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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l Mar 17. 2022

50만 원으로 고통과 행복을 사는 법

 우리가 노동이라고 느끼는 행위에 대한 고통과 행복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이유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자본주의를 지향하든 공평한 재산의 분배를 지향하든 결론적으로는 노동을 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어차피 피하지 못할 노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골몰해보았다. 


 요 근래 난 노동은 기쁨과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마다 반복되는 지루하고 정해져 있는 삶을 살기 싫어 노동이 없는 삶을 선택했다. 스스로 만들어낸 어떠한 수입도 없이 근근이 소박한 용돈으로 몇 달을 지내는 중이다. 아주 적은 용돈으로 기존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당장 대출이 있거나, 모아야 할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용돈으로 한정되는 순간부터 나는 내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줄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줄인 것은 종종 유기견이나 여성 청소년들을 위해 썼던 기부금이었다. “나 쓰기도 빡빡한데 무슨 남을 챙겨.”라는 마음으로 기부부터 끊기 시작하였다. 그다음은 사소한 나의 취향이다. 간혹 가다 줄 서서 들어가게 되는 커피숍이나 근교의 뷰 좋은 거대한 건물의 커피숍을 가게 되면 진열대의 근사한 타르트나 빵도 같이 주문하곤 했었다. 그러나 용돈을 받은 후부터는 제일 저렴한 아메리카노만을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마시는 건 원두가 목욕한 성의 없는 커피여도 상관없어졌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각박해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나 스스로야 괴로운 건 잠깐이고 금방 익숙해졌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박해진 것은 나 스스로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 남편과 친정 식구들에게 박해지기 시작했다. 동생은 내가 퇴사할 때 즈음 오히려 반대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막 서울로, 사회로 나가기 시작한 그 자식은 실수령 180만 원으로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다. 비록 부모님 집에 살긴 했지만,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 하루에 왕복 4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기꺼이 광역 버스를 타고 통근하였다. 그 자식이 저녁을 먹자고 할 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자식에게 맘 편히 좋은 식사를 사줄 수 없었다. 이리저리 계산하다가 그나마 내가 수용 가능한 선에서 식사를 사줄 수 있었다. 나는 계산하는 그 순간만큼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며, 소비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비싸 봤자 50만 원 60만 원 쓰지 않는 이상, 친한 이들에게 기꺼이 소비했던 나 자신은 사라지고, 이 식사가 얼마였는지, 이 집은 아메리카노가 8천 원인지, 9천 원인지 계산하고 있게 되었다.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단점은 집안일이 당연히 나의 것이 되는 것이었다. 자아 찾기라는 명목으로 선택한 나의 백수 생활은 집안일이라는 의무를 나에게 지게 하였다. 같이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남편과 나는 분담해서 집안일을 해왔다. 집에 상주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집안이 그렇게 깨끗하지 않아도 직장생활을 하던 나에겐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적당히 깨끗하면 되고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되는 수준에 만족했다. 그러나 노동이 없어진 상황에서 집안일은 나의 온 신경을 가져갔다. 거대한 거실 블라인드의 먼지가 신경 쓰이고, 매일 숟가락 젓가락 세트들이 깨끗하게 닦여서 수저통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안일에 공을 들일수록 남편은 당연히 집안일이 나의 일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퇴근 후 식사를 준비하는 처지는 내가 되고, 집안에 먼지가 쌓이면 내 책임이 되었다. 소파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는 남편을 보는 내 상황이 못 견디게 싫었다. 요리를 생전 하지 않다가 백수가 되고 나서야 남편의 식사를 챙겨주었는데 이 얘기를 듣고 흐뭇해하는 시어머니가 싫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여성분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자아 찾기에 대해 열심히 얘기하다 오후 4시면 장보고 남편 저녁을 차려줘야 한다며 파해지는 그 모임에 내가 속해있다는 것이 싫었다. 집안일이 나에게 중요한 일이 되는 것, 나의 책임이 되는 것은 지금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싫다. “더럽고 치사해서 돈 벌고 만다.”라는 말이 한 번씩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못 견디게 싫다. 


 이렇게 짜증이 들끓고 못 견디게 싫은 상황이 와도 노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장점은 어마어마하다. 결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만 극복한다면 얼마든지 노동을 하지 않는 기쁨은 감당할 수 있다. 앞서 50만 원이 얼마나 적은 지에 대하여 설명하였지만, 그 돈은 한 달이라는 시간만 지나도 절대 적지 않은 돈이 되게 된다. 노동 없는 사회생활은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싸다는 9천 원짜리 커피는 50일 동안이나 마실 수 있다. 운동이나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최소의 비용으로 즐길 방법을 찾게 된다. 친구도 매일 만나진 않게 되니 어쩌다 한 번쯤 9천 원짜리 커피를 마셔도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50만 원은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금액이 되게 된다.


 400만 원의 월급을 받지 않고서 내가 얻는 것은 낮의 햇빛이다. 나는 지금까지 사무실에서 햇빛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느꼈던 햇빛은 잠깐 업무 외의 통화를 하러 가기 위해서 잠시 바깥으로 나갔을 때 맞았던 햇빛 정도였다. 퇴사하고 나서 3시부터 4시까지의 햇볕이 얼마나 뜨거운 지 알게 되었다. 그 햇빛은 내 눈을 뜨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보일러를 올리지 않아도 방이 뜨끈해질 정도로 집은 물론 내 몸까지 뜨끈하게 데워주었다. 이 햇빛이야말로 퇴사를 하고 이 시간에 집에 있어야지만 즐길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밖에 눈이 오든, 비가 오든 꼬박 8시간씩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뜨끈한 햇빛은 내 온몸을 감싸 안아 이 평화로움 속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려는 욕망을 주었다. 밖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 한들 나는 이 안에 있어야 행복하다 밖에서 이런 따사로움은 느낄 수 없다. 하고 속삭인다. 


 나는 이 따사로움에 사로잡혀 나의 모든 라이프 스타일을 50만 원에 꾸역꾸역 맞추기 시작했다. 50만 원의 라이프 스타일은 소박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9천 원짜리 커피를 마실 때 2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희생을 통해서 따사로움 속에 소박한 행복을 찾아갔다. 주변에는 뜻밖에 이런 소박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말 그대로 나처럼 용돈을 받고 생활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의 실제 삶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다들 이런 따사로움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놀랍게도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불쾌함이 차올랐다.


 우습게도 50만 원에서 최대 행복을 가장 즐기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는데, 소박한 곳에서 행복을 찾는 내 모습이 남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부끄러웠나 보다. 나의 행복의 정량을 50만 원 정도로 한정해두는 것과 남들이 나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났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50만 원 정도로 내 삶을 한정시키는 내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노동의 고통은 나에게 지겨운 무채색의 삶을 주지만, 그 안에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관대함과 깊은 갈증 속에서 마신 물과 같은 성취감을 선물해준다는 것을. 나는 노동의 고통도 기쁨도 즐기는 사람이다. 


Photo by Marten Bjor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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