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학청년 Sep 27. 2021

좋아하는 일로 꼭 돈을 벌어야 되나


의문 2)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은 아닌가?


앞서 말한 '의문 1)' 을 통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세상엔 좋아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그것들은 때에 따라 기호가 달라질 수도 있고, 새롭게 생겨나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전적으로 나에게만 달려 있었다. 좋고 싫음은 순전히 나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다. 다만, 그것들로 돈을 벌기가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하다 보니 자연스레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인지, 아니면 외부의 여러 매체와 기관과 학교와 선생님 등을 통해서 학습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것을 권장하고 추구하며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고 어느 정도 명성과 인기와 지지를 가지고 있는 인플루언서들이다. 직업으로 갖는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돈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직장 생활을 즐거운 일로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유한한 삶을 효율적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책에서 유시민 아저씨가 그랬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라.' 그러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절반이라도 성공하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다. 직업으로 갖기 위해선 남들보다 잘하는 게 핵심이다. 이미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수준까지는 잘해야 하고, 없다면 제일 잘해야 한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잘해져서 될 일이 아니다. 사회에는 그 직업에 대한 수요와 벌이가 정해져 있다. 같은 걸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잘해서 시장이 정해 놓은 커트라인에 진입해야 한다.

  나는 이런 것들이 정말 좋아하기만 해서 될 일인가 싶다. 시장 규모를 조사하고 기회비용을 계산해서 치밀하게 전략을 짜야될 것 같은데, 참 골치 아픈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제적 뒷받침의 유무에 따라 노력의 목적이 달라지기도 한다. 집에 여유가 있고 부모님이 뒷바라지해주시면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잘하기 위한 노력'에 사용할 수 있다. 악기 연주를 잘하고 싶거나, 법과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어야 그것을 위한 노력과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먹고사는 일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내가 배고프다면, 나는 그것을 잘하는 것보다 '생계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좋아하는 걸 잘하고 싶은데 그게 안될수록, 생계유지의 비중은 커진다.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어떤 지원자는 주말에 치킨을 튀기고 평일에 곡을 쓴다. 너무 좋아하는 일이기에 치킨을 튀겨가면 번 돈으로 장비를 사고 곡을 만들어 랩을 했지만 탈락했다. 그럼에도 계속 치킨을 튀기고 좋아하는 일을 해나갈 것이고 그 이야기를 가사로 쓰겠지. 정말 좋아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정말 이것을 좋아하나?'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그 녀석도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날 좋아하긴 한 거야? 이걸 참고 버티지 못하면 사실 그만큼 날 좋아하지 않는 거야.'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갖기 위해 노력할 때 일어나는 가장 비극적인 대목이다. 좋아하는 마음과 그 정도를 측량하기 시작한다.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싶은데 잘 안되니까, 나와 처음 인연을 맺어준 첫 감정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 열심히 해야 되는데, 더 노력해야 되는데 이게 다 내가 그만큼 안 좋아해서 그런 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의심조차 하지 않겠지. 내가 이걸 좋아할 자격이 있나. 무언가를 좋아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그럼 차라리 안 좋아하고 싶다.


좀 오래전 방송인데, 무한도전 쉼표 편에서 노홍철이 이런 말을 했다. "하고 싶은 것, 그걸 하세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힘이 들어도 힘이 들지 않아요." 주변에 그런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맞는 말 같았다. 나에게도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 돈을 못 벌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하고 싶은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힘이 들어도 힘이 들지 않다, 는 좀 과했고 버텨낼 수 있다, 뭐 이 정도로 해석했다.

