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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Dec 27. 2022

더러운 이별

  "센터장님이 물으면 선생님이 퇴사 후 출근하는 걸 원치 않아서 강권할 수 없었다고 말할게요."

  "그렇게 말하시면 제가 엄청 나쁜 사람이 되잖아요…."

  "본인이 원하는 게 그거잖아요. 퇴사하고 안 나오는 거."

  "네…."


  주말을 보낸 후 팀장님의 입장에서는 섭섭하고 화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출근하자마자 팀장님에게 사과했다. 팀장님은 이미 이전에 사과했을 때 마음이 풀렸고, 지금 더 마음이 풀렸으니 더 이상 자신의 마음에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니었다.


  퇴사 후 이주간 출근하겠다고 합의를 본 지 하루만에 팀장님은 말을 바꿨다. 이번 주에 이틀간 네 시간씩 인수인계를 하고나면 퇴사 후 굳이 출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사실을 센터장님에게 말해달라고 했고, 팀장님은 센터장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퇴사하라는 말과 함께 퇴사 후 센터장님이 나에 대해 물으면 위와 같이 말하겠다고 했다.




  점심시간 후 나는 앞서의 대화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다음주 출근은 이번주 인수인계를 해보고 결정하자고 또 말을 바꾸는 팀장님에게 나는 이번주까지만 출근할 것이며, 센터장님에게 퇴사 후 최소 1, 2주는 오전에 나오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이번주까지 나오라고 했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그럼 내 입장이 뭐가 돼요?"


  입장. 본인의 입장은 있고, 내 입장은 없는 건가? 팀장님은 나를 위해서 한 말이었다며 이런 저런 변명을 대다가 어처구니 없어 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곧 그런 말들이 지금 상황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는 걸 인정했다. 어째서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인가. 팀장님이 인수인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부터 나는 약속했던 것보다 내가 출근하는 기간이 줄어들 것을 예감했다.


  "시간외수당을 줄 수 있으려나?"

  "○ 선생 이번주까지만 나오는 방향으로 하죠? 일 처리하려면 번거롭잖아요."


  어제 시간외수당에 대한 결의서를 봤을 때 팀장님은 적지 않게 놀랐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전 직원에게 시간외수당을 6시간 챙겨주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쳐놓고는, 막상 일주일치 시간외수당이 백만원에 가까워지자 크게 겁을 먹은 듯했다. 팀장님은 예산을 너무 빨리 소진할까 겁이 나서 행정직원에게 별별 핑계를 댔지만 행정직원은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왜 솔직하면 안 되는 것인가? 나는 끊임없이 변명하는 팀장님에게 "막말로 팀장님 지금 저 쌍X 만드시는 거예요."라고 질러 버렸다. 이 단어를 내 입으로 뱉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회에서 이 단어가 가지는 무게나 저질도도 잘 알지 못한다. 팀장님이 "마지막이라지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예요?"라고 해서 엄청 나쁜 말인가라고 지레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말은 어차피 뱉어졌고 '나쁜 사람' 정도로는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내 나름대로는 고르고 고른 말이었다. 쌍X.


  팀장님은 대화를 그만하자고 말했고, 나도 자리로 돌아와 내 할일을 했다. 몇 시간 뒤 업무 차 센터장님과 통화하면서 팀 내에서 후임자에게 8시간 정도 인수인계를 하면 될 것 같다고 판단해 이번주까지만 나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주도 계속 야근을 하며 일을 정리하고 있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팀원들이 도와주기로 했으니 괜찮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게 누구 생각이야? 선생님 생각이야?"

  "……."

  "마음이 떴어?"


  나는 한참을 끙끙대다가 1, 2주 정도는 오전에 출근할 생각이었는데 이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솔직히 내 마음도 상했다고 답했다. 센터장님은 곧바로 팀장님에게 전화했고, 팀장님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선생님, 마음 편하게 나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 센터장님은 한숨을 쉬며 그렇게 말했다. 아마 지금도 내가 너무 무리해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담을 계속 지울 수가 없어서 계획을 변경했다고 이야기한 모양이다. 어째서 그런 핑계가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을까. 팀장님은 줄곧 화가 나있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의 재취업은 더럽고 추악하게 막을 내리고 있다. 팀장님이 유난히 내 이직을 엄청 나쁘게 보더라고 이야기했더니 행정직원이 팀장님이 안 그래도 나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더라며 동의했다. 나는 팀장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묻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오해가 있었고, 지나간 일이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팀장님에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사람이었다.


  퇴근 무렵 팀장님이 오늘 시간외근무하는 사람이 있는지, 저녁 주문은 안하는지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팀장님과 단둘이 밥 먹고 싶지도 않았고, 챙겨주고 싶지도 않았다. 먼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유로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은 굳이 팀장님 법인카드로 긁었다. 혼자만의 소심한 복수.


  "오해예요."


  그게 정말 오해라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팀장님은 나와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오해가 아니다. 팀장님은 그냥 그런 사람이다. 나는 아주 까만 크레파스를 꺼내 팀장님을 내 마음 속에서 흔적도 없이 밀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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