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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로 이해하는 비트코인

떨어지는 블록에서 배우는 블록체인의 의미

by 신영 Mar 25. 2025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려면 때로는 단순한 블록부터 시작해야 한다"


1984년 모스크바, 알렉세이 파지트노프는 자신이 만든 간단한 퍼즐 게임이 세계를 사로잡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화면 위에서 떨어지는 블록들을 회전시키고 쌓아 올리는 이 게임은 냉전의 높은 장벽을 넘어 동서양을 연결하는 문화적 다리가 되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4억 개 이상의 테트리스 사본이 판매되었으며, 아마도 세계 최초의 디지털 직업병이라 할 수 있는 테트리스 효과(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잠에서도 블록이 떨어지는 것을 상상하는 현상)까지 만들어냈다.


24년 후, 세계 금융 위기의 한가운데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미지의 인물이 비트코인 백서를 발표했다. 그 핵심에는 '블록체인'이라는 혁신적인 데이터 구조가 있었다. 거래 내역이 담긴 블록들이 암호학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체인을 형성하는 이 구조는 금융의 미래를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두 혁신 사이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테트리스의 '떨어지는 블록'과 비트코인의 근간인 블록체인의 '연결된 블록' 사이에는 단순한 이름 유사성을 넘어서는 깊은 구조적, 개념적 연관성이 존재한다. 모두가 사랑하는 퍼즐 게임인 테트리스를 통해 복잡한 블록체인의 핵심 개념을 이해해보자.


쌓인 블록은 변하지 않는다

"테트리스와 블록체인 모두 디지털 중력의 법칙을 따른다. 모든 것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 쌓이게 되어 있다."


테트리스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블록이 위에서 아래로 쌓인다는 점이다. 중력의 법칙처럼 모든 블록은 결국 바닥에 도달하거나 이미 쌓인 다른 블록 위에 안착한다. 플레이어는 블록이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놓일지 결정할 수 있지만, 블록이 아래로 떨어진다는 기본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컬러풀한 블록이 천천히 내려오고, 플레이어는 블록을 좌우로 움직이며 회전시킨다. 블록이 바닥에 닿는 순간 그 위치는 고정되고 다음 블록이 내려온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블록들이 게임 세계의 기반을 형성한다.


테트리스에서 한번 바닥에 고정된 블록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 이미 쌓인 블록의 배치는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변하지 않으며, 이후에 떨어지는 모든 블록은 이 불변의 구조에 맞춰 배치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발견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우리는 그 위에 미래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블록체인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각 블록은 이전 블록 위에 쌓이며 체인을 형성한다. 비트코인의 경우 약 10분마다 새로운 블록이 생성되어 체인에 추가된다. 각 블록에는 그 시간 동안 발생한 거래 내역이 포함된다. 테트리스에서 블록의 위치가 플레이어에 의해 결정되듯, 블록체인에서는 채굴자라 불리는 참여자들이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고 검증한다.


블록체인에서의 불변성은 훨씬 더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한번 체인에 추가된 블록은 변경하기 극도로 어렵다. 냉장고의 특정 칸에 음식을 차곡차곡 쌓아둔 상황을 생각해보자. 맨 아래 있는 반찬통을 꺼내려면 위에 쌓인 모든 것을 먼저 꺼내야 한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중간에 있는 블록을 변경하려면 그 위에 쌓인 모든 블록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 이는 엄청난 양의 컴퓨팅 파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특성은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인 불변성투명성을 보장한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거래 내역은 누구나 볼 수 있으며, 한번 기록된 거래는 실질적으로 변경 불가능하다. 이는 테트리스에서 모든 플레이어가 같은 규칙을 따르고, 한번 쌓인 블록의 배치를 인정해야 하는 것과 유사하다.


냉전에서 암호화폐까지

테트리스와 블록체인의 탄생 배경에는 흥미로운 역사적 맥락이 있다. 테트리스는 냉전 시대 소련 연구소에서 인공지능 연구 중에 만들어졌다. 1989년 닌텐도 게임보이와 함께 제공되면서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 간단한 소련 게임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비디오 게임 중 하나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테트리스는 국경, 정치적 이데올로기, 문화적 차이를 초월하는 보편적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한가운데서 탄생했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백서에는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대안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었다. 비트코인은 국경과 정부 통제를 초월하는 탈중앙화된 통화 시스템을 목표로 했다.


