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을 했던 그때 기억을 곱씹어 본다. 처음 한 달 정도는 뭘 해야 할지 몰라 집에만 덩그러니 있었다. 자유는 생각보다 낯선 것이었다. 단칸방 안에서도 길을 잃은 사람처럼 우물쭈물 거리며 한 달을 보냈다. 그렇게 뭐라도 배워보려고 시작한 게 미술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미술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언제부터 그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식기처럼 그 생각은 찬 장 어느 곳에 작은 공간을 차지하여 어렴풋한 중력으로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한 번도 살펴서 꺼내본 적이 없는 작은 생각,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을 모두 놓아버리고 우선순위가 사라지자 그 작은 찬장을 열어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그것들을 당장에 치워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품고 왔는지, 그것이 얼마나 쓸모 있고 의미가 있는지 하나하나씩 사용해보기로 했다.
크로키를 배우고 싶었다. 어느 광장의 벤치나 한적한 버스 승강장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몇 가닥의 획으로 그 순간을 잡아내는 크로키를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미아역 근처 시월화실이라는 학원에 등록했다. 정물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초상화들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고 연필을 쓰다가 목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3개월 정도 다녔을까. 흥미가 없다는 걸 알아채고 그만뒀다. 잘하고 싶었고 꾸준히 하면 실력이 더 늘 수도 있겠지만 그만한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필요 없는 식기 하나를 버렸다.
영어 회화 학원도 다녔다. 뭔지 모를 불안감에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공부에 대한 관성이랄까, 누가 뭘 시키지도 않고 조별 과제도 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공부를 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건 처음이었고 괜히 초조했다. 그래서 회화 학원을 등록했다.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신발 가게, 그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학원에서 원어민 선생님과 공부를 했다. 선생님께서는 공부를 더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보충 수업까지 열어 줬고 나는 그 수업에도 빠지지 않았다. 다만 보충 수업을 듣기 위해선 선생님의 본 수업이 다 끝나야 하기 때문에 2시간 정도 텀이 생긴다. 그동안 동숭동 골목길을 한 바퀴 돌거나 4번 출구 쪽에 있는 서울연극센터에서 짧은 희곡을 읽기도 했다.
어느 날은 허기가 져서 샘터 건물 옆 KFC에서 햄버거를 사 먹었다. 2층 창가 자리 쪽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세트 메뉴를 먹고 있는데 문득 창 밖에 '학림다방'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한복판의 대로변에 다방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 2층은 곧게 뻗은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있는 대학로 쪽으로 넓은 창이 나 있었고, 창틀엔 사람들의 정수리가 부표처럼 둥둥 떠다녔다. 턱을 괴고 밖을 보는 사람,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 앞치마를 하고 분주히 돌아다니는 직원, 천장에 달린 노오란 백열등은 마치 석양처럼 그들의 정수리를 비추고 창 밖으로 새어 나와 퇴근 시간의 빽빽한 대로변을 건너서 나에게까지 그 따스함을 비추었다.
그저 커피와 차를 파는 오래된 카페일까, 해는 다 저물어가지만 커피 한 잔을 핑계로 학림다방으로 향했다. 입구엔 베토벤의 두상 조각상과 황동색 현판이 장식하고 있다. 어느 지긋한 문장가의 학림에 대한 짧은 감상이 적혀 있었다. 지금은 보기 힘든 문체와 어르신들 특유의 농밀한 여운이랄까, 언어에 대한 미련이랄까 그런 게 묻어 있었다.
나선형의 계단을 한 칸씩 오르면 학림 다방의 내부가 베일을 벗기듯 슬며시 보인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와인 셀러 옆에 붙어 있는 백기완 선생님의 연설 포스터,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시선이 흘러서 2층 테이블 난간에 붙어 있는 낡은 LP 자켓 사진들이 보인다. 붉은 벽돌과 목재로 지어진 건물은 삐그덕 삐그덕 앓는 소리를 계속 내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테이블과 난간 손잡이는 대리석처럼 반들반들하다. 이 약간의 소란스러움을 조망할 수 있는 모서리 쪽 테이블에 벽을 등지고 앉았다.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뭔지 모를 기대감이 싹을 틔웠다. 시멘트나 타일의 차갑고 정갈한 모습보다는 원목과 백열등이 주는 포근함, 행선지가 각기 다른 군중들이 옹기종기 모여 쉬어갈 수 있는 곳, 요즘 새로 생겨나는 커피숍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공간이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반영한다면 이곳은 70~80년대의 공간이다. 조금은 소란스럽고 비효율적이고 거추장스럽고 눅눅하고 협소한 이 공간이 나는 애틋하고 정감 갔다. 손님들도 그 낯설음에 끌려서, 어르신들은 그리움 때문에 이곳에 오는 것 같다. 지나가버린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도 그렇고. 아니 이때부터 그런 성향이 생긴 걸지도.
