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A5로 풀어보는 마키아벨리의 냉혹한 권력론
도시는 화려하지만 어딘가 음습하다. 낮과 밤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범죄와 부패, 거액의 돈이 오가는 하이스트(대형 강도 작전)까지. 바로 세계적으로 1억 8천만 장 이상 판매된 오픈월드 범죄 액션 게임 GTA5의 무대다.
한편, 500년 전 이탈리아에서는 “군주가 되려면 사람들의 사랑보다 두려움을 얻는 편이 낫다”라고 말한 정치사상가가 있었다. 시대와 공간이 다르지만 권력과 생존이라는 인간 본질의 문제 앞에서 GTA5와 마키아벨리는 기묘하게도 맞닿아 있다.
GTA5의 배경인 로스 산토스는 현실의 LA를 닮은 대도시다. 반짝이는 해변과 초호화 주택가, 그리고 그 이면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비리가 공존한다. 갱단 싸움, 부패 경찰, 대기업의 음모, 미디어의 가십 문화까지, 미국식 드림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풍자하는 무대다.
이 게임이 단지 차 훔치고 경찰 따돌리는 액션게임으로 그치지 않는 이유는 도시 전역에 자본과 권력의 비정함을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거대한 스케일의 하이스트를 계획하며 때로는 섬뜩할 만큼 사실적인 권력의 이면을 목격하게 된다.
GTA5는 플레이어가 마이클, 프랭클린, 트레버 세 인물을 번갈아 조종하게 만든다.
- 마이클: 과거 은행 강도로 큰돈을 벌어 가족과 교외 생활을 누리는 남자. 겉으론 안정돼 보이지만 권태와 불안 때문에 다시 범죄판에 뛰어든다.
- 프랭클린: 빈민가 출신의 야심가. 언젠가 큰돈을 벌어 신분 상승을 이루고 싶다는 욕망이 커 점차 위험한 범죄에 발을 담근다.
- 트레버: 광적이고 폭력적인 캐릭터. 평범한 이성적 판단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돌발 행동을 일삼는다. 주위 사람들을 공포로 제압하지만 의외의 순간엔 묘한 의리를 보이기도 한다.
이 세 사람은 때론 협력해 대형 작전을 벌이고 때론 자기 이익을 위해 서로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게임 안에서 독특한 트리플 주인공 구조가 형성되며, 플레이어에게 여러 시선으로 권력과 범죄를 직접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출신 외교관이자 정치사상가다. 그가 집필한 군주론은 어떻게 해야 군주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 냉혹한 시선으로 분석해 낸 책이다.
- 역사적 배경: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들이 난립해 서로 전쟁과 배신을 일삼았다. 도덕적 이상보단 생존이 우선이던 시대였다.
- 대표 명제: “사랑보다는 두려움을 택하라”, “목적이 분명하다면 부도덕한 수단도 허용될 수 있다.”
- 비르투와 포르투나: 군주에게는 운(포르투나)만큼이나, 역량과 결단력(비르투)이 필수적이다. 운이 아무리 좋아도 무능하면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 책으로 인해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의 화신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그는 권력이란 원래 이렇게 추악한 것이라며 현실을 폭로한 인물에 가깝다.
앞서 본 로스 산토스와 군주론의 시대는 전혀 달라 보이지만, 권력 획득과 유지라는 측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양상을 드러낸다. GTA5 안에서 펼쳐지는 폭력, 배신, 협잡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냉혹한 현실정치 그 자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GTA5를 대표하는 범죄 미션들은 대개 팀워크를 잘 맞춰야 성공한다는 전제를 깔고 진행된다. 예를 들어 ‘블리츠 플레이(Blitz Play)’ 같은 하이스트 장면에서 주인공들은 경찰 수송 차량을 습격하기 위해 각자 역할을 분담한다. 순조롭게 작전이 끝나면 거액을 손에 넣지만, 막상 성공하고 나면 '어떻게 이익을 나눌 것인가?', '혹시 누군가 몰래 더 가져가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싹튼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말했던 “이익 앞에서 사람들은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는 경고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단지 게임이니까 과장됐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도 이익이 걸린 자리에선 누구나 배신을 고민할 수 있다.
