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오브워 4에 깃든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초월
차가운 눈밭에 선 크레토스는 거친 손으로 도끼를 움켜쥔다. 수많은 전장을 거쳐 온 그의 얼굴에는 짙은 주름이 깊게 패여 있고, 나지막한 숨소리에서 그가 겪어온 고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제 그는 신과 맞서 싸웠던 전사의 삶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삶을 선택하려 한다. 그 앞에는 아직 어린 아들 아트레우스가 서 있으며 크레토스는 도끼를 건네주며 조용히 말한다.
“이제 너도 준비가 됐다면, 들어야 한다.”
이 짧은 말은 단순한 훈련의 지시가 아니다. 크레토스는 아버지로서 아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자신이 거쳐 온 폭력의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반면 아트레우스는 그런 아버지의 무게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기대와 자신의 연약함 사이에서 갈등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갓오브워 4가 펼쳐 내는 서사는 시작한다. 이 게임은 신화적 전투와 모험으로만 가득한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와 아들이 각자의 고통과 맞서면서 서로를 이해해 가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를 떠올릴 수 있다. 인간의 삶은 고통 그 자체라고 진단한 쇼펜하우어는 이 고통이 욕망(의지)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갓오브워 4 속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가 마주하는 수많은 갈등 역시 욕망과 과거의 유산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쇼펜하우어적 색채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이다.
크레토스는 한때 그리스의 신들을 파괴한 분노의 전사였다. 그러나 엄청난 폭력의 대가로 평화도 행복도 얻지 못한 채 북유럽 땅에서 아들과 함께 은둔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와 죄책감이 그의 얼굴에 깊은 주름을 새겼다.
아트레우스는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아버지의 강력함을 동경한다. 동시에 아버지의 무뚝뚝함과 감정 억압에 상처받으며 자신 역시 폭력의 길을 걷게 될까 두려워한다. 그런 아들이 신화적 존재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점차 강인해지자, 크레토스는 오히려 '내 과오를 이 아이에게도 물려주는 게 아닐까?' 하고 전전긍긍하게 된다.
결국 이 부자는 아내(어머니)의 유골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에 뿌리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북유럽 신화 속 적들을 마주치며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하기를 반복한다. 이는 곧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고 넘어설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는 인간의 삶을 고통이라는 관점에서 통찰한 19세기 독일의 대표적 철학자다. 그는 낙관주의적 철학의 흐름과 대조적으로 인생을 근본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으로 파악하며 그 원인을 ‘의지’에서 찾았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비관에만 머무른 것은 아니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란 인간이 삶의 순간순간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고 갈망하도록 몰아가는 근원적 힘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은 즉시 고통을 느끼게 되고, 설령 욕망이 충족되더라도 새롭게 또 다른 욕망이 생겨나 다시 고통을 불러온다. 이런 반복적 구조 때문에 인간은 마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고 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고통에 영원히 허덕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런 고통을 마주하며 더 높은 차원으로 자신을 끌어올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봤다. 그가 말한 해법 중 하나가 의지의 부정이다. 이는 욕망을 억누른다기보다 예술이나 철학 등 보다 근원적인 통찰을 통해 끊임없이 갈구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방법으로 쇼펜하우어는 연민과 공감을 강조했다. 타인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느끼고 서로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잔혹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는 길이라고 보았다.
이렇듯 고통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자 동시에 성찰의 시작점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시각은, 갓오브워 4 속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의 여정과 묘하게 겹쳐진다. 이들은 고통을 그냥 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부자간의 관계에서 연민과 화해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 결과 단순히 잔혹함과 광기로 점철됐던 과거 시리즈의 폭력적 이미지를 넘어, 새로운 서사를 열어 보이는 것이다.
