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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다시, 강해지는 운명

다크 소울이 보여주는 니체의 영원회귀와 초인

by 신영

2장: 다크소울 1(2011)과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이렇게 죽어도 계속하고 싶은 이유]

붉은 검기가 허공을 가른다. 기괴한 형상의 보스가 캐릭터를 내려찍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하다. 구르기, 공격, 스태미나 관리, 패턴 파악... 수십 번 반복된 움직임이 이번에는 제대로 맞아떨어질 것만 같다. 하지만 또다시 화면이 붉게 물들며 'YOU DIED'가 떠오른다. 이상하다. 분명 좌절스러워야 할 이 순간이, 묘한 희열을 준다.


한밤중 모닥불 앞에 쓰러진 언데드는 다시 일어선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같은 적들, 같은 함정들, 같은 보스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졌다. 매번 죽을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배운다. '이 패턴을 이렇게 피하면 되는구나, 이 타이밍에 공격하면 되는구나.' 실패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배움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적과 싸우며 같은 죽음을 맞이하는 끝없는 반복이 주는 쾌감은 무엇일까?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잃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그 순간이 기다려진다. 마치 시시포스가 바위를 굴리며 미소 짓는 것처럼 이 영원한 반복 속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다.


모닥불 앞에 쓰러진 언데드가 다시 일어선다.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실패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환영받는다. 이 모든 고통과 좌절이, 이 끝없는 반복이 존재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으니까.


[죽음도 극복할 수 있는 게임 - 다크소울 1]

다크소울의 세계에서 죽음은 시작일 뿐이다. 플레이어는 저주받은 언데드가 되어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모닥불에서 다시 일어날 때마다 모든 적들도 함께 부활한다. 이전에 힘들게 처치했던 적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다. 게다가 죽을 때마다 모은 영혼들을 그 자리에 떨어뜨린다. 돌아가서 회수하지 못하면 영원히 잃어버린다.


보스전은 이 게임의 핵심이다. 거대한 가고일, 용을 닮은 괴수, 거인 기사들... 처음 마주하면 압도적인 존재들이다. 한 번의 공격에도 캐릭터는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매 죽음은 새로운 정보를 준다. "이 보스는 왼쪽이 약점이구나, 이 공격은 구르기로 피할 수 있구나, 이 타이밍에 공격하면 되는구나." 실패가 쌓일수록 승리에 가까워진다.


죽음은 모든 것을 가져가지만 배운 것은 남는다. 매 전투는 마치 춤을 배우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서툴게 발을 내딛다 넘어지지만 조금씩 리듬을 익혀간다. 적의 공격 패턴을 읽고, 회피할 타이밍을 파악하고, 반격할 순간을 찾아낸다. 수십 번의 실패 끝에 완벽한 움직임을 만들어낼 때 그것은 단순한 게임 플레이를 넘어선 묘한 쾌감을 준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선택에 무게가 실린다. 제한된 체력 물약과 한정된 장비 강화 기회 그리고 한 번 쓰면 사라지는 귀한 아이템들. 모든 자원을 신중하게 써야 한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돌아가기는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런 긴장감이 오히려 매 순간을 더 의미 있게 만든다. 모든 발걸음, 모든 전투가 중요하다.


세계관 자체도 이런 실패와 극복의 주제를 담고 있다. 불이 꺼져가는 세상에서 저주받은 자들은 끊임없이 되살아나 싸운다. 죽음조차 끝이 될 수 없는 운명이기에 이 여정은 더욱 처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 끝없는 반복이 절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속에서 어떤 숭고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모닥불은 이 게임의 상징과도 같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이자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다. 모닥불 앞에 앉으면 체력이 회복되고 마법도 충전된다. 하지만 동시에 처치했던 모든 적들도 부활한다. 휴식은 늘 새로운 도전을 동반한다. 그래도 플레이어는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간다.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 같은 예감과 함께 말이다.

dark_souls_wallpaper_by_seigner_d5px6fl-pre.jpg?type=w1 모닥불은 이 게임의 상징과도 같다

[실패를 사랑하는 철학자 - 프리드리히 니체]

철학자들은 보통 진리나 희망, 선(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니체는 달랐다. 그는 고통과 실패, 불완전함에 주목했다. 왜 인간은 고통받는가? 왜 우리는 계속해서 실패하는가?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같은 실패를 무한히 반복한다고 상상해 보라." 니체가 던진 도발적인 제안이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나 가장 부끄러운 실수, 혹은 가장 참기 힘든 좌절을 영원히 반복해서 겪어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만으로도 절망할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여기서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는 이것을 '영원회귀'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런 제안을 한다. 이 모든 고통과 실패를 증오하는 대신 사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니체의 이 유명한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다. 실패와 고통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필수적인 계기라는 걸 말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아닌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니체는 여기서 '운명애'(amor fati)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운명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 심지어 고통과 실패까지도 적극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왜? 그것들이 바로 당신을 만드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성장의 기회도 함께 부정하게 된다.


