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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영 Sep 24. 2021

9월 24일, 아빠에게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2

어제 편지를 마치고 사실 한 통 더 이어서 쓰고 싶었어. 그래도 하루에 한 통만 써야지 되뇌곤 메모장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놓기만 했다. 가장 첫 번째로 적은 걸 이어서 써보려고. 그건 내 이름에 대한 것이야.

나는 내 이름이 참 마음에 들어. 아빠가 책을 두 권이나 읽고 지었다고 했잖아. 요즘 한국의 호칭문화를 바꾼다고 영어 이름을 많이들 쓰던데 난 되도록이면 내 본연의 이름을 쓰고 싶어.


예전에 좋아하는 시인의 낭독회에  적이 있어. 행사가 끝나고 챙겨간 책을 수줍게 내밀면서 사인을 부탁했어. 으레 그렇듯 이름을 물어보길래 '. . '이요 하고 답했지. 이런 적은 처음이었는데 이름을 듣고서는 뜻을 묻는 거야. -세울 - -영화로울 - 쓴다고, 영화로움을 세운다는 뜻이라고 넌지시 말해주었어. 그랬더니 시인이 뭐랬더라. '건축에 대한 이름이군요'하고 대답했던가. 역시  사람은 시인이구나 싶을 만큼 분위기 있게 이름을 평해주었는데 기분이  좋았어.


가영이라는 이름은 많아도 이런 뜻은 진짜 드물잖아. 흔한 것보다는 드물고 귀한 게 좋은데, 내 이름이 그런 것 같아. 고가도로를 발음할 때마다 '가'를 조금 더 힘주어 말하곤 해. 고가도로도 내 이름의 '가'랑 같은 한자를 쓴다는 걸 안 뒤부터는.


이런 재미난 일도 있다. 서예 학원과 함께 겸해 있었던 한문 학원 다닐 때 내 이름의 뜻을 읊었는데, 세상에 선생님이 그건 처음 들어보는 한자라는 거야. 한자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모르는 한자라니. 내 이름은 도대체 얼마나 희귀한 걸까 싶었어. 알고 보니 '가'의 첫 번째 뜻은 '시렁'이었더라고.


지금 찾아보니 시렁은 '방이나 광 등의 벽과 벽 사이에 물건을 얹어 놓을 수 있도록 두 개의 긴 통나무를 가로질러 설치한 구조물.'이래. 읽어봐도 시렁이 뭔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요즘 집에는 잘 안 쓰인다고 하는데, 아빠가 어렸을 때 살던 집에는 시렁이 있었어?


아빠가 의도했던 '세운다'는 보통 세 번째 혹은 네 번째에 등재되어 있더라. 조금 더 어렵게 '가설하다'로 적어놓은 사전도 있네. 시렁-은 명사지만 세우다-는 동사라는 점도 마음에 들어. 나는 멈춰있는 단어가 아니라 폴짝이는 움직씨를 가진 사람이라는 거니까. 내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빠가 나에게 만들어준 이름 덕분이 아닐까.


나중에 언젠가 내가 뚝딱뚝딱 뭔갈 만들게 된다면, 그런 나를 보고 어떤 누군가가 "무엇을 세우고 계신가요?" 하고 물어본다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이렇게 대답할래.

"저요? 영화로움이요!"


2021. 9. 24.

건축가의 마음으로,

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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