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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을 먹고 달라진 세상, 동굴 밖으로 통하는 파이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에서 만나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진실

by 신영

1장: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85)와 플라톤(BC 427~347)


[버섯을 먹은 뒤로 세상이 달라졌다]

물음표 블록을 치자 동전이 허공에서 반짝인다. 땡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순간의 찰나. 저 동전은 실제로 존재했던 걸까? 깨진 블록은 또 어디로 간 걸까? 화면 속 세계는 보이는 그대로일까?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게임팩이 꽂혀 있는 현대 컴보이, 그리고 그 게임기와 선으로 연결된 TV 화면 속에서, 삑삑거리는 소리와 깜빡이는 픽셀들은 이상한 질문들을 던진다. 어린 시절 슈퍼마리오를 플레이했던 경험은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마리오는 초록색 파이프 속으로 들어간다. 지하 세계에 발을 디딘 순간 익숙한 세상의 규칙이 뒤집힌다. 버섯을 먹으면 키가 커지고 꽃을 얻으면 불을 뿜을 수 있다. 구름은 발판이 되고 보이지 않는 블록에서 비밀이 튀어나온다. 이건 단순한 게임일까? 아니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세계로 가는 입구일까?

mario_main.jpg?type=w1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인트로 화면. 게이머는 마리오가 되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선다

깜빡이는 8비트 세계는 더 깊은 무언가를 암시한다. 모든 것이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일 텐데 왜 새로운 비밀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낼까? 파이프 밖으로 나와 처음 보는 하늘을 마주하고, 숨겨진 블록을 발견하고, 워프 존으로 순간이동하는 경험들. 마치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네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니?"


약 2500년 전, 한 철학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마리오가 파이프에서 나와 게임 속 하늘을 보듯이, 동굴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처음 밖으로 나와 진짜 태양을 마주하는 순간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동굴'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 볼 시간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세상이,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진실이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파이프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처음 마리오는 작은 배관공일 뿐이다. 몸을 웅크리고 적들을 피해 달리기 바쁘다. 하지만 반짝이는 물음표 블록을 발견하면 모든 게 바뀐다. 블록 속에서 튀어나온 버섯 하나가 세상을 보는 높이를 바꿔놓는다. 이제 마리오는 벽돌을 부술 수 있고, 더 높이 뛸 수 있으며, 적들과 부딪혀도 살아남을 수 있다.


월드 1-1은 이런 변화의 가능성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첫 버섯을 먹고, 첫 동전을 모으고, 첫 구덩이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첫 번째 파이프를 만난다. 이 초록색 파이프는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숨어있다. 어두운 지하 세계로 들어가면 새로운 도전과 보상이 기다린다.

mario_1-1.png?type=w1 초록색 파이프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월드 1-2에서는 더 큰 비밀이 기다린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앞으로 달리기에 바쁘지만 천장 위로 올라가면 워프 존이 나온다. 이 숨겨진 통로는 먼 월드로 순간이동하는 문이다. 게임의 선형적인 진행을 완전히 뒤집어놓는 순간이다.


숨겨진 블록들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보이지 않는 블록을 치면 1UP 버섯이 튀어나오고, 어떤 블록은 파이어 플라워를 품고 있다. 처음 이 비밀을 발견한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 후로 빈 공간을 볼 때마다 뭔가 숨어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생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런 호기심이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진다.


각 성에서 마주하는 쿠파와의 전투는 모든 기술을 시험한다. 타이밍을 맞춰 도끼를 건드려 쿠파를 떨어뜨리면, 승리의 기쁨도 잠시, "Thank you Mario! But our princess is in another castle!"라는 말을 외치는 키노피오가 기다린다. 실망스러울 법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음 모험이 기대된다. 더 어려운 도전과 더 깊숙한 비밀이 다음 성에 있을 것만 같다.


게임의 8비트 그래픽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단순한 픽셀들이 만드는 마리오, 쿠파, 버섯, 꽃.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이렇게 단순한 그림들이 어떻게 이토록 생생한 모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게임이 지금도 전 세계 많은 유저들에게 사랑받는 고전 게임의 반열에 오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진실은 그림자 너머에 있다 - 플라톤]

평생을 어두운 동굴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뿐이다. 우리가 매일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며 사는 것과 좀 비슷하지 않을까? 플라톤이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2500년이 지난 지금도 묘한 울림을 준다.

plato_cave.jpg?type=w1 그림자만 보며 살아온 사람들 중 한 명이 동굴 밖으로 나가 '실재'를 목격 후 돌아와 다른 이들에게 진실을 말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유명한 알레고리이다

이 동굴 속 사람들에게 그림자는 전부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누군가 "저기 봐, 이게 다가 아니야"라고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사람이 동굴 밖으로 나가게 된다. 처음에는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점차 눈이 적응하면서 진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그림자의 원천을 발견하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진다.


