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학청년 Mar 15. 2021

즐거웠던 순간들을 떠올려봐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굳이 뭘 찾아내고 상상할 필요도 없다. 그냥 지금껏 살아오면서 재밌고 즐거웠던 순간들이 한 번은 있었잖아. 아주 작은 단서들. 그 추억을 더듬어본다. 그것을 다시 해보는 것이다. 당장 무엇을 할 때 재밌고 즐거운지 모르겠으면, 최소한 예전에 했을 때 재밌고 즐거웠던 것들을 다시 해보는 것이다. '아무거나'라는 것도 과거의 즐거웠던 경험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즐거운 기억들. 거즘 30년을 살아오면서 나에게 즐거운 순간이 한 번은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에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나는 먼 과거의 기억까지 생각해냈다. 


주공 아파트에 살 때 해열이와 두현이랑 자전거를 타고 삼성아파트가 있던 옆 동네까지 넘어가곤 했다. 내가 살던 동네를 벗어나면, 미지의 세계에 온 것처럼 설레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새로운 건물과 낯선 가게들, 그 동네에만 있던 오락실, 물대기를 마친 논두렁에 맑은 하늘이 비치면 지상에서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했다. 그렇게 또 다른 길을 찾아 헤매고 탐험하면서 우리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때의 기억이 참 좋다. 친구들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 초등학교 방학 숙제로 만들기를 해오라고 하면 나는 작은 자동차나 풍차 같은 걸 만들었다. 어떤 캐릭터나 고정된 인물보다는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었다. 기계공학과를 진학한 이유가 여기에 있나. 어느 정도 연관성은 있을 것 같다.


이런 기억들은 나의 현재와 미래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그때의 내가 지금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위와 같은 사례들은 내가 걸어온 길목 곳곳에 작게 피어난 민들레처럼, 그 빛을 잃지 않고 향긋하게 남아있다. 그것들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다. 

  나는 모험과 창작을 좋아하는 것 같다. 확신은 아니다. 잘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잘한다는 게 뭐지?). 생각만 한 거다. 이제 와서 해보니 재미없을 수도 있고 하다 보니 또 다른 것에 흥미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야 할지 알려줄 단서임은 확실하다.

  운동은 정말 못했다. 운동으로 뭔가를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체력장을 하면 오래달리기는 항상 뒤에서 두세 번째였다. 살이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깡 마른 편도 아닌데 운동 신경은 아주 젬병이었다. 만들기를 좋아했고, 학교에서 일기장 검사를 하면 동시를 써서 내곤 했다. 노래는 음, 좀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오래된 노래를 좋아한다. 김현식, 들국화, 산울림의 노래를 좋아하고 통기타를 조금 배웠다. 피아노도 한 두 곡 정도 칠 줄 안다. 


나에게 재능 같은 게 있을까? 나는 참 걱정이 많다. 이것은 재능이라고 할 순 없지. 걱정이 많고 고민이 많고 부정적이고 갈등이 심하다. 쉽게 우울해진다. 이러한 생각은 글쓰기로 이어졌다. 일기를 꽤 오래 썼다. 하루 일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걱정과 고민, 부정적인 이야기들. 특히 고등학교~재수 시기에는 병적으로 글을 썼다. 어디라도 쏟아붓지 않으면 정신병이 걸릴 것 만 같았다. 마음속에 피어나는 먹구름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면 펜을 들었다. 우울한 생각들을 새벽녘의 소나기처럼 지독하게 쏟아냈다. 저녁엔 일기를 쓰고 아침엔 빈 강의실에서 명상을 했다. 그때의 나는 글을 좋아해서 썼다기보다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토해냈다. 그리고 다시 삼켰다.

  글을 쓰는데 재능은 없지만 적성엔 맞았다. 잘 쓰진 않더라도 익숙하니까. 할 말이 많고 그것을 뱉어내는 게 어쨌든 속이 시원하다. 가끔 게워낸 내용물이 마음에 들면 누구한테 보여주기도 하고 스스로 찾아보기도 한다. 대학교 입학은 기계공학 전공으로 했지만 문예창작과 전공 수업을 교양으로 대체하여 들었다. '소설창작연습' 수업에서 '종남이'라는 소설도 한 편 썼다. 혼자 내일로 기차 여행을 하다 만난 형 이름이다. C+ 맞았다. 


대학교 3학년 때는 휴학을 감행했다. 군 복학 후 1년 동안 학업에 열중했지만 그것들도 토익 공부처럼 너무 하기 싫었다. 그렇게 도피하듯 휴학 신청을 했다. 혹시 인생을 바꿀 전환점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결과적으로 한 학기 휴학이 끝나고 추가로 한 학기를 연장했다. 그 기간 동안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나 자랑할만한 업적을 쌓은 건 없었다. 그냥 그 기간이 너무 행복했다. 그 행복이 나에게 주어져 있는데 그것을 내팽개치고 싶지 않았다.

이전 03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