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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Mar 04. 2021

토익 공부 정말 미치도록 하기 싫다


정신이 아득하다. 나만큼 하기 싫은 사람이 또 있을까. 있을 수 있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정말 하기 싫어서 미쳐버릴 것 같다. 근데 해야 해. 이미 해커스 어학원 두 달치 수업을 결재했고, 그렇게 남들도 다 하고 있다. 심지어 앞 줄에 앉으려고 30분 전에 도착해서 줄을 선다. 취준생의 기본 소양이다. 


무엇을 위해 토익 공부를 하는 걸까. 토익 공부가 과연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처음 해보는 건데. 미래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도박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엔 높은 확률의 도박이 있고 토익 점수도 그중 하나이다. 최소 700점은 되어야 입사 자격이 주어지고, 점수가 높을수록 서류 전형에 합격할 확률이 올라간다. 좋은 회사에 다니면 행복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좋은 회사가 무엇이고, 행복의 정체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나도 동의한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 그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이 길을 온 것이고. 더 생각할 것 없이 이게 최선이다. 알고 시작했으니 책임지고 끝을 봐야지. 버텨야 한다. 버티긴 할 건데 진짜 힘들게 버티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남들 다 하니까 그나마 괜찮거나, 뭐 그런 게 아니다.


토익 공부만큼 힘든 게 없다. 재미가 없다. 재밌는 공부가 있겠냐마는, 정말 속된 말로, 더럽게 재미없다. 지식을 쌓는다거나 기술을 배운다거나 뭔가를 상상해서 만든다거나, 공부에 흥미를 붙일 수 있는 일말의 단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인쇄하듯이 문법 지식을 머릿속에 찍어댄다. LC(Listening Comprehension)는 더 가관이다. 학원에서 배우는 건 듣기 연습이 아니라 추리 연습이다. 화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어떤 단어가 나오는지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관련 단어가 두어 개 나오면, 그것으로 답을 추정 또는 통계적으로 확신하는 그런 기법들을 알려준다. 희한한 것은 수업을 들을 땐 그 단서들이 잘 보이는데 혼자 해보려고 하면 다시 외계어가 된다. 공부라는 것을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싶다. '요즘 영어 공부하고 있습니다'라고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나.


체력 소모도 심하다. 보통 4학년 2학기 하반기 취업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7~8월에 바짝 점수를 올려야 하는데, 너무 덥다. 이렇게 더운 날 재미없는 토익 수업을 들으려고 몇 십분 전에 와서 줄을 서야 한다. 줄이 얼마나 기냐면 4층에서 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 6층에서 내려야 한다. 4층 강의장의 대기열이 로비를 지나 비상구 계단까지 이어져 있다. 특히 수업 첫 째 주에는 수강생들의 의욕과다로 매일 2~3층은 더 올라가야 한다. 비상구 계단은 에어컨도 안 나와서 무거운 토익 보카 책으로 부채질을 한다. 이른 아침부터 인중과 목덜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학생들의 얼굴을 톱니바퀴처럼 하나하나 마주하며 줄을 선다. 나는 톱니바퀴의 이빨 하나다. 뾰족한 그것,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 다 같이 모여서 굴러다닐 준비를 한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걸까? 다들 뭔가 답답하고 짜증 나고 억울한데 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걸까. 내가 좀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건가. 기분이 좋지 않다. 학원의 분위기가 나를 질책한다. 뭘 잘못한 걸까. 어디서 잘못된 걸까. 내가 언제 무얼 했기 때문에, 아니면 무얼 안 했기 때문에 이 토익 공부를 버티고 견디고 노력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상상하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마음속에 있는 어떤 것을 그리고 추억 속에 있는 것을 되새기고 그것들은 새로운 것의 원천이 되며, 오래 간직할 수 있게끔 기록을 한다. 그런 단어들, 독창적이고 창의적이고 신선하고 개방적이고 도전적이고 새로운 것을 좋아해. 허나 이곳은 그 반대에 있는 곳이다. 20대의 휴학생, 취준생이 가기 가장 뻔한 곳. 소화가 안되고 머리가 아프다.


몇 번의 타협을 거쳤다. 이 글은 새로운 무언가를 탐색하고자 함이 아니라,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우는 글이다. 어차피 해야 되는 것, 불평하는 시간도 아까운 것, 그러나 한 달이 지속되었고 한 달을 더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비참하지만,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베개에 고개를 처박고 소리라도 질러보는 것이다. 해야 할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시 계획을 세우고 점진적으로 목표를 향해 다가가야 한다. 


내일 학원 수업이 끝나면, 나머지 날들을 어떻게 공부하고 보낼 것인지 계획을 짜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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