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출근하기 싫었다.
아침형 인간은 못 되는지 출근하는 날에 기분 좋게 일어나 본 적이 없다. 아침마다 알람을 십 분씩, 십 분씩 미루기 일쑤였다. 눈을 뜨자마자 물 한 잔을 마시면 잠이 잘 깬다길래 매일 밤 머리맡에 물병을 챙겨두기도 했지만,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도 다시 누우면 잠만 잘 들었다. 이불 속이 그렇게 따뜻하고 포근할 수가 없었다.
겨우 이불 밖으로 나와도 잠도 안 깬 얼굴에 끈적한 화장품을 발라대는 게 싫었다. 겨우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봤자 지옥철로 가는 여정이 시작될 뿐이었다. 날이 더울 땐 모르는 사람들과 살결을 부대껴야 했고, 추운 날엔 두터운 패딩 사이에서 숨이 막혔다.
그러다 어제 해결하지 못한 일이라도 떠오르면, 일하다 감정이 상해 불꽃을 튀긴 동료라도 떠오르면 정신적 고문까지 시작되었다. 돈이 얼마쯤 있으면 출근 안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오늘 퇴근길엔 로또를 꼭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리 별일 없고 한가한 때여도 출근이 기다려지고 설렌 적이 없었다.
언젠가 성 과장이 말했다. 항상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출근이 싫었는데 10년 차쯤 되니까 조금 담담해지더란다. 과연 10년 차가 되는 날이 오기나 올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