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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Oct 10. 2021

학생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이 시대의 어른들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나에게 와닿지 않는 이유는 둘 중 하나이다. 내 귀가 먹었거나, 나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거나. 나는 평범하다. 그렇게 눈에 띄지 않으며 일반적인 내 나이 또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산다. 반대로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 또한 내 또래의 친구들이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좀 더 나아가 젊은이라는 집단을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 전달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내 친구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 그게 어느 나라의 국민을 칭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처럼. 이 시대의 어른들이 말하는 젊은이는 누구지? 나는 아닌 것 같은데. 


시대에 알 맞은, '좋아하는 일을 잘해서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만들어라.'는 말을 귀감으로 여기고 위인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젊은이들이 잠재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런 원석들을 찾아내어 보물로 만들어내는 것이 국가의 임무다. 나라의 발전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는 인재 발굴이 가장 중요하다. 이 인재들을 찾으러 일일이 돌아다닐 수 없으니 확성기를 들고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곳에서 멋진 말을 늘어놓는다. 납득이 가는 이야기지만 나 같은 바보들은 그것을 실현할 재능이 없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내가 해당이 되나? 고민하고 스스로를 측정하고 친구들과 비교해보지만 당최 갈피를 못 잡는다. 소위 '벙쪄' 있다. 빠릿빠릿하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친구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자신들의 길을 향해 간다. 그런데 우리는, 적어도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머뭇거리고 있다.   


김난도 아저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플루언서 중에 한 분이다. 그의 저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은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인절미처럼 쫀득하고 말랑말랑했던 나의 젊음은 이 책으로 인해 급격히 노화가 진행되었다. 책 출간 자체가 청춘을 농락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실 이 책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나는 딱 두 가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다.


첫 번째, 김난도 아저씨는 서울대 소비자학 박사이다. 소비자학 수업에서 무엇을 배울지 상상해보자. 아프니까 청준이다라는 책은 베스트 '셀러'이자, 스테디 '셀러'이다.


두 번째, 김난도 아저씨의 인생시계는 고장 났다. 그는 수면 시간을 빼고 계산했다. 좀 더 정확한 나의 계산법은 다음과 같다.


- 김난도의 인생시계 계산법 : 자신의 나이 * 0.3

- 문학청년의 인생시계 계산법 : 7 + (자신의 나이 / 5)


25살은 하루를 막 시작하는 오전 7시 30분이 아니라, 가장 배가 고플 때인 12시다. 아직 1교시 수업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이불속에서 꼼지락 거려야지 할 때가 아니라, 배가 고파서 미칠 것 같은데 이 배를 뭘로 채워야 할지, 얼마짜리를 먹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을 할 때인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언제까지 메뉴 고민을 해야 하나. 이 선택을 도와줄 사람이 없을까. 분명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이 장래 희망을 고민해보고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의무 교육의 목표가 각자의 꿈을 찾고 그것을 발현하기 위해 도와주는 것이라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인터넷에 교육의 의미를 검색해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교육의 핵심은 내부의 자연적 성장의 힘과 외부 영향력과의 합력에 의하여 성립되는 인간 형성의 작용을 말하며, 타고난 그대로의 인간을 바탕으로 하여 참되고 가치 있는 인간으로 이루어 보려는 작용이다. 인간이란 생명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힘으로, 환경을 통해 이러한 자발적, 창조적 가능성이 드러나고 개발되어 자기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나만의 의견이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고등학생 때 다니던 독서실 입구에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가 적혀 있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알의 안껍질을 쪼아대면, 어미가 톡톡톡 겉껍질을 두드리며 잘 나올 수 있게 유도해준다는 뜻이다. 선천적인 힘, 태생적인 힘, 창조적 가능성 이런 것들을 이끌어주는 게 부모와 선생과 진정한 교육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학창 시절 동안 나의 힘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 이끌려 다녔을 뿐이다. 나의 선택은 없었다. 맛있는 반찬들은 다 치워버리고, 영양가 있는 반찬이랍시고 가져온 것들 중에서 그나마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른 것뿐인데, 그 선택의 책임은 내가 져야 되는 것이다. 주어진 과목 중에 아 이게 좀 더 재밌네, 암기과목은 약하네, 이 정도지 진로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해 본 적이 없다. 문/이과를 선택한 것도, 전공을 선택한 것도, 나의 재능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두 가지를 던져 주니까 더 나은 것을 고른 것이다. 장래희망이 과학자니까 이과겠지. 그냥 흘러가는 길, 그나마 나은 길, 미래가 좀 더 보장되어 있는 길로 간 것이다. 그러니 대학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는 춘추전국시대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학교도 그렇고 토익 학원도 그렇고, 배움의 현장이라기보다는 취업 양성소와 같다. 하지만 자퇴는 할 수 없었다. 흔들리고 방황한 만큼 안정적인 삶을 원했다. 괘씸했다. 취업 양성소가 돼버린 마당에 진짜 학문을 찾아 헤매다가 죽도 밥도 안되면 대학교가 내 귀에 속삭일 것이다. 

  '이 바보야, 대학교에서 무슨 학문을 하겠다고. 앞으로 먹고 살기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데 왜 눈치를 못 채니, 다들 그렇게 하잖아. 그러다 잘못되면 그건 네 탓이야. 네가 알아서 해. 난 분명 시키는 공부 열심히 하고 자격증 많이 따면 취업이 될 거라고 했어. 난 몰라.'


이 시스템은 너무나 완벽해서 그 모든 불만들을 표백시켜버린다. 타협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그나마 흥미가 있는 직업은 무엇인가. 나는 사진을 현상하듯 이 사회가 찍어 놓은 많은 상(像)들을 마음속에 깊이 담가보고 인화된 결과물을 관찰했다. 이 직업을 갖는다면? 지나가는 경찰차나 영화를 보고 내가 형사가 된다면? 영화배우가 된다면? 눈에 띌 때마다 스스로를 대입했다. 그렇게 여러 필름들을 현상액 속에 담가보니 한 가지 상이 마음에 맺혔다. 그것은 PD였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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