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5th, Season OFF
상공에서 쓰는 일기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12월의 대만은 지중해의 어느 국가와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화창하고 시원한 가을 날씨를 뽐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를 함께 시작하여 새로운 곳에 가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담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영상도 찍어왔다. 좋은 순간들을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은 그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게 행복했던 여행이 끝나니 아쉬움이 밀려든다. 여행이라는 정해진 시간 동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고, 그만큼 끝나는 게 아쉽고 아쉬워하는 것조차 아쉽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어깨에는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기대어 있고 창 밖의 컴컴한 구름 위에 잔잔히 깔린 달빛을 바라보며, 내가 마주하고 있는 '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것은 끝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좋은 것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그 끝이 없다면, 끝을 생각할 수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그게 정말 좋은 걸까.
좋은 것들이 계속되면 나는 만족스러울까. 좋은 일만 지속된다는 기분을 상상해볼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여행을 당장 며칠 더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끝날 때의 아쉬움은 당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아쉬움은 여행의 순간들이 행복했기 때문이고, 여행을 가기 전부터 그렇게 설레고 기대했던 이유는 그것을 간절히 기다려온 평범한 나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없고 따분한 날들을 견뎌 왔기에 그 순간이 더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매일 주어진다면, 좋은 것들이 계속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좋은 것은 좋지 않은 것과 붙어 다닌다. 좋은 것이 사라질 때가 좋지 않은 것이고, 좋지 않은 것이 사라질 때가 좋은 것이다. 좋은 것만 있을 수 없고 좋지 않은 것만 있을 수 없다.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는 것처럼, 하나가 있어야만 다른 하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좋은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사지가 멀쩡하고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것, 여자친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상처 주지 않은 것, 핵전쟁이 시작되지 않고 노예제도가 폐지된 것, 평등을 중시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 이런 것들은 분명 좋은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이 시작되었다면 그 끝엔 좋지 않을 일이 찾아올 것이고, 좋지 않은 일이 끝나면 또다시 좋은 일이 찾아올 것이다. 여행도 그렇고 취업준비도 그렇고 우리의 삶은 언젠가 끝이 난다. 나는 도대체 그 끝을 왜 두려워하고 있는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 두려움이 내 삶을 소중하게 만든다. 삶이 소중해서 그 끝이 두려운 것일까, 끝이 두려워서 삶이 소중한 것일까. 무엇이 선행 요인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함께 나아간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지금 취준생으로서의 시련도 참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상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넌 너무 이상적이야." 난 이상적이어야 한다.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은 무언가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소유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닌 이정표다. 저기 구름 위에 떠 있는 달처럼, 그것을 보며 길을 찾기도 하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다다를 순 없어도 그것을 향해가는 삶, 쟁취하는 게 아닌 추구하는 삶. 어렵지만 이렇게 생각하며 살 것이다.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취업 걱정은 인천 공항에 들어서면 하자. 죽음에 대한 걱정은 70세 이후에 하자. 끝날 것에 대한 걱정은 끝나기 1시간 전에 시작하자.
Jan. 21th, Season ON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쓰는 일기
삼성전자 최종 면접 탈락과 함께 하반기 시즌이 끝났다. 취업 준비라는 구속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푹 고아진 삼계탕처럼 이불속에 잠겨 요양을 할 생각으로 부모님 댁에서도 며칠 쉬었다.
서울에 있을 땐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뭔가를 해야 될 것만 같다. 사실이 그렇다. 적어도 숙식을 위해선 장을 보고 음식을 해야 하고, 또 음식을 먹었으면 설거지도 해야 한다. 오늘 하루 입은 옷을 빨고 널고 집안 청소를 하고, 여유가 있으면 화장실 곰팡이 제거와 전기스토브 근처에 지저분하게 눌어붙은 국물 자국도 닦아내야 한다. 그런 숙제들이 밀려 있어 푹 쉬는 기분이 아니다. 하지만, 고향 집에선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 엄마가 다 해준다. 침대도 푹신하고 TV도 크고 따뜻한 장판 위에 이불을 덮고 귤을 까먹으며 IPTV로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왕좌의 게임 시즌1을 9000원이란 거금을 내고 결제해버렸다. 그것은 분명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계속 보고 있다.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학교에 갈 일도 없고, 늦잠을 자거나 점심때까지 껌딱지처럼 집에 눌어붙어 있다. 난방비나 축내면서. 한 것도 없는데 배는 또 고파져서 그나마 우리 집에서 가장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냉장고를 열어본다. 언제 사놓았는지 모르는 돈가스 봉지가 냉동실 구석에 작은 빙하처럼 굳어 있다. 버리긴 아깝고 꽁꽁 얼어 있어서 상했을 것 같진 않으니, 나는 그것을 뜨거운 물에 담가 해동을 한다. 해동을 하는 동안 또 왕좌의 게임을 본다. 한 편을 보고 나서 살짝 녹은 돈가스 봉지를 열어본다. 하얗게 서린 돈가스 덩어리는 몇 장이 겹쳐져 있는 것 같은데 그 경계를 찾기가 힘들다. 물이 스며들어서 허연 국물을 뚝뚝 흘리는 이 냉동육에 식칼을 꽂고 위험하게 싱크대에 내리친다. 그렇게 돈가스 한 장을 부셔내듯 뜯어내어 프라이팬에 굽듯이 튀겨내고, 나름 계란 프라이도 올리고 케첩도 뿌려서 먹는다. 역시 이런 호사는 재밌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누려줘야 한다. 밥을 먹을 때 뭘 보는 게 습관이 되어서 영화를 보거나 원피스(만화)를 보거나 유튜브에 아무 영상이라도 틀어 놓고 밥을 먹곤 한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배가 부르고, 소화에 집중하기 위해 피가 위장으로 쏠리게 되니 지금 공부나 운동을 하면 몸이 고장 날 수 있다. 소화 활동에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 또 왕좌의 게임 두어 편을 더 본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내 배는 포만의 상태에서 점점 배가 꺼지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고파지는 게 아니라, 어 아직 배가 안 고픈가? 아직 소화가 덜 됐나? 싶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확 고파진다. 아직 더부룩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오후 5시 10분 정도가 되면 살짝 당황스럽다. 이미 하루가 다 가버렸고, 어쩔 수 없이 또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절제가 안 되는 기분, 절제를 하기 싫고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어서 재밌는 것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하는 것. 마음껏 늦잠을 자고 씻을 필요가 없으면 굳이 씻지 않아도 되고 며칠 동안 집에서 곰처럼 지냈으나,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무의미한 시간 같다.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또 달콤하다. 직장인들의 주말처럼. 휴식은 무언가를 한 후에, 또는 무언가를 하기 전에 취하는 게 적절하다. 그런데 난 뭘 했다고 쉬지. 취업준비를 위한 휴식이라면 이미 충분히 쉰 것 아닌가.
적당한 절제와 규칙이 있는 삶은 삶에 여유를 준다. 몸이 피곤하고 정신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나를 통제하고 규칙을 지킴으로서 작은 보람을 느낀다.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물이 없더라도 말이다. 그 루틴을 다시 찾기 위해, 아침 일찍 도서관에 나와 이 글을 쓴다. 결국 이러려고 왕좌의 게임을 무분별하게 본 건가. 재생의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 거라면, 뭐 잘 쉬었다고 생각하자.
현우는 옆에서 중얼중얼 오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너무 재미있는 왕좌의 게임이지만 하루에 한 편씩만 보겠다는 규칙을 부여한다. 무엇을 하든 6시까지는 도서관에 있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을 때, 그때 한 편씩 보자. 밥 먹을 때 한 편 정도는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