더 나아가 니체는 '초인'을 이야기한다.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같은 존재가 아니다. 끊임없는 실패와 고통 속에서도 "그래, 다시 한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를 말한다. 이것이 니체가 제시하는 진정한 강인함이다.

nietzsche-1862b-638cb2.jpg?type=w1 17세의 니체, 나움부르크에서 찍은 흑백사진

[죽음이 가르쳐주는 것들]

실패가 선물하는 강인함

'YOU DIED' 화면이 떴을 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포기하고 게임을 종료할 것인가, 아니면 "그래, 한 번 더!"라고 외칠 것인가? 여기서 다크소울은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의 순간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같은 보스와 마주하고,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같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 하지만 매 순간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전의 실패가 새로운 이해를 낳고 좌절이 배움이 되는 순간들이다.


특히 흥미로운 건 죽음이 주는 독특한 쾌감이다. 처음에는 분노와 좌절감만 주던 죽음이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희열로 바뀐다. "아, 이번에는 이렇게 죽었구나." 실패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는 것. 니체라면 이것을 운명애의 완벽한 예시라고 불렀을 것이다.


끝없는 반복의 의미

모닥불에서 되살아나는 순간은 단순한 게임 시스템이 아니다. 이는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의 물리적 구현이다. 같은 적들이 다시 나타나고 같은 길을 다시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매번 뭔가가 달라진다. 플레이어의 이해가 깊어졌고, 움직임이 더 세련된 졌으며, 전투는 더 우아해진다. 반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닌 성장의 과정이 된다.


실패할 때마다 떨어뜨리는 영혼들도 깊은 의미를 가진다. 이전 삶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이자 그 과정에서 겪는 더 큰 위험의 가능성이다. 이는 니체가 말한 '위험을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안전한 선택은 없다. 모든 도전에는 위험이 따르고 그 위험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


강인함을 넘어선 춤

보스와의 전투는 처음에는 절망적인 벽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수십 번의 죽음 끝에 그것은 일종의 춤이 된다. 공격과 회피, 전진과 후퇴가 하나의 리듬이 되는 순간. 니체는 이를 '춤추는 정신'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만드는 능력,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힘. 더 이상 투쟁이 아닌 하나의 춤이 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한 초인의 모습이 아닐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통을 환영하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자. 다크소울의 진정한 매력은 여기에 있다. 단순히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더 강해지는 것,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것, 그리고 끝없는 반복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야 말로 초인을 향한 여정이다.

dark_souls_by_jameszapata_d5qn0ui-pre.jpg?type=w1 반복적 죽음을 통한 성장은 니체의 철학과 맞닿아있다

[당신의 'YOU DIED'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실패는 피할 수 없다. 시험에 떨어지고, 면접에서 탈락하고, 관계가 깨어지는 순간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YOU DIED' 화면과 마주한다. 이런 순간들 앞에서 우리는 보통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좌절하고 포기하거나 아니면 실패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하지만 다크소울과 니체는 제3의 길을 제시한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번에는 왜 실패했지?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해 볼 수 있을까?" 실패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성장의 발판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반복되는 일상도 다르게 볼 수 있다. 매일 같은 출근길, 같은 업무, 같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그것이 무의미한 건 아니다. 니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똑같아 보이는 하루 속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가? 반복되는 실패를 어떻게 춤으로 만들 수 있는가?"


다크소울의 플레이어들이 수백 번의 죽음 끝에 보스를 쓰러뜨리듯이 우리도 매일의 작은 실패들을 통해 조금씩 강해질 수 있다. 중요한 건 실패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실패를 부정하거나 두려워하는 대신 그것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겠다는 선택이다.


"그래, 다시 한번!" 이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환영하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겠다는 선언이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당신의 다음 'YOU DIED' 순간에는 어떤 의미를 발견하게 될까?

friedrich_Nietzsche.jpg?type=w1 니체의 철학은 매력적이고 중독성이있다, 마치 다크소울처럼



<본문 이미지 출처>

- Dark souls Wallpaper by Seigner

- Nietzsche 1862b - A black and white photo of a man with long hair by public domain

- Dark Souls by jameszapata

- Friedrich Nietzsche by Gustav Schultze, 1882. by Royal Ballet and 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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