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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마 Sep 14. 2020

서른 살, 나의 단상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퇴사한 지 어느덧 4개월이 훌쩍 지났다. 회사를 박차고 나올 때 가졌던 포부는 어디로 갔을까. 온실 속에서 바라보았던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아니,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일했었다. 내가 믿는 것이 세상의 전부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만큼 강하지 않았고, 단단한 심지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여우는 제 키를 훌쩍 넘긴 곳에 매달린 포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건 신 포도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딸 수 있는데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아. 저건 신 포도니까.' 하지만 그 여우가 너무나 배가 고파 그 포도를 먹어야 할 상황이 오면 깨닫는다. '아,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는 지금껏 그리 나쁘지 않은, 오히려 성공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길을 걷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름의 작은 성공들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모든 일의 초입부에서 즐거움만을 맛보고, '이만하면 됐지'라는 여우의 생각을 갖고 그만뒀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야 스스로에게 자문해본다. '너는 끝까지 달려본 적이 있었니?'.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공기와 작은 휘파람 소리뿐이다. 마치 눈 내리는 겨울날, 한참을 걷다 뒤를 돌아보니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스무 살,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에는 나 정도면 모든 것을 갖춘 줄 알았다. 그 자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냈다. 스물다섯 살, 자만심보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새로운 도전들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아둔하고 어리석었던 나는 전력질주보다는 뒷짐을 지고 주변을 둘러보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서른 살, 포도는 시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도를 따기 위해 포도나무 위에 올라타려 했지만 그리 쉽지는 않다. 그동안 했던 수많은 시뮬레이션은 포도나무 앞에 선 나에게 그저 한 줄의 끄적거림에 불과했다.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따기 위한 방법은 너무나도 많다. 누군가의 어깨에 올라타 딸 수도 있고, 도구를 이용해 나무에 올라탈 수도 있다. 혹은 키가 작은 나무를 찾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끄적거림은 아직 나에게 읽히지 않았다. 그저 검정 가루가 옹기종기 모여 흰 종이에 붙어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 나이 서른 살,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4개월 간의 여정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니다. 작게나마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과, 피해야 하는 것들은 배우고 있다. 이렇게 하루하루 고민하고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포도나무, 아니면 더 거대한 나무의 열매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 스스로에게 말한다. 믿어야 한다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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