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우리가 즐기는 게임에서 철학적 통찰을 만나다
나는 게임을 사랑했고 게임 안에서 살아왔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게임 실력으로 자웅을 겨루는 프로의 세계에 몸담아봤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폐인처럼 빠져 전 캐릭터 만렙을 찍고 40인 공격대의 공대장도 해봤다. 뒤늦은 학업 이후 사회에 나와서는 게임 업계에서 게임 기획자로 일하며 게임 세계를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경험까지 했다. 게임은 나의 직업이자 취미였고 삶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삶의 중심이었던 게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게임은 재미를 위한 콘텐츠인지, 아니면 우리 삶과 인간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인지, 그런 질문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10대와 20대의 나는 게임과 뒤늦은 학업에 매달렸고, 30대는 결혼과 육아, 그리고 사회생활로 바쁘게 지나갔다. 심지어 게임 기획자로 일하며 게임을 만들면서도 앞서 적은 것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보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것인가?라는 목적을 추구하기 바빴다.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좇으며 살아왔지만 정작 그 '왜'를 묻는 데는 인색했던 것이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들어섰을 때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생각하는 법'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세상과 인간,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때 내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철학 책이었다.
철학을 처음 접한 건 우연이었다. 서점에 들렀다가 그저 호기심에 고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입문서를 펼쳤는데, 책 속의 질문들이 나를 멈추게 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옳은가?” “존재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물음은 마치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요구하는 듯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철학에 빠져들었다. 수십 권의 철학 관련 책을 사들이며 읽어 내려갔다. 서양철학사부터 시작하여 각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저서를 읽어 내려간 것이다. 플라톤에서 니체, 그리고 현대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과 이야기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무엇보다 철학자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사상과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에 매료되었다.
이 모든 여정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몸담아온 '게임'과 '철학적 사유'는 의외로 닮아 있다는 사실을. 게임은 규칙과 세계관,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플레이어들의 선택과 행동으로 구성된다. 철학 또한 세계와 인간의 근본적인 규칙을 탐구하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선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철학은 선택의 의미와 방향을 고민하게 한다. 결국 게임과 철학은 모두 '인간의 선택'과 '삶의 방식'을 다룬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었다. 나는 이런 통찰을 바탕으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글은 대부분 써놓았다. 업로드를 미루고 또 미루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행동으로 옮겨 하나씩 풀어볼 계획이다.
이 작업은 당연히 학문적 논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두 세계인 게임과 철학 사이를 연결해 보고, 이를 통해 흥미로운 여정을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플레이해오며 기억 속에 온전히 각인된 게임의 경험과 책을 통해 배운 철학자들의 철학적 사유의 접점을 찾는 시도이다.
물론 이 글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철학의 전문가도 아니고, 게임 연구자로서 전문적인 경력을 쌓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보기에 허술하고 겉핥기에 불과한 내용이 담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저 게임을 사랑하고 철학에 관심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나의 게임 플레이 경험과 철학 책을 읽으며 고민하고 깨달은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계획이다. 내 글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 작업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걸까? 나는 이 글이 게임을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 문화적 현상으로 바라볼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게임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게임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선택과 갈등, 성취와 실패를 그대로 압축해 보여준다. 그리고 철학은 그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우리 자신과 세상을 더 잘 알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이 글은 게임과 철학의 경계를 허물고 두 영역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탐구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게임을 즐기는 독자라면 철학의 흥미로운 질문과 만날 기회를, 철학에 익숙한 독자라면 게임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