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두 가지의 형태로 나눠보면 말 그대로 '취'와 '업'이다. 한자의 뜻을 찾아보면 [就: 이룰 취]와 [業: 일 업], 그러니까 우리는 취업을 하게 되면 일 자리도 얻거니와 그것을 이뤘다는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취업은, 사실 '업' 보다는 '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업'이라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렸다. 무엇을 '업'으로 삼고 싶은지 깊게 고민해볼 기회도 없었고, 수요가 많은 곳은 경쟁을 통해서 쟁취해야 한다. 이 사회는 그것을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포장하여 경쟁 체제를 유지한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한정된 채용 인원에서 낙오된 후엔 '업'보다 '취'를 준비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업'에 대한 고찰을 통해 방송사의 PD가 되고 싶었으나, 그것을 준비하는 기간에 짊어져야 할 심적 부담이 크다. 최근에 CJ E&M 교양 PD를 지원하려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과거 신입 조연출 자살 사건을 접했다. 그분 또한 나와 같은 생각으로 PD가 되려고 했을텐데, 막상 입사를 하고 보니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을까. PD의 업무량이 살인적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할 수 있으려면 차라리 혼자 영상을 찍고 유튜브에 올리며 취미로 해야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인문계열이 이공계열 전공자들보다 취업 문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PD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기회만 된다면 이공계열이나 제조업 쪽에 지원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을 필요로 하는 직군의 T.O는 매우 적고 자릿수가 이공계열과 다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문과의 비중이 더 크고, 대학 졸업생도 인문 사회계열 졸업자가 더 많다. 하지만 사회에서 당장 필요로 하는 인재는 공대생이다. 제조와 직접 관련 있는 연구/생산/품질 등의 직무는 지원 자체를 이공계열 전공자만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문계 취업 시장에서 고집을 부리고 있는 이유는, '업'을 내가 선택하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운이 좋으면 뽑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취업은 노력에 비례하는 게 아니니까. 적어도 운이 따르려면 그 시장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하지만, 투자 전략에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분산 투자가 있듯이, 위험 자산이 있으면 안전 자산도 함께 보유하여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몰빵(?)해서 준비할 게 아니라 시장에서 먹힐만한 것들도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게 물리적으로도 가능하다고 본다. 시간이 없어서 취업 준비가 덜 된 적은 없었다. 생각이 짧았거나 운이 없었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 미련하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Plan B가 필요하고, 조금은 미련을 버리는 것이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서 내 위치를 객관적으로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더라도, 인생을 좀 더 길게 보고 돌아갈 생각을 하는 것도 용기다.
그래서 이번엔 전공에 특화된 직무에 지원해 볼 것이다. 실제로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직무를 파헤쳐야 한다. T.O가 많은 직군에 무작정 지원하는 게 아니라, 그나마 내 성향에 맞는 직무를 지원해야 준비를 하면서도 기대가 되고, 나중에 면접에 가서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일반 기계기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부족한 전공 공부도 해야겠다. 작년에 너무 잡다하게 지원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사실 전공에 자신이 없었다. 학점 자체가 낮진 않은데 이수 과목이 많지 않아 이공계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꾸 대외활동 이야기로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 기사 공부를 하면서 가장 약점이었던 전공 지식도 다시 쌓고 자신감도 기르고, 자격증을 따서 스펙 한 줄이라도 더 채워 넣어야지.
사실 계산 과목이 편하긴 하다. 이과를 선택해서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것도, 다른 과목에 비해 나와 잘 맞아서이다. 외우는 것보다는 이해하는 학문이 재밌다. 공책에 풀이를 써 내려가며 문제를 풀 때는 잡생각이 사라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깊이 빠져들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펜을 놓고 문제나 풀고 싶었다. 무엇을 토해내는 것보다는 먹어치우는 게 쉬운 것처럼.
시험은 한 달 정도 남았다. 합격을 위해선 기출문제부터 먼저 풀어보라는 의견이 많지만 나는 개념을 탄탄히 하는 데에 시간을 더 할애하려고 한다. 전공면접에도 대비해서 개념적인 공부를 먼저 하고 그 후에 문제를 풀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식으로 공부할 것이다.
주차로 따지면 이번 주까지 4주가 남았다. 재료역학, 열역학 개념은 한 번 봤으니, 이번 주는 문제를 풀어보고 유체역학 개념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기계재료 및 유압기기, 기계제작법 및 동역학은 공부의 양이 너무 포괄적이니 자료 정리된 것을 프린트해서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