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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과 그림자를 넘어:스카이림에서 만나는 융의 무의식

엘더스크롤 V: 스카이림, 심리적 여정과 자아 발견의 모험

by 신영

4장: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2011)과 칼 융(1875~1961)


[어둠 속에서 빛을 찾다]

깊고 어두운 동굴. 바닥에는 거미줄이 얽혀 있고 공기는 차갑다. 횃불 하나로 겨우 앞길을 밝혀 가며 플레이는 동굴 속 깊은 곳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두려움과 긴장이 뒤섞인 순간, 플레이어는 두 가지를 동시에 느낀다. 내가 여기에 왜 왔는가? 그리고 여기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스카이림은 이런 질문들로 가득한 게임이다. 드래곤과 싸우고, 던전을 탐험하며, NPC와 얽히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히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을 넘어 자신이 누구인지 묻게 된다. 이 게임은 외부의 적과 싸우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그림자와 숨겨진 가능성과의 대면을 그린다.


칼 융은 인간의 마음속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세계가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세계를 무의식이라 불렀고, 그 안에는 억압된 감정, 욕망, 그리고 우리의 숨겨진 자아가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스카이림은 바로 그 무의식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드래곤과 싸우고 어둠을 헤치며 칼 융이 말한 그림자와 만나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체험한다.


[스카이림 – 선택과 자유의 여정]

스카이림은 RPG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스카이림(The Elder Scrolls V: Skyrim)은 거대한 오픈월드와 깊이 있는 서사로 전 세계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은 RPG 걸작이다. 플레이어는 고대의 전사 드래곤본(Dragonborn)으로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게임 세계를 탐험하며 세상을 구원할 운명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게임의 진정한 매력은 단순히 드래곤과 싸우는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스카이림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선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자신의 길을 정의할 자유를 제공한다.


1. 드래곤본과 메인 퀘스트

게임의 중심 서사는 전설로만 전해지던 드래곤본의 귀환과, 세상에 재앙을 몰고 오는 드래곤 ‘알두인’과의 대결이다. 플레이어가 지닌 강력한 ‘샤우트(Shout)’ 능력은 이 위협적인 존재에 맞설 힘이 된다. 그러나 드래곤과의 전투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다. 이는 플레이어가 자기 운명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더 강해지며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컨대 드래곤에 맞서 싸울 때 폭넓은 전투 스킬과 동료 협력 방식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전개가 펼쳐진다.


2. 자유로운 탐험과 선택

스카이림의 진정한 매력은 메인 스토리를 넘어서는 자유도에 있다. 플레이어는 전사, 마법사, 도둑 등 다양한 역할을 선택하며, 그에 걸맞은 행동 방식을 발달시킬 수 있다. 예컨대 전사가 되어 드래곤과 정면승부를 벌이거나, 도둑으로서 어둠 속에서 은밀히 활동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캐릭터 육성은 자연스럽게 플레이어가 원하는 인생 시나리오를 만들도록 유도한다.

NPC와 맺는 관계 역시 자유롭게 펼쳐진다. 암살자 길드에 들어가 어둠의 일을 도맡아 해낼 수도, 마법사 길드에서 고대 지식을 연구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든 그 결과는 게임에 반영되며 플레이어는 결정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스카이림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대로 네 이야기가 된다”라고 말하는 듯, 그 무대 전체를 열어 놓는다.


3. 상징과 서사의 힘

스카이림에는 수많은 던전과 동굴, 그리고 상징으로 가득한 퀘스트들이 포진해 있다. 어둠 속을 비추는 횃불 하나로 탐험하는 던전은 사람의 내면 깊은 곳을 상징하고, 드래곤과의 싸움은 우리 안에 도사린 두려움이나 극복해야 할 한계를 나타낸다. 플레이어가 각종 사건에 개입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와 성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단순한 RPG 이상의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스카이림은 단순한 게임 이상의 철학적 공간을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이 방대한 세계에서 선택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내면의 여정을 떠난다. 스카이림의 세계는 끝이 없다. 그리고 그 여정은 바로 플레이어의 것이다.