두 혁신 모두 기존 체제의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 테트리스는 게임의 본질을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로 환원했고, 비트코인은 화폐의 본질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둘 다 단순한 규칙과 구조를 통해 복잡한 시스템을 창출했다.


패턴과 규칙: 질서 속의 다양성

테트리스의 매력 중 하나는 제한된 수의 블록 모양으로 무한한 패턴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단 7가지 테트로미노(I, J, L, O, S, T, Z 모양)만으로 게임판은 매번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다양성은 엄격한 규칙 내에서 형성된다. 블록은 항상 4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되며, 격자에 맞춰 움직이고 회전한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로 제한된 규칙 내에서 무한한 다양성을 보여준다. 각 블록의 구조는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 포함되는 거래 내역은 매우 다양하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보냈는지, 어떤 디지털 계약이 실행되었는지 등 수많은 정보가 블록 안에 담길 수 있다.


이는 마치 글자와 문장의 관계와 비슷하다. 한글의 기본 자모 24개로 무한한 문장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테트리스의 7가지 블록과 블록체인의 기본 구조도 무한한 조합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단순한 요소들이 모여 복잡하고 다양한 패턴을 만드는 현상은 자연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DNA의 4가지 염기(A, T, G, C)가 모든 생명체의 다양성을 코딩하는 것이 그 예다.


줄 제거와 합의 메커니즘

테트리스에서 한 줄이 완전히 블록으로 채워지면 그 줄은 사라지고 점수를 얻는다. 이는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플레이어는 이를 목표로 블록을 배치한다. 줄이 완성되었는지 여부는 게임 시스템이 자동으로 검사하고 즉시 처리한다. 이 순간의 짜릿함은 테트리스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특히 한 칸을 비워둔 채로 쌓아올리다가, 기다란 블록을 세워 꽂아넣어 한번에 4~5줄을 없애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기다란 블록이 등장하지 않아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주의하자)


블록체인에서는 합의 메커니즘이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비트코인의 경우 작업증명(Proof of Work) 방식을 사용한다. 채굴자들은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해시값을 찾기 위해 연산 작업을 수행하고, 조건을 충족하는 값을 찾은 채굴자가 새 블록을 체인에 추가할 권한을 얻는다. 이는 마치 테트리스에서 한 줄을 완성하는 것과 같은 성취다.


테트리스에서 줄이 완성되면 위에 있던 블록들이 아래로 내려오듯이, 블록체인에서 새 블록이 검증되면 네트워크의 상태가 업데이트된다. 두 경우 모두 시스템의 상태 변화가 명확한 규칙에 따라 처리된다. 차이점은 테트리스에서는 줄이 완성되면 그 정보가 사라지는 반면, 블록체인에서는 모든 정보가 영구적으로 보존된다는 점이다. 이는 두 시스템의 근본적인 목적 차이를 반영한다. 테트리스는 게임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완성된 줄을 제거하지만, 블록체인은 완전한 거래 기록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보존한다.


단순함 속의 복잡성

테트리스는 겉보기에 단순하지만, 그 바탕에는 탄탄한 수학적 원리가 있다. 놀랍게도, 컴퓨터 과학자들은 테트리스가 매우 복잡한 문제임을 증명했다. 최적의 블록 배치를 찾는 문제는 현재 알려진 알고리즘으로는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다. 간단해 보이는 게임이 사실은 컴퓨터 과학의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라니, 이것이 테트리스의 숨겨진 재미가 아닐까?


블록체인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현대 암호학의 핵심 원리를 활용한다. 특히 해시 함수는 블록체인의 핵심 기술이다. 해시 함수는 어떤 데이터든 고정된 길이의 문자열로 변환하는데, 입력값이 조금만 달라져도 출력값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를 일상에서 찾아보자면 지문과 비슷하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지문을 가지고 있고, 지문은 그 사람만의 식별자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블록체인에서 각 블록과 거래는 고유한 디지털 지문(해시값)을 가진다. 이 디지털 지문은 데이터의 무결성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다.


테트리스와 블록체인은 모두 수학적 토대 위에 구축된 시스템이다. 차이점은 테트리스가 플레이어에게 재미를 제공하기 위해 설계된 반면, 블록체인은 신뢰할 수 없는 환경에서 신뢰성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실패와 공격: 시스템의 취약점

테트리스의 게임 오버 조건은 간단하다. 새로운 블록이 게임 화면 상단에 도달하면 더 이상 새 블록을 배치할 공간이 없으므로 게임이 종료된다. 이는 시스템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아무리 뛰어난 플레이어라도 블록이 계속 떨어지는 한, 결국 게임은 끝난다. 테트리스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궁극적인 목표는 영원히 버티기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얼마나 효율적으로 버티는가'이다.


