은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설명한 '의식의 다층성' 개념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사르트르에게 인간 의식은 결코 단일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며, 때로는 내적으로 충돌하는 복잡한 구조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의 본질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욕망과 생각, 감정, 기억의 역동적인 집합체다.
"나는 누구인가?"
게임 초반,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해리가 던지는 이 질문은 사르트르적 자아 탐색의 시작점이다. 플레이어는 마티넘의 황폐한 거리를 탐험하고,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다양한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조금씩 해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 간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창조의 여정을 직접 경험한다. 해리의 매 발걸음, 매 대화, 매 선택은 그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이 어떻게 한 인간의 존재를 형성하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한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에서 선택은 단순한 클릭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플레이어의 각 결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복잡한 파장을 일으키며, 이는 해리뿐만 아니라 마티넘 전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 철학의 또 다른 핵심인 '책임'의 개념이 게임에서 구현되는 방식이다.
게임 초반, 해리는 자신이 형사임을 알게 된 후 목이 매달린 용병의 살인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증거를 어떻게 해석할지, 누구의 말을 믿을지,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할지와 같은 플레이어가 내리는 결정들은 단순한 게임 내 선택을 넘어, 깊은 윤리적, 실존적 의미를 갖는다.
우리의 선택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포한다. 해리가 폐허의 도시에서 마주하는 공허와 절망, 그리고 그 너머의 희망은 모두 플레이어의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디스코 엘리시움은 단순히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가져오는 책임의 무게를 온전히 플레이어에게 경험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이 게임이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진정한 실존적 체험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실존적 질문들을 외면한다. 바쁜 일상과 끝없는 소비 사이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은 잊혀지기 쉽다. 그러나 디스코 엘리시움과 같은 작품은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다시 던진다. 그것도 강의실이나 철학 책이 아닌, 접근하기 쉬운 디지털 공간에서 말이다.
게임이란 본질적으로 '선택'의 매체다. 책이나 영화와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적극적인 참여와 결정을 요구한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천재적인 점은 이 상호작용적 특성을 활용해 "우리는 선택을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라는 사르트르의 핵심 철학을 경험할 수 있도록 변환했다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창조해 간다. 마티넘의 황폐한 거리에서든, 우리의 일상 속에서든, 이 사르트르적 지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그 메시지를 컨트롤러의 버튼과 화면 속 대화창을 통해 전달할 뿐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단순한 게임의 경계를 넘어선다. 이 작품은 철학적 탐구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며,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현대 매체 속에서 어떻게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플레이어는 해리의 선택을 고민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내린 선택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는가? 내 삶의 부조리한 상황 앞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창조할 것인가?
<이미지 출처>
https://www.deviantart.com/thefearmaster/art/Harrier-du-bois-sketch-968724478 By
TheFearMaster
https://www.flickr.com/photos/generationrose/708866110 by generationrose.com
https://www.flickr.com/photos/diametrik/2627256049 by Lian Chang
<참고 자료>
장 폴 사르트르. <존재와 무: 현상학적 존재론 시론>. 변광배(역), 민음사, 2024.
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박정태(역), 이학사, 2018.
장 폴 사르트르. <구토>. 임호경(역), 문예출판사, 2020.
장 폴 사르트르. <닫힌 방. 악마와 선한 신>. 지영래(역), 민음사, 2013.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김화영(역), 민음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