플라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보는 세상을 '이데아'의 그림자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아는 모든 동그란 것들 - 공, 달, 접시 - 은 완벽한 원의 불완전한 복사본이라는 거다. 어디에도 완벽한 원은 없지만, 그 완벽한 원이라는 생각이 있기에 우리는 무언가를 '동그랗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 완벽함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플라톤은 이것을 '영혼의 방향 전환'이라고 불렀다. 익숙한 것들에서 눈을 돌려 전혀 새로운 것을 보는 법을 배우는 것. 처음에는 어렵고 불편하다. 동굴 밖으로 나온 사람이 갑자기 쏟아지는 빛에 눈을 찡그리는 것처럼.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견뎌내야 진짜 세상을 볼 수 있다.

Plato_Aristotle.jpg?type=w1 라파엘로의 작품 '아테네학당' 속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은 이데아를 상징하는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단계다. 동굴 밖을 본 사람은 다시 동굴로 돌아가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진정한 깨달음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도 동굴 밖으로 이끌어내려 노력하는 것, 그게 진정한 철학자의 역할이라고 플라톤은 말한다.


[8비트 세상에서 발견한 철학]

파이프와 동굴: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

다시 마리오를 보자. 어두운 파이프를 통과해 밝은 하늘 아래로 나오는 순간, 동굴 속 죄수가 처음으로 태양을 봤을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두 이야기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익숙한 제약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발견하는 순간,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지만 그곳에는 전에 없던 가능성이 기다린다.


"공주는 다른 성에 있습니다."라는 키노피오의 이 말은 왜 우리를 계속 앞으로 가게 만들까? 방금 도달한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때마다 이상하게도 실망보다는 설렘이 더 크다. 플라톤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네가 찾은 진실은 더 큰 진실의 첫걸음일 뿐이야." 어쩌면 진정한 모험은 끝이 없는 것일 테다.

mario_1-2.png?type=w1 파이프를 타고 다니는 마리오의 여정은 동굴을 벗어나 이데아의 세계를 추구하는 플라톤의 철학과 맞닿아있다

버섯의 마법: 눈높이가 바뀌면 보이는 것도 바뀐다

작은 마리오가 버섯을 먹고 커다란 마리오가 되는 순간을 생각해 보자. 이는 단순히 크기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전에는 넘을 수 없던 벽을 뛰어넘고, 피해야만 했던 적들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높은 곳에 올라가 블록을 치면 숨겨진 아이템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을 보는 높이가 바뀌자 할 수 있는 일도 보이는 것도 완전히 달라진다.


파이어 플라워는 이 변화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 이제 마리오는 불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이 힘은 쉽게 잃을 수 있다. 한 번의 실수로 다시 작은 마리오로 돌아가버린다. 이는 플라톤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더 높은 진실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계속해서 노력하고 성장해야 한다.


픽셀 너머의 진실: 단순함이 들려주는 이야기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세계는 단순하다. 8비트 그래픽으로 그려진 세상에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다. 빨간 모자를 쓴 작은 사람은 영웅이고, 동그란 버섯은 성장을 의미하며, 거북이처럼 생긴 것들은 적이다. 이 단순함이 오히려 본질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게임의 규칙도 마찬가지다. 버섯은 항상 좌우로 움직이고, 구멍에 빠지면 죽고, 깃발에 닿으면 스테이지가 클리어된다. 이런 규칙들은 보이지 않지만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결정한다. 마치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처럼 말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완벽한 규칙이 보이는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mario_pixel.png?type=w1 슈퍼마리오 픽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 하나일 것이다

1985년의 단순한 기술로 만들어진 이 게임이 어떻게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매력적일까? 바로 이 단순함이 진실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설명 대신 순수한 경험과 화려한 그래픽 대신 본질적인 재미를 전달하기 때문이리라.


[우리도 동굴을 나설 준비가 됐을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스마트폰 알람을 끄고, 뉴스 피드를 훑고, 정해진 경로로 출근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는 어떤 동굴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SNS의 타임라인이 보여주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있진 않은지 돌아본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는 숨겨진 블록들이 가득하다. 늘 지나치던 골목에 새로 생긴 가게, 버스 안에서 우연히 듣게 된 대화,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책 한 구절,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살짝 비틀어놓을지도 모른다. 마리오가 보이지 않는 블록을 찾아 뛰어올랐듯이 우리도 일상의 빈 공간을 향해 도약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워프 존처럼 우리 삶에도 예상치 못한 지름길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하려면 먼저 '저기엔 아무것도 없어'라는 생각을 벗어던져야 한다. 천장 위로 올라가 본 사람만이 워프 존을 발견할 수 있듯이 익숙한 경로를 벗어날 용기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버섯을 먹은 마리오처럼 우리의 시야도 조금씩 넓어질 수 있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거나, 낯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평소와 다른 길로 귀가해 보는 것. 이런 작은 변화들이 세상을 보는 높이를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동굴 밖을 본 사람은 다시 동굴로 돌아가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라며 플라톤은 우리에게 마지막 도전을 던진다.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관점과 깨달은 것들을 누군가와 나누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서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리오가 끝없이 새로운 성을 찾아 나섰듯이 우리도 계속해서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본문 이미지 출처>

- super mario bros by MANYBITS

- Super Mario Brothers 1-1 Desktop by Coleman

- plato cave_small by Rachel Tan

- Plato and Aristotle by Image Editor

- Super Mario Brothers 1-2 Desktop by Col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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