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학청년 Aug 22. 2021

엄마는 어서 복학하길 바란다


휴학 기간 마지막 한 달은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항공편,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환승 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휴학 연장 신청의 마지막 날이었고, 고민 끝에 연장 버튼을 눌렀다. 한국에 도착해서 어머니께 이 소식을 전해드렸더니 속상해하셨다.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사는 게 재밌어서 더 즐기고 싶다는 건데, 엄마는 불안하신가 보다. 

  성인 자녀를 둔 어른들이 항상 하는 걱정들, 어서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서 천생연분을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 그렇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모르겠다. 당연히 알 수가 없다 해보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해봐서 확실한 것은 당장 옆에 있는데 말이다.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다하고 사니?"

맞는 말이다. 이 세상은 하고 싶은 것만 다하고 살 수 없다. 그게 가능한 곳이 있다면 천국 아니면 꿈 속일 것이다. 하지만 저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것만 다하며 살 순 없어.' 라는 생각 이전에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어.' 라는 생각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기 싫은 것'은 그것을 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함으로써 내가 보상받을 수 있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하고 순전히 그것을 위해서만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하고 싶은 것은 극대화하고 하기 싫은 것은 최소화해야 할 게 아닌가. 


그러나 나는 엄마의 말도 이해할 수 있는 성인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것을 당장에 할 수 있는 상황이라도 그것이 지속 가능한 수준이 되기 위해선 미리 하기 싫은 것들을 해 놓아야 한다. 지금처럼 취업도 어렵고 일자리도 부족한 시대에, 당장에 하고 싶은 것만 하다가는 미래에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고 기회비용을 계속 지불하게 된다. 엄마 아빠도 그렇게 살아왔고 나도 그걸 보면서 자라왔다. 하지만,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정말 그렇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하기 싫은 것들을 해왔지만 아직 그것들로 인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하기 싫은 것을 했는데 그것으로 인해 또 하기 싫은 것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왜 이것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서 하기 싫은 것들을 해왔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확실한 것들, 당장에 쟁취할 수 있는 것들에 이끌렸다. 휴학 기간을 연장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더 해볼 수 있고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휴학 기간이 길어지면서 걱정과 불안이 앞섰고, 나는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 그것 또한 확실하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다 하고 사는가.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엄마를 더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1년 만에 복학했다. 




쓰인 글을 몇 번 읽다 보니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휴학 연장 신청 버튼을 누르면서 엄마가 만류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었고, 불안한 마음은 엄마를 핑곗거리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엄마의 만류를 이용해 그것에 개의치 않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인식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많아서,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거나 새로운 것을 취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 나 같이 생각이 많은 사람은 미리 겁을 먹고 변명거리를 찾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나에게 휴학은 일종의 일탈이었다. 직장인이 휴가를 내고 놀이동산에 다녀온 것과 다를 바 없다. 도대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지속 가능한 행복은 존재하는가. 인간이라는 굴레에서 우리가, 최소 나라는 개체가 획득할 수 있는 행복의 길은 하나인 것 같다. 잊어버리는 것.

  잊고 있던 기억이 돌아왔다. 나는 학생이고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하기 싫은 것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미래에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도 하기 싫은 것을 해왔기에 주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한다면, 그것을 희생함으로써 얻는 것을 생각하자. 인생이 1시간이라면 30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남은 30분 동안은 즐기며 살아야 한다. 그 비율이 10분, 50분 일 수도 있고 50분, 10분 일 수도 있다. 그것은 타고난 재능과 탄생 배경, 시대 상황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토익 공부 이야기를 하다 여기까지 왔다. 토익 공부가 그토록 하기 싫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나에게 토익 공부는 하기 싫은 것인데, 이것을 함으로써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여행을 다니면서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데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나는 무엇을 하고 싶어서 지금 이 하기 싫은 걸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싶은 것과 진로의 고민은 점점 깊어만 간다.




이전 05화 휴학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