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가스가 많이 차는 듯했고 생리통처럼 뻐근한 통증과 콕콕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지속적으로 느껴졌다.
병원에선 자궁이 넓어지고 있어서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콕콕 쑤시는 통증에 시시각각 예민하게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초기라 배에서 느껴지는 통증 말고는 뱃속의 그 녀석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통증이 있을 때마다 '아, 이 녀석이 지낼 곳을 만드느라 열심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신랑과 함께 병원을 방문한 건 5주 4일 차 정도 되었을 때였다. 누군가는 이맘때 벌써 아기집을 보았다고 해서 내심 기대를 했다. 지난주 병원을 방문했을 때에도 다음 주정도면 아기집을 볼 수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초음파상에서 아기집을 확인하고 나야 마치 내가 임신한 것이 기정사실화 되는 것 같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녀석을 머리로는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아직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걸 눈으로 보기 전엔 믿기가 어려웠다.
예진실에서는 아기집이 확인되고 나면 임신사실확인서를 발급받은 산모들에게 제공되는 배냇저고리 쿠폰을 주었다. 아기집이 보이면 아래층에서 교환해 가면 된다고 했다.
대기실에는 배가 많이 나온 분들이 많이 있었다. 아마 내눈에 더 많이 들어왔을지도 몰랐다.웃으면서 이야기를 소근거리는 부부의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아이를 갖는 것은 그런 것이구나.
행복.
근데 나는 왜 이리도 마음이 두근거리고 불안한 것일까.
한참을 기다린 후에, 내 이름이 불렸고, 초음파를 보러 방에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기대반 걱정반으로 초음파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잠시 후 화면에 비친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음.. 이 정도면 아직 아기집이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일주일 뒤에 한번 더 확인해 봅시다'
초음파 화면에 비친 그 작은 점 같은 것은 정말 작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비슷한 주수의 아기엄마들이 올려놓은 초음파 사진에서 보던 그것과는 사뭇 다른 크기였다.
아직 초기라 해도, 내가 아무 지식도 없는 초산의 임신부라 하여도 그 정도는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누가봐도 좋은 조짐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마음을 무조건 편하게 먹으라고 여러 번 강조하여 말씀하셨지만 아무리 해도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뭔가 잘못됐다는 소리를 들은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신랑은 계속 울고 있는 나를 연신 다독이기에 바빴다. 아직 어떤 결말이 난 것도 아닌데 계속 눈물이 났다.
피검사를 한번 더 해보자는 선생님의 말씀으로 피검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내일 아침 전화로 결과를 알려주신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어떤말도 지금은 들을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다음주가 오는 것이 억겁의 시간이 지나야 오는 것처럼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영양제와 균형 잡힌 식사를 열심히 하면서 아기가 무럭무럭 잘 크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