기막힌 우연일까, 카페 안엔 매직으로 쓴 구직 공고가 붙어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영어 수업이 5시 30분부터니까 시간대도 적절하다. 나는 카페를 나가기 전에 사장님께 말씀을 드렸다.
"혹시 아직 직원을 구하고 계시면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사장님의 표정이 기억난다. 옅은 미소 속에 반가움과 당황스러움이 동시에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테이블 한 구석에 나를 앉히고 이것저것 묻더니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다.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다.
"여기 학림 다방인데요,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해 여름부터 시작해서 대학로의 은행나무 잎들이 샛노랗게 피었다가 다 질 때까지 바쁘게 지냈다. 낮엔 파트타임으로 학림에서 일하고 퇴근 후 월/수요일엔 영어 학원, 화/목요일엔 화실에 나갔다. 누군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하나를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 순간을 말할 것이다. 방황과 불안으로 점철된 나의 20대, 나를 불안하게 만든 모든 것을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하루하루 스스로 선택하며 책임지고 살았던 순간. 활력이 생기고 생동감이 느껴졌다.
생명의 힘, 그것을 직접 목격했던 순간이 생각난다. 아빠는 바닷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미끼로 꾀어 물 밖으로 끄집어내었고, 그 생명체는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활어의 지느러미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은 나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물속에 있을 때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가늠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물 밖으로 건져지면 몸이 고꾸라지도록 지느러미를 흔든다. 삶의 경계에 다가서야만 나에게 주어진 것들과 내가 딛고 있는 지면의 해발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에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기 위해선 이 삶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불안과 압박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입에 걸린 이 바늘을 털어내기 위해 한사코 몸부림을 쳐야만 했고, 그때 나에게 주어진 생명력(力)을 느꼈다. 그것은 다른 이의 활력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행복했다. 이것이 행복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손님들께 커피를 만들어 드리고 요청하는 음악을 틀어주고, 얼마 안 되는 수입이지만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다. 그냥 그렇게만 살아도 좋았다. 그 기간을 통해 어디에 투자하거나 미래에 어떤 것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주어진 것을 만끽하며 살았다. 금요일 5시에 일이 끝나면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마로니에 공원 벤취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을 기다리는 것은, 가끔은 그들을 만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술에 취해 떠들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그런 하루 들은 재미있고 행복하고 그렇게만 살아도 좋았다.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괜찮은 MTB 자전거를 하나 사서 우리나라의 굵은 강줄기를 따라 전국을 누볐다. 거제도에 사는 김진철 군과 함께 첫 해외여행으로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돈을 내고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자기개발 대외활동에 참가하여 학교에서 해보지 않은 것들을 했다. 아무에게도 말해보지 못한 자기 만의 생각을 발표해보기도 하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해보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색깔과 질감이 다른 여러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서 내가 그들과 어떻게 다른지, 나는 어떤 색이고 어떤 질감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해볼 수 있었다. 나에 대한 인식은 내가 아닌 것들로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 가로수길에 플라타너스라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 나무는 겨울과 봄에는 회백색의 창백한 수피를 가지고 있다가,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지고 줄기에 녹색, 갈색, 노란색, 회색의 무늬가 생기기 시작한다. 여러 겹의 수피 층이 밖으로 노출되면서 한겹씩 벗겨지고 단풍이 들듯 말라 떨어지면서 알록달록한 카모플라쥬 패턴의 무늬가 형성된다.
어느 여름날, 교정을 거닐다 예쁘게 어우러진 플라타너스 수피의 배색을 한참 바라본 기억이 있다. 그 무늬가 내 몸뚱이에도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내 몸에도 요철이 생기고 채도가 입혀진 시절이다. 나의 가치관은 학창 시절이나 대학생 때 생긴 게 아니라, 이 학림다방의 동그란 커피 잔 속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절의 감상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