[칼 융 – 무의식과 내면의 발견]

칼 융

칼 융은 인간의 심리적 본질을 탐구하며 무의식의 세계와 내면의 상징을 깊이 연구한 철학자이자 심리학자다.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 의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융은 이러한 무의식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본질과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 무의식과 그림자

융은 무의식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파헤친 학자다. 그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영역, 즉 무의식이 우리의 본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특히 무의식 속 어두운 측면을 '그림자'로 정의했는데, 이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억눌러왔던 두려움·분노·열등감 등 부정적 감정들이다.

그림자를 억누르는 데 급급하면 오히려 그 힘이 더 크게 작용해 우리를 휘두를 수 있다. 융은 “인간이 온전해지려면 그림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통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결국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하게 만든다.


2. 집단 무의식과 원형

융은 무의식이 개인을 넘어 전 인류가 공유하는 집단 무의식을 포함한다고 봤다. 이는 세대를 거쳐 누적된 보편적 심리구조로, 영웅, 현자, 어머니, 그림자 등 ‘원형(Archetype)’이 여기에 속한다. 스카이림의 드래곤본 캐릭터는 영웅 원형을 반영하며, 동굴이나 던전에 깃든 몬스터는 플레이어가 마주해야 할 그림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3. 개성화 – 자기(self)와의 통합

융이 제안한 또 다른 핵심 개념은 개성화이다. 이는 무의식과 의식을 통합해 온전한 자아를 찾는 과정을 말한다. 사람은 평생에 걸쳐 이 과정을 밟으면서 자기 안의 여러 측면(그림자, 원형, 욕망 등)을 인정하고 통합함으로써 더 진실된 나 자신이 된다. 스카이림에서 플레이어가 자유로운 탐험을 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며 여러 길드를 경험하는 여정은 곧 나만의 세계를 완성해 가는 개성화 과정과 비견할 만하다.

비교적 젊은 시절의 칼 융(우측 하단), 좌측 아래 프로이트도 보인다.

[내면을 탐험하는 여정 – 그림자와 원형의 소환]

스카이림을 가득 메운 던전과 동굴, 드래곤과 마법, 길드 활동 등은 단순한 게임 요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융이 말한 무의식과 여러 심리적 원형의 이야기를 게임적으로 변주한 무대이기도 하다. 플레이어는 괴물과 싸우고, 보물을 찾아 나서며,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곧 자신의 내면은 어떤 모습인가?라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1) 던전 탐험 – 그림자와 마주하다

스카이림에는 수많은 던전과 동굴이 존재한다. 이곳은 대부분 어둡고 위험하며, 적대적인 몬스터나 함정, 미지의 저주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장소를 정복해 나가는 과정은 칼 융이 말한 그림자를 떠올리게 만든다.


- 어둠과 공포의 상징: 융에 따르면 그림자는 우리가 억누른 두려움, 분노, 열등감 등 부정적인 감정들이 모여 형성된 무의식의 영역이다. 던전 속 몬스터나 날카로운 함정, 음습한 분위기는 이러한 억압된 감정들의 상징일 수 있다.


- 대면과 통합: 융은 “그림자를 외면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힘은 더 강해진다”고 말한다. 던전을 피하거나 방치하면 적들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보상 역시 놓치게 된다. 반대로 직접 던전으로 들어가 괴물과 맞서고, 함정을 극복하며,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과정은 그림자와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자신을 확장해 나가는 심리적 여정을 상징한다.


- 내면의 보물: 많은 던전이 막판 보스나 특별한 아이템을 보상으로 준다. 이는 그림자를 통합한 뒤 얻게 되는 심리적 자원, 혹은 새로운 가능성을 은유한다. 무의식을 껴안고 이해할수록 우리의 자아는 더 탄탄해지고 풍부해진다는 융의 주장을, 스카이림은 게임 플레이로 실감하게 한다.


2) 드래곤본 – 영웅 원형의 여정

스카이림의 주인공은 드래곤본이라 불리는 특별한 능력의 전사로, 전설적인 드래곤 알두인을 비롯한 수많은 드래곤과 맞서 싸운다. 이때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영웅적 서사는 융이 말한 영웅 원형을 그대로 구현한다.


- 영웅 원형의 특징: 영웅은 종종 무력하거나 미숙한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시련과 고통을 거치며 점차 강해진다. 마침내 세상을 위협하는 강적을 쓰러뜨리고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완전한 성취를 이룬다. 드래곤본이 드래곤들의 위협에 맞서는 과정은 이 정형화된 영웅 신화를 그대로 따라간다.