  나는 글쓰기와 음악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직업으로 갖으라는 소리인가. 하지만 팔리는 음악과 글은 따로 있다. 같은 생각으로 출발하더라도 결국 대중의 선택을 받은 콘텐츠가 살아남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엔 쓸데없는 이런 이야기보다 삼성전자 주식을 살까 말까에 대한 글을 쓰면 돈이 된다. 하지만 난 그런 능력도 없고 재미도 없다.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쓰며 돈을 벌고 싶으면, 여타 사람들보다 글을 잘 써야 한다. 그럼 잘 쓴 글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 싶은 글이어야 하고 나에겐 그럴 능력이 없어서 재미가 없다. 그렇게 오해를 한다. 글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나? 그럼 이것보다 더 좋아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아야 하나. 극악의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를 이끌어줄 만한, 그렇게 매력적인 것을 찾아야 하고 그게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처음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것을 잘해서 돈을 벌고 싶은데, 돈을 벌 생각이면 꼭 좋아하는 걸 하지 않아도 되잖아. 좋아하는 것을 잘해서 돈을 버는 건 너무 큰 노력이 필요하지만, 꼭 좋아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권장하고 주어진 직업들이 있다. 직업으로 만들기 위한 투입 기간과 비용, 월 급여나 근로 보증 기간이 공개된 직업들 말이다. 공무원이나 경찰관, 소방관, 회사원 등이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게 '좋아하는 것'인 사람은 이 시대에 태어난 게 축복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라, 한 문장을 던지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말인 것 같다. 뭐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사람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소리인가. 도대체 내가 무얼 좋아할 줄 알고 그것을 직업으로 가지라고 하는 것인가. 그걸 잘한다고 해도 직업으로 이어지는  쉽지 않다

  재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미 선택된 사회와 그 시대의 수요이다. 수요에 맞춰진 일자리에 타협하는 것이 우리 세대가 인생의 절반을 성공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그나마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차라리 이런 고민을 중고등학교 때 했으면 달랐으려나. 그때부터 성인이 되면 어떤 것들을 언제까지 해볼 것이고 언제쯤 포기할 것인지, 미리 계획을 세웠더라면 기회는 더 많았을 것이다. 딱히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시키는 공부만 꾸역꾸역 하면서 고등학교 때까지 살아오다가, 갑자기 성인이랍시고 주어진 자유가 부담스러워 군대라는 곳으로 잠시 도피하고, 전역 후 대충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며 살다 보니 대학교 4학년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진로 고민을 하고 있으면 어쩌란 말이냐.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인간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누려도 되는 존재인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고 행복하게 오순도순 잘 살기를 바란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과거에 비해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정말 그런가. 나는 오로지 주위의 삶과 매체에서 보여주는 현상 밖에 인식하지 못한다. 가난과 기근, 질병과 전쟁이라는 불행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고 그들이 과연 소수인가. 역사 시대 이후로 인간의 삶은 편안했던 시절이 길었을까, 불편했던 시절이 더 길었을까. 문명의 발전을 통해 과거의 인류에게 불행이었던 요소들이 하나씩 줄어들지만, 동시에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불행의 씨앗이 시대의 파도를 타고 더 복잡한 방식으로 더 깊숙이 침투한다. 행복한 삶과 마음의 안식을 추구하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인간에게 너무도 이상적인 일이었을까. 우리는 그것을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존재인가. 나는 우리 유전자 속에 새겨진 본성을 말하는 것이다.-


끝없이 내 감정을 의심하고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측량하느니, 차라리 그것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그 녀석에게 일을 시키거나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하지 말자. 컨버스 광고에서도 말하듯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려면 그냥 좋아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순수하게 나의 만족감을 위해 잘하고 싶으그때 노력을 하자. 기타를 치다가 더 난이도가 있는 곡을 치고 싶으면 조금씩 꾸준히 연습을 해서 정복하자. 그러면 실력이 늘 것이고 버스킹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를 위해 공연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직업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서 한 것일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깎고 자르고 잴 필요 없다. 좋아하는 것에 무언가를 바라지 말아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다. 이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단 하나의 조건, 그것은 '본업'이다. 

  직업이라는 것이 별개로 있어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할 수 있다. 본업을 결정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회의 수요가 많은 것'이 우선 요소이다. 좋아하는 감정을 배제시킬수록 선택은 수월하다.  물론 기호나 적성에 아주 조금이라도 맞출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운이다. 직업은 사회가 정하는 것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후에, 또는 틈틈이 하자. 그것으로 돈을 벌어야 할 의무도 없다. 아무 제약 조건 없이 좋아하는 것을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고 공자가 말했다. '항상 있는 재산이 없으면 항상 있는 마음도 없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잘 보살피고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지키고 살려면, 지속 가능한 재산이 있어야 한다. 가진 것이 없다면,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좋아하는 것을 잘해서 직업으로 만들기'에 투자하지 말자. 누가 봐도 그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미래의 꿈이 이뤄지지 않으면 힘겹게 보낸 나의 하루들이 너무 아깝다. 그 꿈이 아무리 간절하다고 한들 나의 오늘보다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어차피 이루면 사라져 버릴 것이 꿈이다.

 


이전 06화 엄마는 어서 복학하길 바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