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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준 Mar 17. 2020

당시 교수님의 답장은 아직도 내 메일함에 저장되어있다.

아래는 재단에서 장학생 수기 공모전에서 썼던 글입니다. 여기 재단에는 예전부터 신세를 많이 졌었네요. 응모에는 아쉽게도 광탈됨ㅋㅋ 열심히 쓴 게 아까워서 블로그에 올려봅니다.


재단의 장학금과 교육활동을 통한 성장과 변화

사실 너무나 우울하다. 장학금을 통해 삶의 방향이 크게 바뀐다는 이야기 말이다. 몇 백만 원이 우리의 인생을 전환시킬 정도로 크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그만큼 병들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짧게 말하면, 나의 경우 작년에 받은 장학금 덕분에 미국에서 열린 학회 참석 경비를 마련하고, 확률그래프모델 온라인 강의 수강권을 구매했으며, 대학원 등록금 마련에도 보탬이 되었다. 장학금이 없었다면 이러한 기회를 얻는 것이 곤란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들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제약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장학금과 같이 이러한 현실을 구제하는 별도의 복지도 무한하지 않다. 선별적으로 주어진다. 내가 장학생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누군가가 받았을지도 모르는 장학금과 그에 따른 성장의 기회를 박탈했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쉽게 제한 없이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잘 활용한 것이라면, 난 널리 귀감이 될 수 있는 글을 쓸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소수에게 주어지는 특권에 가까운 기회는, 아무리 잘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맘이 편하지 않다. 그래서 돈 이야기는 좀 자제하려고 한다.

고등학생 때까지 내가 지내온 곳은 마산 내서읍인데, 말하자면 시내에 맥도날드가 없었던 곳이다(최근에 생김). 고등학생 때 운 좋게도 장학생 1기로 선발되었고, 항상 그렇듯이 수여식에 부름 받았다.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장학생들은 대개 서울역 뒤편 어딘가에 집합해서 셔틀버스를 타고 수여식 장소로 이동한다. 사실 서울 시내를 가로질러 가는 길은 너무나도 신선했다. 버스 창밖을 통해 본 서울 시내의 풍경은 내가 지내온 동네와는 상당히 달랐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직도 기억나는데, "서울에는 건물이 정말 크구나.."였다. 

아무튼, 난 적어도 교육의 기회가 그리 대단하지 않은 곳에서 살아온 것 같다. 특이하게도 당시 나의 관심사는 중력이었다. 정확히는, 만유인력이 작용할 때 물체의 거시적 위치를 시간에 대한 함수로 표현하고자 했다. 한동안 야자 시간에 이 수식만 풀고 있었고, 결국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걸로 소논문까지 썼지만, 사실 혼자서 쓴 내용이라서 자신이 없었다. 이거 어디 가서 보여줄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이 될까?=_= 그렇지만 촌 동네에서 지내오고, 과학고가 아닌 평범한 일반고를 다니던 나로서는 주변에 이런 내용을 자문할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러던 때에 장학생을 대상으로 재단의 비전특강이 경남에서 열렸었다. 특강을 해주신 연사 중 한 분은 모 대학교의 오 교수님이었다. 훌륭하신 분이라는 말은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이후에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서 비전특강을 듣던 장학생이라며 연락을 드리게 되었는데, 심지어는 부끄러운 그 소논문을 첨부해서 보여드리기도 했다. 당시 교수님의 답장은 아직도 내 메일함에 저장되어있다.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 이해를 잘하고 있구나", "많은 도전으로 희망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라는 말과 함께 논문 작성에 대한 몇 가지 코멘트를 남겨주셨다. 그 당시의 나에게 부족했던 확신을 불어넣어 주었고, 덕분에 그 내용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대전에서 짧게 인턴을 하기도 했었다. 대전 생활을 하면서, 잊고 있었던 고3 시절과 오 교수님이 떠올랐다. 그러다 오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고 심지어는 식사까지 같이할 수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비로소 난 이 분의 표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올곧은 분이었다.

먼 선배뿐만 아니라, 후배에게 배우기도 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재단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티앤토 멘토링에서 멘토를 하기도 했었다. 내가 가르쳤던 한 멘티는 대단한 아이였다. 멘토링 캠프 기간에도 최선을 다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카톡으로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곤 했다. 멘토링 캠프가 끝나고 나서 내가 그 주변에 며칠 더 머무르고 있었는데, 적분 문제를 물어보고 싶다며 연락이 왔었다. 열의가 넘치는 그 아이는 정말 나를 찾아왔고, 나도 정말로 틈틈이 수학 책을 펼쳐 알려주기도 했었다. 그전까지는 수학을 정말 어려워하던 친구였는데, 다음 학기에는 정말로 수학을 100점을 받아왔다며 카톡으로 인증까지 하더라. 나조차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없음은,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RPG 게임처럼 퀘스트를 완료하고 그 경험치가 수치로서 계산되면 좋겠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시간 축은 하나이며 대조 실험이 어렵기 때문에, 누군가가 혹은 무엇이, 나의 성장이나 변화의 요인이 되었음을 명백히 입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공대 대학원을 다니고, 나름대로 더 올바른 삶을 지향하는 것에는, 오 교수님의 영향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꿈 캠프, 비전특강, 티앤토 멘토링, 하다못해 재단 잡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장학생이 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부족한 나를 부끄럽게 한다.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방식은 촌 동네 출신인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성장과 변화는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난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자본은 유한하지만, 인간적 가치는 누구나 제한 없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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