블록체인에도 이론적인 취약점이 존재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51% 공격'이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총 연산력의 절반 이상을 단일 주체가 통제하게 되면, 이론적으로는 이중 지불이나 거래 검열과 같은 악의적인 행위가 가능해진다. 이는 마치 테트리스에서 갑자기 모든 블록이 한꺼번에 떨어지게 되는 것과 같은 치명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경우 네트워크 규모가 너무 커서 실질적으로 이러한 공격은 극도로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테트리스에서 게임 오버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 있듯이, 블록체인도 공격에 대비한 방어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탈중앙화된 네트워크 구조, 경제적 인센티브 시스템, 그리고 암호학적 보안이 결합되어 공격 비용을 극도로 높인다.


복잡한 결과를 만드는 단순한 규칙

테트리스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그 단순함이다. 규칙은 누구나 몇 분 만에 이해할 수 있지만, 마스터하는 데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단순한 규칙이 복잡하고 매력적인 게임플레이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테트리스는 디자인의 걸작으로 여겨진다.


테트리스의 이러한 "쉽게 배우지만 마스터하기는 어렵다(easy to learn hard to master)"는 특성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지속하는 비결이다. 3살 어린이부터 93살 노인까지 누구나 테트리스를 즐길 수 있지만, 최고 레벨에서 플레이하려면 엄청난 기술과 전략이 필요하다.


블록체인도 그 핵심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기본적으로는 변조 방지 디지털 장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단순한 개념은 금융, 공급망, 신원 증명, 투표 시스템 등 수많은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자연계의 많은 현상과 비슷하다. 눈송이의 아름다운 패턴은 물 분자가 특정 온도에서 결정화되는 단순한 규칙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테트리스와 블록체인은 단순한 규칙이 복잡하고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가능한 한 단순하게, 그러나 더 단순하지는 않게." 아인슈타인의 이 유명한 격언은 테트리스와 블록체인 모두에 적용된다. 두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복잡한 문제(엔터테인먼트와 신뢰할 수 있는 거래)를 가능한 한 단순한 방식으로 해결한다.


디지털 블록에서 찾는 의미: 가치의 창출

테트리스와 비트코인은 디지털 세계에서 구조와 규칙이 어떻게 가치와 의미를 창출하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예시다. 테트리스는 단순한 블록의 적절한 배치가 점수라는 가치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비트코인의 근간인 블록체인은 디지털 정보의 특정 구조화 방식이 어떻게 신뢰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증명한다. 두 경우 모두 가치는 물리적 실체가 아닌 특정 패턴과 규칙에서 비롯된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근본적인 변화를 상징한다. 물리적 세계에서 가치는 종종 희소성과 물질적 특성에 기반했다. 금은 희귀하고 부식되지 않아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에서 가치는 점점 더 패턴, 관계, 그리고 집단적 합의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테트리스의 가치는 개인적이고 일시적이다. 게임이 끝나면 점수도 사라진다. 반면 블록체인의 가치는 집단적이고 지속적이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수백,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그것을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존재하며, 그 기록은 이론적으로 영원히 보존된다.


테트리스와 블록체인은 디지털 공간에서 질서와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다. 테트리스에서 플레이어는 떨어지는 무작위 블록들 속에서 질서를 창조하려 노력한다. 블록체인에서는 분산된 참여자들이 공통의 규칙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거래 기록을 만들어간다. 두 경우 모두 카오스 속에서 패턴을 찾고 만드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반영한다. 


다음에 테트리스를 플레이할 기회가 생기거나 비트코인을 사려 한다면, 이 두 세계가 공유하는 근본적인 디자인 원칙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자. '떨어지는 블록들'과 '쌓이는 체인' 사이에는 디지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연결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 안드레아스 M. 안토노풀로스 외 1인. <비트코인, 디지털 화폐의 미래를 열다>. 송주한 외 2인(역).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25).

- Demaine, Erik D., et al. (2002). "Tetris is Hard, Even to Approximate."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utational Geometry & Applications

- Nakamoto, Satoshi. (2008).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 스콧 로저스. <게임 디자인 레벨업 가이드>. 전유택, 유창석(역). 에이콘출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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