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세이더 킹즈 3를 통해 본 푸코의 권력론
잉글랜드의 젊은 공작이 새벽녘에 눈을 뜬다. 그의 책상 위에는 밀봉된 편지 하나가 놓여있다. 떨리는 손으로 봉인을 뜯자 충격적인 소식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신이 그토록 신뢰했던 측근이 수년간 자신의 폐위를 위해 음모를 꾸며왔다는 사실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음모의 배후에 자신의 동생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크루세이더 킹즈 3(이하 CK3)에서 흔히 마주하는 장면이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단순히 군대를 지휘하거나 성을 건설하는 것을 넘어, 중세 유럽의 복잡한 권력관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충성을 맹세하지만 내적으로는 배신을 꾸미는 신하들, 겉으로는 우애를 보이지만 서로를 경계하는 형제들, 종교적 대의명분 뒤에 숨은 정치적 계산들까지.
이런 상황들을 마주하다 보면,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던진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권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진실은 누가 만들어내는가? 우리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중세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 현대 철학의 핵심 질문들과 만나는 지점, 바로 거기서 우리는 새로운 통찰을 발견하게 된다.
CK3는 일반적인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국가나 군대가 아닌, 한 인물과 그 가문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단순한 영토 확장이나 전쟁의 연속이 아니다. 게임의 핵심은 캐릭터 간의 관계다. 당신의 캐릭터는 수백 명의 다른 캐릭터들과 상호작용하며, 각각의 관계는 복잡한 감정과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신뢰도, 호감도, 적대감 등 다양한 지표들이 이 관계를 수치화하지만, 실제 플레이에서 이 관계들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당신의 캐릭터가 가진 '비밀'은 언제든 다른 이들에 의해 밝혀질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당신은 비밀을 아는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때로는 그들의 비밀도 함께 감춰줘야 한다. 한 번의 선택이 예상치 못한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그것이 수년 뒤에 돌아와 당신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게임은 선택의 자유를 제공한다. 전통적인 전략 게임들이 승리 조건을 명확히 제시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도록 유도한다면, CK3는 플레이어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자유를 준다. 당신은 평화로운 문화 부흥기를 이끌 수도, 무자비한 폭군이 될 수도, 종교 개혁가가 될 수도 있다. 자유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군가는 당신에게 등을 돌리게 되어있다. 완벽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푸코가 말한 권력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푸코의 관점에서 볼 때, CK3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가장 잘 시뮬레이션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감시와 처벌>에서 발전시킨 '미시권력'의 개념이 게임 곳곳에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서 권력은 결코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왕좌에 앉아있는 군주도, 자신의 권력이 수많은 작은 실천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귀족들의 충성도는 수시로 변하고, 백성들의 지지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
게임의 이벤트 시스템은 이러한 권력의 유동성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궁정에서 열리는 연회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대화, 사냥터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귀족과의 담소, 성당에서 들려오는 백성들의 수군거림은 이 모든 순간이 권력관계를 재구성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음모 시스템은 흥미롭다. 플레이어는 다른 캐릭터들의 음모를 포착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권력이란 결코 일방향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장 약해 보이는 시종조차 중요한 정보를 쥐고 있을 수 있고, 힘없어 보이는 수도사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CK3가 매력적인 지점은 '진실'을 다루는 방식이다. 게임에서 모든 사건과 정보는 특정한 관점과 이해관계를 통해 전달된다. 당신에게 도착한 밀고는 진실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계략일까? 평판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소문일까?
게임은 이런 불확실성을 통해 푸코가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에서 발전시킨 '진실의 정치'를 구현한다. 진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고 재구성된다. 플레이어는 자신에게 유리한 진실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한편, 불리한 진실은 감추거나 반박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게임 속에서 당신의 캐릭터가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하자.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진실로 해석될 수 있다. 당신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전쟁의 영광스러운 승리지만, 패배한 측에서는 비겁한 기습이나 반역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해석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느냐는 권력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캐릭터의 특성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악덕 높음'이라는 특성은 누구의 관점에서 악덕인가? '경건함'은 진정한 신앙심의 표현인가, 아니면 정치적 계산의 결과인가? 게임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렌즈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CK3가 보여주는 권력의 역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의 조직 생활을 생각해 보자. 회사에서의 승진은 단순히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상사와의 관계, 동료들의 지지, 조직 문화와의 조화 등 수많은 요소가 얽혀있다. SNS에서의 영향력도 마찬가지다. 좋아요 숫자, 팔로워 수, 댓글의 톤은 현대판 평판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CK3의 플레이어가 겪는 고민들 - 동맹을 맺을 것인가, 배신할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 맞설 것인가 - 은 현대인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게임은 이런 상황을 더 극적이고 명확하게 보여줄 뿐이다.
중세 영주의 집무실로 돌아가보자. 새벽녘, 그 편지를 읽던 순간으로. 당신은 이제 그 상황을 다르게 볼 것이다. 배신의 배후에 있는 동생의 두려움과 열망을, 측근의 복잡한 계산과 망설임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보게 될 것이다.
CK3는 푸코의 통찰력을 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게임이다. 푸코의 철학은 CK3라는 매개체 없이도 여전히 날카롭다. 그러나 이 둘의 만남은 단순한 1+1의 더하기가 아니다. 게임은 철학에 살아 숨 쉬는 구체성을 부여하고, 철학은 게임에 깊이 있는 해석의 차원을 더한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책상 앞에 앉아 무거운 철학책과 씨름하지 않아도 게임이라는 실험실에서 권력과 자유, 진실과 정의의 의미를 직접 탐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모두는 이미 이 거대한 권력의 춤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home_of_chaos/2550922632 by thierry ehr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