마이클은 종종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자신이 불리해지면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동료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군주가 자비만 베풀다가는 배신당한다”는 교훈이 떠오른다. 현실에서도 가족이나 조직을 위해서라면 부도덕한 선택도 정당화되는 일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프랭클린은 처음엔 잔잔한 범죄로 시작하지만 마이클과 트레버를 만나면서 점차 큰 판에 뛰어든다. 이 과정에서 상황을 돌파하는 역량과 결단력, 즉 비르투를 습득해 나간다. 운(포르투나)이 굴러와도 스스로 능력이 없으면 놓쳐버린다는 마키아벨리적 통찰이 게임 속에서 그대로 구현되는 셈이다.
트레버는 폭력과 광기로 주변을 제압한다. 상식을 무시하는 그의 언행은 사람들이 그를 함부로 건드릴 엄두를 못 내도록 만든다. “사랑보다는 두려움을 택하라”라고 말한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폭력적이고 위험하기에 오히려 그의 힘이 인정된다는 역설이 펼쳐진다.
돈, 권력, 복수 등, GTA5의 스토리는 언제나 뚜렷한 목적이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가차 없이 펼쳐진다. 폭력과 절도, 배신, 협잡 등 '결국 성공하면 그만'이라는 기조가 반복된다. 이는 곧 목적이 정당(또는 절박)하다면, 수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의 파격적 주장을 게임 속에서 몸소 체감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건 게임이니까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좀 다르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면 주위를 둘러보자. 뉴스를 들여다보자. 주변 사회생활과 넓게는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도 마키아벨리적 전략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 정치 선거: 상대 후보를 음해하거나 내부 고발자를 이용해 치명타를 안기는 네거티브 공세는 선거철의 단골 모습이다. 결국 승리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논리가 오가기도 한다.
- 기업 M&A: 경쟁 기업을 적대적으로 매수하거나 상대 약점을 이용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도 한다.
- 일상적 경쟁: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목표를 위해서라면 약간의 거짓말이나 배신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느 쪽이 옳다거나 그르다를 떠나 GTA5가 극단의 범죄 세계로 묘사해 낸 모습이 사실 우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마이클처럼 가족을 위해 동료를 배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마키아벨리식 딜레마가 게임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느낌이 든다.
GTA5의 로스 산토스와 마키아벨리의 르네상스 이탈리아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권력과 생존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공유한다. 누군가를 속이고, 폭력을 휘두르고, 동료끼리도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세계다. 그러나 그런 냉혹함은 마키아벨리가 “인간의 본성은 이익과 두려움에 쉽게 흔들린다”라고 지적했던 그대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플레이어가 직접 범죄를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과 불편함이 공존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게임 속에서 '이래도 되나?' 싶어도 목표를 달성하면 커다란 보상을 준다. 그러다 보면 문득 현실에서도 승리를 위해 얼마든지 수단을 정당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이 밀려온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을 주는 편이 낫다고 말하며 현실정치가 얼마나 추악하고 비정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GTA5는 이를 극단의 범죄 세계로 확장해 플레이어가 폭력과 배신을 직접 체험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끝내 묻는다.
“만약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디까지 수단을 정당화할 것인가?”
"권력이란 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까지 이를 용인할 수 있는가?"
<본문 이미지 출처>
https://www.hdwallpapers.net/games/gta-5-characters-wallpaper-459.htm by donna
https://www.goodfon.com/games/wallpaper-gta-gta5-gtav-v-photoshop.html by Ddesigner
https://www.flickr.com/photos/italianembassy/10843539995 by Italy in U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Niccolo_Machiavelli_uffizi.jpg by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