- 드래곤과의 대결: 드래곤은 외부 세계의 적이면서 동시에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거대한 공포나 혼돈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플레이어가 드래곤의 샤우트 공격을 파악하고, 맞서 싸우고, 때론 패배를 겪는 일련의 과정은 자기 내면의 두려움을 마주하고, 점차 이를 극복해가는 심리적 전환을 반영한다.


- 성장의 전환점: 영웅 원형에서 중요한 것은 ‘회복 불가능해 보였던 위기나 시련을 어떻게 뛰어넘는가?’ 하는 점이다. 드래곤의 압도적 공격에 패배하고도 다시 도전하는 과정은, 플레이어가 한계를 넘어서는 의지와 내면의 잠재력 발현을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곧 '진정한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 속에 있다'는 메시지를 되새기게 한다.


3) 자유와 개성화 – 나만의 이야기를 완성하다

스카이림은 단 하나의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게임 세계를 선보인다. 플레이어가 택할 수 있는 분기는 거의 무한하고 그에 따른 결과 또한 미리 예단하기 어렵다. 이는 융이 말한 개성화, 즉 온전한 자아를 형성해 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 다양한 선택, 다양한 길드: 암살자 길드, 마법사 길드, 전사 집단 등 소속할 수 있는 조직과 퀘스트는 매우 다양하다. 각각의 길은 플레이어의 가치관과 성향을 드러내며, 또 다른 가능성을 체험하게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선악 구도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길이 옳은지, 어느 길이 나를 더 만족시킬지는 오로지 플레이어의 몫이다.


-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 융의 개성화란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해 온전한 ‘자기(Self)’에 도달하는 여정이다. 스카이림에서 플레이어가 하는 각 선택, 스토리 진행, 우정 혹은 배신 등은 모두 자기 내면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고 실험하는 장이 된다. 마법을 연구하는 선택은 지식을 향한 욕망을 드러내고 어둠의 길드에서 암살을 수행하는 선택은 파괴적 욕망도 수용하려는 태도가 될 수 있다. 이런 다채로운 면을 인정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일이야말로 개성화의 과정이다.


- 끝없는 탐험: 심지어 모든 퀘스트를 완료한 뒤에도 스카이림 세계는 플레이어의 새로운 탐험과 이야기를 허용한다. 이는 융이 말한 “인간은 완전해질 수 없으며, 평생을 걸쳐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에 머문다”는 통찰과 상통한다. 게임 속에서 결말이 열려 있는 설정은 우리의 자기 탐구 역시 끝없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스카이림의 세계에는 칼 융이 말한 영웅 원형과 그림자, 개성화가 잘 담겨있다.

[그림자를 넘어, 자아를 향한 여정]

스카이림은 광활한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본질은 인간 내면의 심리적 여정을 담고 있다. 어둠 속 던전에서의 탐험, 드래곤과의 전투, NPC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선택들은 모두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칼 융이 말한 무의식과 그림자는 스카이림의 모든 모험에 깃들어 있으며 플레이어는 이를 체험하며 자신의 자아를 탐구한다.


스카이림의 여정은 단순히 드래곤을 쓰러뜨리고 퀘스트를 완수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내린 선택과 행동은 스토리를 넘어 그들 자신의 내면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어떤 플레이어는 자신이 드래곤본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으로 거듭난다. 다른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 그림자를 안고 살아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쓴다. 이 모든 과정이 스카이림이라는 게임의 정수다.


융은 말했다.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지 않고는, 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없다." 스카이림은 바로 이 그림자와 대면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시각화한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괴물과 드래곤, 그리고 선택의 순간을 통해 단순한 캐릭터의 성장을 넘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이 여정은 게임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된다. 스카이림의 세계를 떠난 플레이어는 자신이 마주한 그림자와 발견한 가능성을 현실 속에서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 게임은 궁극적으로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스카이림을 넘어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본문 이미지 출처>

Skyrim Desktop Backgrounds by CTWTF

Carl Jung by orionpozo

Sigmund Freud, Stanley Hall, Carl Gustav Jung, Abraham Arden by Wikimedia Commons

the-elder-scrolls-v-skyrim-4008 by Mark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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