갓오브워 4에서 크레토스는 과거의 폭력적 행적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한때 그는 ‘신들을 무너뜨린다’는 극단적 욕망에 지배되어 욕망을 분노로 쏟아내며 복수의 길을 걸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가 끊임없이 새로운 갈망과 고통을 만들어내는 구조는 크레토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스 신들을 파괴해버린 뒤에도 크레토스의 내면에는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북유럽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땅으로 도피하듯 숨어들었지만 폭력과 복수라는 과거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잔재는 결국 아트레우스를 통해 다시 드러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말한 대로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순간이야말로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지점이다. 크레토스가 북유럽에서 발두르와 싸우면서 복수 대신 다른 선택을 한 것은, 자신을 사로잡았던 의지를 조금씩 다스려 나가는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아트레우스에게 아버지 크레토스는 그저 강한 전사이자 엄한 보호자다. 하지만 그는 자신 안에도 분노와 오만함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신화 속 등장인물들과 부딪히며 아트레우스는 잠시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아버지를 무시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보이는 오만함 역시 충족되지 않는 욕망의 다른 얼굴이다.
결국 큰 시련을 겪고 난 뒤 아트레우스는 자신의 욕망에 맹목적으로 휘둘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는다. 이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고통을 통한 성찰과 연결된다. 고통스러운 사건을 경험하며 그는 욕망을 통제하는 법,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단순히 강인함만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관계, 가족과의 연결임을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트레우스의 성장은 곧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초월의 과정과 닮아 있다.
쇼펜하우어가 고통을 다루는 또 하나의 열쇠로 제시한 것은 연민과 공감이다. 갓오브워 4에서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가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과정은 바로 이 연민과 공감의 힘을 보여준다.
초반의 크레토스는 혹독한 전사의 논리로 아들을 대하려 하지만 함께 여정을 떠나면서 결국 자신의 내면을 열고 약점을 인정한다. 폭력적 과거를 어설프게 감추는 대신 이젠 그 과거를 털어놓고 아들에게 반복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순간 아트레우스도 아버지의 깊은 상처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이 품었던 오만함을 돌아본다. 이는 곧 부자간에 서로를 향한 연민이 싹트는 지점이다. 쇼펜하우어식으로 표현하면 둘은 상대의 고통을 공감하며 그 안에서 함께 회복하는 길을 찾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갓오브워 4는 의지와 고통을 모티프로 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단순히 개념으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속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플레이어 역시 이 여정을 따라가면서 폭력과 복수 너머의 세계를 엿보고, 스스로에게도 고통과 욕망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가 거대한 존재와 마주하는 순간들도 결국 단순히 극적인 보스전을 넘어 삶의 경외감과 연대를 상징한다. 이들은 더 크고 위협적인 적을 쓰러뜨리는 데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과거와의 마주침, 자신의 약함 인정,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통해 고통과 절망이 필연적으로 깃들어 있는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쇼펜하우어가 설파한 “인간은 욕망을 멈추지 않는 한 고통도 멈추지 않는다”는 문장은 갓오브워 4의 부자 관계와 여정에 그대로 비추어진다. 다만 게임은 여기서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와 아들은 스스로 고통을 인식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을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던 연민이라는 단서는 부자 간의 연결로 구현된다.
결국 크레토스는 과거의 폭력, 분노, 복수심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시작하며 그 여정 속에서 아들에게서도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아트레우스 역시 자신 안의 오만함과 약함을 동시에 마주하면서 진정한 성숙의 계기를 맞는다. 그 모든 과정이 고통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주장했듯이 고통이야말로 인간이 깊이 자신과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자극제다. 갓오브워 4는 이 철학적 진실을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인다.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의 여정은 북유럽의 신화적 스케일을 배경으로 삼되 아주 인간적인 고민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두 캐릭터가 오랫동안 쌓인 상처를 치유하고, 그 고통을 딛고 새로운 의지를 발견하는 순간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임무 완료가 아니라 함께 도달했다는 관계의 무게이자, 이제 다음 여정을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시작이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 또한 쇼펜하우어가 말한 고통은 인간의 본질이라는 문장을 새삼 곱씹게 된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어떤 의미를 찾을 것인가?"
"고통을 넘어서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갓오브워 4가 던지는 이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의 철학적 성찰에 닿아 있다.
<본문 이미지 출처>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by Double-M
Portrait photograph of Arthur Schopenhauer by Wikimedia Commons
wallpaper-god-of-war-ps4-god-of-war-kratos-atreus by Devogorin
God of War Meet the last of the giants by JCRPri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